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음악을 듣는 게 장르별로 돌아가면서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발라드-락-메탈 이러다가 또 한 바퀴 돌아서 발라드로 돌아오거나 하는 식이죠.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곡들을 즐기게 되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렇게 도는 중에도 힙합이나 R&B, 데스메탈 같은 쪽으로는 안 갑니다. 아무래도 그 쪽은 취향이 아니더군요)

그런데 뭐랄까, 정말 좋은 음악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됩니다. 혼이 공명하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딱히 노래 장르나 가수를 가리고 듣지는 않고 이것저것 그냥 좋다 싶으면 좋아합니다만, 그래도 결국 제게 '정말 혼이 울리는' 음악은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수로 말하자면 요즘은 김광석과 이선희가 갈수록 좋습니다. 목소리에 깊이가 있달까요, 기교나 화려함보다 그 자체로 혼이 깃들어 있는 느낌입니다. 20대 초반일 때만 해도 JAM Project의 이를테면 '열혈곡'을 좋아했습니다만 요즘은 갈수록 이런 노래들이 좋아지더군요. (물론 지금도 JAM Project는 좋아합니다. 다만, 예전처럼 열광하지 않을 뿐이죠)

한동안 가요를 죽자하고 들을 때가 있고 (이것도 또 나라별로 분류가 달라집니다. 물건너 미국 노래, 또는 일본 노래, 혹은 한국 노래, 가끔은 중국 노래, 그것도 노래도 잔잔하거나 격하거나에 따라 플레이리스트가 달라지고) 혹은 클래식을 죽자하고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 한두 달 즈음은 클래식 열풍입니다. 그래서 클래식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좋아하는 취향을 말해 보자면,

항상 좋아했던 Pachelbel의 Canon을 요즘도 여전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감정이 치고 올라가 질주하는 느낌이라 완전히 제 취향이죠. 비슷한 이유로 Vivaldi의 Winter도 좋아하죠. 조금씩 바람이 거세지다가 눈보라가 휘몰아쳐 오는 느낌이에요. Andre Rieu의 The Skaters Waltz도 꽤 좋아합니다. 이건 '남극탐험'의 BGM으로도 쓰인 곡이니 올드 게이머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5.1채널 스피커를 처음 구축하고 시범 삼아 틀어본 곡이 이 스케이터즈 왈츠였습니다. 빙판을 미끄러지는 한 마리 펭귄 스케이터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맛보게 해 주죠. 더불어 Bach의 Cantata BWV 147, Corale 'Jesu도 좋아합니다. 종교음악인 칸타타니만큼 뜻도 어쨌든 기독교인인 제게 잘 맞습니다. '예수는 인류의 소망 기쁨 되시니'라는 이 코랄을 듣고 있노라면 따스하고 푹신한 봄날의 공기 안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짧은 것만 말했으니 긴 것도 말해 보면, 일단 역시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랄까요. 라흐마니노프의 2번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 업계←에서는 그다지 골수라거나 매니아가 아니고 파퓰러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싶습니다만, 그래도 이게 가장 좋은 걸 어쩝니까. 웅장하면서도 세심하고 세련됩니다. 연거푸 밀려닥쳐오는 음의 해일 속에서 유영하는 기분이 들어요. '2번도 아니고 #번을 좋아하다니 자네 매니악하군' 이라는 소리를 한 번 들어보고 싶어서← 1번이나 3번, 4번도 들어 보았습니다만 역시 2번이 제일 좋더군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Carl Orff의 Carmina Burana. 도입부인 O Fortuna는 정말 유명하죠. 비장미가 느껴지는 음악이라고 하면 이 곡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으로 이 CD를 샀을 때가 대학 2학년 때쯤인가였는데 서너 달은 CDP로 이것만 돌렸다고 기억합니다. 어차피 통학시간이 2시간이었기 때문에 줄창 들었죠.

하나만 더 마지막으로 말해 보면, Brahms Symphony No.1도 아주 좋아합니다. 시작하자마자 대뜸 뜨거운 소나기를 퍼붓고는 웅장함과 장중함으로 청자를 묶어 버립니다. 카르미나 브라나와는 다른 종류의 비장함이랄까요. 개인적이지만 이런 곡을 듣고 있으려면 왠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낍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곡이란 건 이런 곡을 두고 하는 말이겠죠. 더불어 브람스의 교향곡은 4번도 1번만큼이나 좋아합니다. 4번은 1번만큼 웅장하지는 않지만 1번과는 다른 우아한 장중함이 있습니다. 이런 걸 듣고 있으려면 가슴이 뜨거워져서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많아서 좋습니다. 음악이 많아서 행복해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