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 녀석이 보이지 않기에 땅 속으로 파고들고 숨었나 했습니다. 아주 약간 불안했었던 건, 혹시 이 녀석이 탈피를 하려고 숨었나 하는 것. 탈피할 때는 몸이 연약하기 때문에 위험하므로 땅속으로 숨어들어서 탈피하거든요. 하지만 지금 제 사육장은 소라게가 안심하고 땅 속으로 숨어들 만큼 모래가 많이 깔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깔려 있긴 하지만, 아주 충분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죠.

..뭐, 탈피를 하려고 했던 건지 아닌지도 나는 알 수 없지만.

조금 전에 보니 쉘 밖으로 소라게가 나와 있었습니다. 설령 나오는 시점까지 소라게가 살아 있었다 하더라도, 쉘 밖으로 나온 소라게는 얼마 못 버팁니다. -여하간 축 늘어져 있었죠, 제가 발견했을 때는. 냄새도 났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혹시나 하고 기대를 갖고 물 속에 넣어 보았지만 역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죽은 겁니다.

4일 전까지만 해도 잘 돌아 다닌 녀석이었는데. 왜 죽었는지 제대로 된 이유도 모르는 제가 바보같이 생각되는군요. 제기랄. 이번에는 정말 잘 기를 생각이었는데. 죽은 녀석에게 미안한 것도 미안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이상 앞으로 또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게 무섭습니다. 그래, 분명 나는 초보고, 어딘가에선 제대로 된 환경을 못 갖췄겠지. 초보는 소라게를 죽이게 되기 쉽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정말이지, 잘 살아 줬으면 했다고- 스트레스를 받게 할까 봐 만지는 것도 조심했는데.

다른 녀석들은 잘 살아 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름을 소시민이라고 지었던 거 정말 미안해지는군요. 우리 집에 온 지 고작 두 주 만에. 아 이거 정말 우울해지네.

그래도 샤아는 튼튼하고 여전히 힘이 세고, 아무로는 활기찹니다. 쁘띠도 멀쩡해 보여요. -라고 말하면 저 녀석도 비실거리지는 않았는데. 대체 왜 죽은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제기랄, 생존에 무리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놨다고 바로 며칠 전에 말해놓고선 이 모양이라니.

여기서부턴 더 이상 죽는 녀석이 없었으면 합니다. 아무리 자그마한 생명체라도, 일단 내가 의미를 준 이상, 이렇게 허무하게 가게 할 순 없는 겁니다. 여태까지 아무 것도 기르지 않았던 건 이렇게 죽이게 되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또 반복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불쌍한 소라게의 명복을 빕니다.


(최종적으로, 소시민의 죽음에 대한 가설 중 제가 가장 크게 가능성을 두는 건 '탈피하려다 실패했다'는 겁니다. 연해진 몸에는 너무 강했을 바닥재가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고, 탈피를 하던 중에 다른 소라게에게 잘못 공격받았을 수도 있고. (소라게는 원래 동족상잔을 하진 않습니다만 평상시에는 소라껍질로 감추고 있는 연한 배 부분이, 간혹 먹이로 오인되어 공격받는 경우도 있다는 모양이더군요)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결국 나는 죽는 광경을 보진 못했으니까)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