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넘게 써 온 <영혼의 시>를 오늘로 완결했습니다.

아래는 후기입니다.


보기



영혼의 시

후기

돌이켜보면 정말 길었습니다. 이 소설의 구상을 시작한 것이 2004
년 12월, 그리고 집필을 시작한 것이 2005년 1월.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 텍스트 파일 분량으로 계산하면 2.12 메가에 원고지로 계
산해보면 칠천 팔백 육십 장이라는 무시무시한 분량으로 이 글이
완결되었습니다. 당초 구상에서는 나름 대중적인 글을 써보자 했지
만 어쩌다가 결국 작가취향을 대놓고 드러내는 불친절한 글이 된
탓에 호응도는 참 나빴지요. 그러나 어쨌든 근성과 오기와 애증으
로 결국 완결했고, 저는 저를 조금은 더 대견하게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3년 1개월. 중학생이 대학생이 될 수도 있는 기간입니다. 이거 참.

본래부터 이 글은 ‘아는 만큼만 보이는’ 글이 목표였습니다. 일단
던져주고, 해석은 읽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는 그런 글이었지요.
그러니 시작부터 여러 가지 의미에서 불친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신 분들이 가장 처음 겪게 되는 난제는 아마 무술
묘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술을 잘 모르고 별로 관심도 없으실
많은 분들에게는 정말이지 ‘쓸데없이’ 묘사가 세세하지요. 하지만
예전에 잡담에서도 밝혔듯이, 저는 ‘실전과는 안드로메다 성운만큼
의 간격이 있는’ 말도 안 되는 격투신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
다. 물론 그 때문에 써낸 이러한 세세한 격투신이 <영혼의 시>
의 매니아성에 3배 정도는 박차를 가하지 않았나 합니다만, 여하간
저 자신으로서는 대중성 여부와 상관없이 이 소설의 전투신 자
체는 만족스럽습니다. 여하간, 3년 동안 전투신 하나만큼은 질리도록
써 왔어요. 앞으로는 현실적이되 독자들이 이해하기도 쉬운 전
투신 쪽으로 가 보려고 합니다.

두 번째 난제는 기독신학입니다. 애당초 제목부터 ‘영혼’을 거론하
고 있는데, 기독신학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이는 <영혼의 시
>에서 말하는 마족이나 의지발현, 법칙초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힘들 겁니다. 물론 환상세계의 법칙이라고 이해하실
수도 있고 일단 이 글에서 표현하는 세계도 현실 그 자체는 아니
기 때문에 약간의 변형이 들어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근간이 기독신학이라는 것만은 변함없고 실제로 환상소설을 읽는
많은 분들이 기독교에 대해 별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거부감까
지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꽤 어려우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영혼의 시>는 저 두 가지에 의해 굴러갑니다. 무술
신은 외적인 요소를 덮고 있고, 실제로 이 소설의 모든 세계관과
사고의 메커니즘은 기독신학에 의해 구동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인해 상처받고, 사랑하고, 회복하는 것도 실은 기독신학에 의거
해 써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소설이 무술 교습서라거나 기독 신
학 개론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글을 쓰며 느낀 것은, 때때로 너무 잘 아는 것은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작가가 아무리 자신이 아는 것을 독자에게
펼쳐 보이는 것이라고는 해도, 독자가 될 사람이 어떤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에 대한 고려는 확실히 필요한 것이지요. 그
런 점에서 <영혼의 시>의 가능 대상층은 확실히 좁았고, 그래서
저는 지금의 이 조회수도 나쁜 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생각보다 많달까요.

글 외적인 이야기는 이쯤 하고, 글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배
볼까요. 사실 저는 오늘 새벽에 최종장의 최종편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 글이 끝난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아
직 무언가 더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던 거죠. 한
챕터 정도는 더 있어서 사실 숨겨진 최종 보스가 또 있다거나? 하하하.

정말 이 글이 끝났구나,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에필로그
를 쓸 때였습니다. 예전부터 에필로그는 성전이 끝난 후 5년 뒤의
시점으로 잡아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렇게 해서 이런 에
필로그가 나온 겁니다. 여태까지 에필로그를 써 본 글이.. <영혼의
시>를 포함해서 이제 네 편입니다만, 어쨌든 이런 느낌의 에필
로그도 저에겐 꽤나 신선하더군요. 맙소사, 그 녀석들이 어느새
아이들을 낳고 부모가 되어 있다니요. 저도 이제는 그 녀석들을 제
안에서 떠나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3년 품었으면 많이 품었죠
. 그 동안 <영혼의 시>는 거의 제 생활과도 같았습니다만, 이제
는 또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때로군요.

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생각도 있긴 합니다: 영혼의 시의 전
체 챕터와 캐릭터들을 가볍게 훑어 보는, 이를테면 DVD 특전 작가
코멘터리 같은 걸 써 볼까 하는 거 말입니다. 여하간 <영혼의
시>는 정말 길었고, 뭔가 더 해 주지 않으면 이 녀석에 대한 아쉬
움이 남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말이죠. 뭐, 쓸 지 안 쓸지는 호응
봐서 결정할까도 싶습니다만. (...)

차기작의 구성은 대강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대 곁의 히어로>가
제목이고, 연재개시는 아마 금년 3월쯤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그
쪽에서도 여러분을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제게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독자를 별로 배려하면서 쓰지도 않으면서 독자의
배려에는 큰 힘을 얻는 악덕한 작가녀석이었습니다만. 정말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Neissy였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