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민음사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몸은 세속에 속해 있지만 정신은 머나먼 이상을 바라보는 남자. 세속의 가치기준은 그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 또한 세상에 별 영향을 주려 들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는 것만을 향해 나아갈 뿐입니다. 그 남자의 이름인즉 찰스 스트릭랜드. 그리고 <달과 6펜스>는 그 남자를 지켜본 화자의 기록입니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부터 우리에게 한 가지 의미를 말해줍니다. 6펜스는 영국에서 가장 낮은 가치로 유통된 은화이며,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달과 대비되어 세속적 가치를 상징합니다. 이 소설을 아주 간략하게 압축해보자면 이상과 현실의 대립, 그리고 그 현실을 초월하기 위해 노력한 어느 화가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군요.

 화가, 네, 그렇습니다. 미술에 대해 아시는 분이라면 저 표지에서 무언가 알아내실 수 있을 겁니다. 고갱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이며, 이를테면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폴 고갱을 모티브로 삼아 소설적으로 재창조해낸 인물입니다. 평범해 보이던 증권 브로커가 화가가 되었으며, 곤란 끝에 타히티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숨을 거둡니다. 스트릭랜드가 그려낸 그림은 고갱의 그것과 이미지가 닮아 있습니다. 이 소설을 보다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고갱의 그림을 좀 감상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인간군상이 등장합니다. 세속적인 인습에 구속되고, 그 삶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인물. 혹은 눈은 이상적인 것을 바라보지만 몸은 세속에 갇혀 있는 인물. 그리고 또는, 자신이 바라보는 이상적인 세계를 위해 기꺼이 세속을 버리는 인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이상 혹은 현실을 상징하며, 때로는 양자 모두의 속성을 가지기도 합니다. 찰스 스트릭랜드로 말할 것 같으면,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세 번째지요.

 그는 세속, 혹은 물질적인 것을 경계하다못해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이라면 살아가며 응당 인간 관계를 맺기 마련인데, 그에게서는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반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에게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기준이나 인습이 어떤 의미도 없으니, 그에게서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큰 좌절을 겪게 되죠. 그는 사랑조차도 자신을 구속하려 들기 때문에 거부하는 남자입니다.

 그러나 천재죠.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그가 바라보는 이상은 아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세속적인 삶에 그저 만족해버린 사람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찰스 스트릭랜드는 매력적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꿈을 위해 치열하게 도전하는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종류의 매력입니다. <달과 6펜스>가 만약 매력적으로 읽힌다면, 그건 독자에게 꿈이나 이상, 예술에 대한 도전 욕구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현실에 굴복해' 꿈을 버린 사람들에게, 꿈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의 이야기는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테지요. 그는 무엇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이상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물론 저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변하거나, 새삼스레 감동을 느꼈다고 외칠 생각은 없습니다. 저더러 감상을 묻는다면, "그런 삶도 나쁘지는 않아"입니다. 스스로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떤 길을 가든 좋지 않겠습니까? 가족들을 부양하고 살아가며 소위 세상의 인습에 그저 만족하며 산다 해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에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테니까요. 저 역시 저 자신이 멋진 소설을 쓰며 살아가기 원하지만, 그 어떤 천재적인 작품을 써내는 것이 사람 한 명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보다 더 고귀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세계 최고의 음악이나 명화, 소설이 주는 감동이 가족을 위해 고생해 일하는 아버지를 보며 느끼는 감동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가치는 부여하기 나름입니다. 그 누구의 삶에도 가치가 있으며, 자신의 가치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꼭 찰스 스트릭랜드가 아니어도 말이죠.

 그렇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찰스 스트릭랜드는 좋은 사람이었으며 그의 가치기준이 세속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화자의 말마따나 "오히려 스트릭랜드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그가 한 일은 옳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도 만들었죠. 그가 천재이기 때문에, 세기의 명작을 남겼기에 그것이 용서될까요? 그것은 아니죠. 그러나 동시에, 그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내려던 의지 자체는 인정할 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혼신을 기울여 만들어낸 작품도 인정할 가치가 있죠. 때로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인격적으로는 용서할 수 없지만, 그의 노력이나 작품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달과 6펜스>는 재미있으며, 찰스 스트릭랜드는 매력적이라는 겁니다. (히죽) 꿈이나, 예술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히겠죠. 더 말이 필요할까요? 읽어보세요. 그리고 나름 생각해보세요. 이 소설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캐릭터는 찰스 스트릭랜드뿐이 아닙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