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삼 개월 만에 다듬으러 갔다. 딱히 삼 개월 동안 길렀던 이유가 있지는 않다. 단순히 미용실에 가기 귀찮았달까. 집에 돌아오면 피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내 머리는 그간 상당히 길어져서, 앞머리는 코에 닿았고 뒷머리는 슬슬 묶을 수 있을 정도였다. 여자들 머리로 치자면 숏컷과 단발머리의 중간. 여자들이 그런 머리를 하고 다니면 난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하고 있자니 그저 단순한 너드로 보일 뿐이다. 요컨대 어지간하면 좀 잘라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갔다, 미용실.

 원래 나는 미용실에서는 그다지 대화를 하지 않는다. 내가 안경을 벗는 때는 오로지 세수할 때와 / 잠잘 때 / 그리고 머리 깎을 때 뿐이다. 안경을 벗으면 사물이 흐릿해져서 보이지 않고, 그건 요컨대 세상과 나와의 접촉점이 흐릿해진다는 소리다. 즉: 인풋이 약해지면 아웃풋도 약해진다. 원래는 활발한 나이지만 안경을 벗고서도 활발해지진 않는다. 그러니 안경을 벗고 있는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지 않을밖에.

 그러나 오늘은 미용사 누나와 대화를 꽤 즐겁게 했는데, 이건 오늘 내 마음이 크게 바뀌어서라기보다는 그 미용사 누나와 화제가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는 사람들 사이의 파장이란 게 있는데, 그게 제법 코드가 맞은 게다.

 화제의 발전과정은 다음과 같다:「머리 길다, 얼마만에 왔는가 → 3개월만이다 → 요즘 경제가 어렵다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와줘야 미용실 안 망한다, 직장인이냐 → 대학생이다, 졸업반 → 무슨 과냐 → 신학과다 → 장로교? → 그렇다 → 나도 장로교다」이런 루트를 타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다 나왔는데, 그분은 일이 바쁜데다 마음 둘 교회를 찾지 못해 현재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때는 새벽예배에 금요철야예배도 다녔지만 지금은 방송설교 정도.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듯한데, 호주에도 있었던 모양이고 그곳에서 다녔던 교회는 옛날 한국교회처럼 말씀에 중심을 두는 예배였던 모양이다. (요즘 한국교회는 예배 중에 화면을 띄우고 그걸 보여주는 식이 꽤 있다) 어쨌거나 지난번에 있었던 곳은 안양이고, 이곳 (수원)으로 와서는 특별히 교회를 못 정하고 있단다. 처음 설교 들었던 목사님 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고 부활과 그로 인한 구원만 분명하다면 어느 교회든 마찬가지다"라고 하셨다고 해서 이사가면 가장 가까운 곳의 교회를 다니려 한다는데, 그 점은 나도 인정하고 그분도 인정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해도 교회색이랄까 성향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는 법이다 (이것 역시 함께 긍정한 부분). 여하간, 내가 다니는 교회를 묻더니 언젠가 나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나오라고는 한 마디도 권하지 않았다. 단지 속으로 기도하기는 했지: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되니까, 이분이 마음 잡고 교회에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달라고.

 때로는 그런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역사적인 일에 내가 사용된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 말이다. 이번 일이 그런 일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것이 그분이 다시 사람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잘 할만한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글쎄, 나는 그쪽으로 화제를 몰고갈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그분이 알아서 이야기를 쏟아놓더라니까. 누군가 필요했던 시기에 딱 나를 만나게 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

 덧. 딱히 신앙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좀 했고, 이런저런 잔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듣는 쪽은 나였지. 나는 듣는 일도 꽤 좋아하기 때문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