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는 죽어야 한다
니콜라스 블레이크 지음, 이순영 옮김/황금가지

 "그런데 육체적 · 정신적으로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치료가 안 되는 사회의 기생충, 그러니까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끔찍하게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인간은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 <야수는 죽어야 한다>, p.110

 주인공은 한 남자를 죽이려 합니다. 그의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르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를 찾아내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아들을 죽인 남자, 차로 치어 죽이고 뺑소니친 한 남자. 경찰이 찾아내지 못했기에 그 자신이 찾아내어 처벌하려 합니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추리소설입니다.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전반은 주인공이 한 남자를 찾아내 죽일 계획을 세우는 부분까지의 일기인 1인칭 시점과, 후반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인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이루어집니다. 추리 소설로서의 구성을 말한다면 전반인 1인칭 시점까지가 독자에게 주어지는 '상황'이며, 이 상황으로부터 추리하여 '진실'을 알아내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전반의 주인공은 아들을 잃어버린 펠릭스 레인이지만, 후반의 주인공은 펠릭스 레인이 고용한 탐정인 나이절 스트레인지웨이스가 됩니다. 추리소설로서의 구성을 말해본다면, 꽤 공정하며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괜찮은 추리소설이라 할만하다 할 수 있겠군요. 작정하고 작가와 머리 싸움을 벌인다면 아마 진범을 찾아내기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사실 진범을 찾아내고 말고가 그리 중요한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감상의 부제를 '사람을 죽여도 괜찮은가'라고 적었지요. 본래 영국의 계관시인인 세실 데이루이스가 필명을 니콜러스 블레이크로 하여 써낸 이 소설은 (필명 하니······ 그렇군요, 반 다인의 <벤슨 살인사건>도 원래 추리작가가 아닌 사람이 필명으로 낸 소설이었죠), 시인이 써낸 소설답게 문장이 세련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많이 볼 수 있다시피, '어떻게' 죽였나보다는 '왜' 죽였는가가 중시됩니다. 삶 그 자체를 보다 사유하게 만드는 소설이죠.

 그렇기 때문에 펠릭스 레인의 일기가 중요합니다. 이건 단지 진범을 추리해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소설'로 읽히기 위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 일기에는 아들을 잃고 난 후 펠릭스 레인의 고뇌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언뜻 하드보일드 풍으로 읽히기도 합니다만 아주 하드보일드라고 말하기 좀 어려운 게 이 부분인데, 다분히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고뇌와 고통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들게 만들죠: '그래, 그런 빌어먹을 자식은 좀 죽여도 괜찮아.' 아무리 자식이 죽었다고 해도 직접 범인을 죽이려 든다는 게 옳진 않잖은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펠릭스 레인의 일기를 읽고 있노라면 그 천하의 개자식을 죽이려 드는 펠릭스 레인의 마음도 십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야수는 죽어야 한다>가 추리소설이라고 말하지만 그냥 일반적인 문학으로 읽어도 별 무리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펠릭스 레인이 느꼈던 감정을 독자도 함께 느끼는 것이고, 그와 함께 인간이 인간을 죽여도 되느냐는 문제를 좀 더 사유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범이 밝혀졌을 때, 독자는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끼게 되겠지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소설입니다. 추리소설로서도 괜찮고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