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대고 판자에 긋는다. 판자에는 수없이 칼로 그었던 흔적이 판자에 남아있다. 그 금들은 선명하거나 흐릿했다. 쉬 헤아리기 어려울 만치 많은 금이었지만 어느 것도 판자를 자를 만큼 깊지는 않았다. 어쩌면 판자가 칼로는 잘리지 않을 만큼 단단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충분히 두꺼웠을지 모른다. 그도 아니면, 애초부터 판자를 자르기 위한 칼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칼날을 본다. 그것은 아주 예리한 칼날이다. 적어도 그렇다 여겼다. 그러나 어쩌면, 혹시, 아마도. 그 불확실함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칼날에 대게 한다. 때로는 확인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일도 있으므로. 칼날을 만진다.

 의외의 감촉이거나 혹은 예상대로의 감촉이었다. 엄지에 남은 감각을 뒤로하고 다시 칼의 손잡이를 잡는다. 감촉으로 받은 느낌을 확증하듯 칼을 판자에 그어본다. 아주 둔한 작은 홈만이 패일뿐이다. 다음에 같은 홈을 만드려면 보다 많은 힘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칼날이 이제 더 이상 날카롭지 않음을 안다. (終)
Posted by Nei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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