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포스트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 ③ 왜 심리학은 반기독교적인가>에서 우리는 태생상 인간의 영적 세계를 부정하거나 혹은 기독교를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심리학이 결코 기독교와 융화될 수 없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런 심리학의 어떤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자기 사랑

 첫번째는 자기 사랑입니다. 심리학의 대가인 카를 융, 에릭 프롬, 칼 로저스 모두 인간이 자기 사랑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낙관적 사고를 기본으로 하며, 자존감을 회복하면 인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져다주는 오류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 사랑을 결과를 내기 위한 원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자존감의 결여가 범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까지 보는 것이죠. 그러나 현실을 보면, 진짜 악독한 범죄자일수록 오히려 자신에 대해 엄청나게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없는것이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자신에 대한 사랑이 어쩌면 범죄의 더 큰 원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잘못 유도된 자존감은 오히려 인간이 가진 죄성을 합리화시키며 상상할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 내는 사탄의 도구로 이용될 여지까지도 있습니다.[각주:1]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 우리 주위는 사람들에게 자기 사랑이 너무 모자라서 문제이므로, 이것을 키워줘야 한다는 시각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기 사랑이 부족한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말하며 자기 스스로를 비난하는 사람은 자기 사랑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에게조차도 무관심할 뿐이지 자기 비하나 분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고 자기 사랑이 지나친 것입니다.[각주:2]

 이러한 자기 사랑에 대해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성경에서는 자기를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사랑은 이미 누구나 충분히 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자기와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렇게 이웃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자랑하라고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만족은 내가 나를 보며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각주:3]


2. 긍정적 사고방식

 두 번째는 '긍정적 사고'입니다. 이것은 특히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을 통해서 많이 전파되었으며,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라도 이름을 알거나 읽어봤을 만큼 유명합니다. 긍정적 사고방식이 긍정적인 삶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맞습니다. 매사 부정적인 사고로 사는 사람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그러한 수준을 넘어서서 긍정의 힘을 절대시한다는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은 인간이 긍정적 사고를 지니지 않으면 하나님조차 그에게 축복을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쓰시길 원하면 반드시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각주:4] 그러나 실제로 그러합니까? 우리는 성경 속에서 부정적인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거나 쓰시는 경우를 아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수없이 자신에 대해 비하했으며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얼마나 부정적이셨습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인간에 대해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신 부분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분 자신에 대해서도,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태복음 8:20)고 하셨으며, 기회만 있으면 자신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하나님은 가장 부정적인 분이고, 사탄은 가장 긍정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너희는 할 수 없다.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죄짓는 것 뿐이다'고 하시고, 사탄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너희는 할 수 있다. 완전해질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기독교의 근본 교리는 바로 인간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데에만 있습니다. 여기 어디에 인간이 긍정적 사고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방식이 있습니까? 기독교의 진리와 긍정적 사고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오는 긍정적인 마인드이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는 긍정적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3. 성공의 법칙

 신을 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자연 종교와 초자연 종교. 신을 일종의 에너지로 이해한다면 자연 종교, 법칙을 초월한 독립적 인격적 창조신이라고 본다면 초자연 종교입니다. 초자연 종교에서는 인간이나 우주, 자연이 있든 없든 신이 존재합니다. 반면 자연주의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주 혹은 자연의 일부이며 신도 그 안에 포함됩니다. 초자연 종교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정도이며, 자연 종교에는 힌두교 · 불교를 위시해 수없이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각주:5]

 자연종교가 믿는 핵심법칙이 바로 '믿는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 또는 생각이 현실을 창조한다. 된다는 마음이 일을 되게 하고 안 된다는 마음이 일을 안 되게 합니다. 뉴에이지의 핵심 사상은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거대한 에너지를 형상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거대한 에너지를 신, 하나님, 부처님, 알라 혹은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은 중요치 않으며, 내가 그 에너지에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활용하며 사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상에 대해서는, 초월명상에 대한 책인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에 대하여 제가 한 감상을 참조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 활용에 중요한 두 가지가 말과 상상입니다.

 이 '말의 힘'이 기독교에 스며든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에게도 말에 권세가 있으므로 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말에 힘이 있다는 근거로부터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 말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말에 권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말이 인간의 마음을 반영하기 때문이며, 말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각주:6] 성공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면 그대로 된다는 상상의 기법 역시 본질적으로는 자연종교의 사상입니다. '인간의 깊은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의 공식을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는 노골적인 자연주의 가르침이나 '믿음을 발휘해서 원하는 것을 얻으라.'는 식의 잘못된 기독교 가르침은 포장만 다를 뿐 내용은 같습니다.[각주:7]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지 아닐지는 우리의 말이나 상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뜻이 하나님과 일치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각주:8] (요한복음 15:7) 그것이 기도이든 주문이든 상상이든, 무엇이든, 우리가 어떤 영적법칙을 사용하면 하나님이 그 법칙에 따라 행동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거대한 에너지로 생각하는 자연종교의 신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각주:9] 우리의 말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예배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조정하고 하나님을 망령되이 하라고 주어지지 않았습니다.[각주:10] 또한 우리의 소위 '비전'은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사용하고 있다면, 대체 불신자와 기독교인이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4. 그리고 다시 심리학

 p. 303에서 저자 옥성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이 원초적인 욕망에 이론적 토대를 놓은 것은 앞에서 살펴본 카를 융을 비롯한 심리학자들입니다. 이것은 "이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단절되었던) 균형이 정상적으로 복원되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심리학이 영적 깨달음에 필요한 공헌을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융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심리학은 예전부터 존재하던 동양의 신비주의 사상들을 과학적으로 들리도록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심리학, 자연주의 종교, 뉴에이지, 이 모든 것들이 인간에게 '할 수 있다'고, '네 안의 신성을 일깨우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의 진리와는 본질적으로 위배되며, 결코 기독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교회는 이런 잘못된 가르침에 물들지 않도록 경계해야만 합니다.


5. 성경으로 돌아가서
 
 그리고 마지막 챕터는 ⑤ 성경은 참으로 충분한가입니다만······, 이것은 책에서는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의미로 중요하겠습니다만 제 블로그에서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만 정리하겠습니다.

 1) 성경에 대한 잘못된 자세와 그 교정: ⓐ 성경은 내게 오는 소위 feel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고 아니고가 결정되지 않는다. 어떻게 느껴지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 말씀을 많이 알면 머리만 커지고 가슴이 차가워져서 기도를 열심히 안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양자는 함께 성장하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 성경에 쓰여있는 가르침 중 상당수는 오늘의 현실과 맞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포기할수록 죄와 책임은 사라지고 병과 치료가 등장하며, 그 대가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가 치러야 한다.

 2) 성경으로 돌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성경의 충분성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다. 성경의 충분성을 알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깊고 넓게 그리고 간절히 읽어야 한다.

 3)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2)

 4)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추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우리 시대는 복받은 시대다. 우리는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과 수많은 자료, 주석과 사전을 쉽게 구할 수 있다.

 5) 성경의 충분성을 알기 위해 우리는 성경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단순히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믿고 순종해야 한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수록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짜 진리'이며 그 말씀이 정말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함을 알게 된다.


 이상,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 대한 요약 인용 포스트 마치겠습니다. 감상 포스트인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타협할 수 없는 진리>로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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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옥성호,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부흥과개혁사, 2007, p. 165 [본문으로]
  2. Ibid., p. 166 [본문으로]
  3.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린도후서 3장 5 [본문으로]
  4.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기 원하시면 일단 책을 사시고 여기에 소개된 조엘 오스틴의 CNN 인터뷰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실제로는 성경에 대해 거의 모르며,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메시지를 위해 성경 말씀 한두 개를 덧붙이는 사람 같습니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바라보고,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부정적인 부분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는 왜 9 · 11 테러 같은 경우가 일어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본문으로]
  5. Ibid., pp. 254-255 [본문으로]
  6. Ibid., p. 263 [본문으로]
  7. Ibid., p. 301 [본문으로]
  8. Ibid., p. 281 [본문으로]
  9. Ibid., p. 262 [본문으로]
  10. Ibid., 285 [본문으로]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