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를테면 나는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다. 판타지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마치 당연히 존재한다는 듯이 서술된다면' 대체로 판타지라 말할 수 있다. 잘 쓴 판타지 소설이란 그걸 정말로 있을 법하게 적어내는 것이며, 소설 자체가 애당초 생구라를 그럴싸하게 써내는 물건임을 상기해본다면 딱히 판타지라고 해서 저급한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단지 잘 쓴 소설과 못 쓴 소설만이 있을 뿐이다.
                                          떡밥에 낚일
 · 그러므로, 판타지를 쓰는 인간이라면 판타지 소설이 문학이냐 아니냐 하는 고심을 할 시간에 제대로 글 쓸 생각이나 더 하는 게 옳다고 본다. 패스트푸드를 만들건 웰빙푸드를 만들건 먹는 사람이 만족할 수 있게끔 잘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본인이 패스트푸드를 만들면서 '웰빙푸드는 안팔려서 이렇게밖에 만들 수 없어'라고 찌질거리지 않아야겠고. 최소한 자기가 맛있고 영양가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만들어야지. 웰빙푸드를 못 만들겠다면 적어도 맛좋은 패스트푸드를 만들라고. <피아노의 숲>에서 아지노는 슈우헤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넌 자신의 피아노에 좀 더 애정을 갖도록 하려무나. 그러면 알게 될 거다.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는 걸 말야."

 · 좀 다른 이야긴데, 왜 한국형 판타지가 없는 것인가? 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어진다.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이런 질문을 해봐: "왜 한국형 락은 없나요? 당신들은 락을 한다면서 왜 한국적인 것에는 신경쓰지 않습니까?" ㅡ한국형이니 아니니 하는 것에 집착하는 시간에 소설 얼개나 더 신경쓰라고 말하고 싶다.

 · 말하자면, 판타지가 저급하게 여겨지는 건 설정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설덕후가 되기 이전에 좀 더 인간을, 삶을 진지하게 고찰하지 않으면 문학을 통해 사유하고 싶어하는 독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워진다.  독자가 정말 소설에 감동을 받는 건 설정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 이야기 구조로부터 짜여나온 인간의 삶으로부터 감동이 나온다.

 · 나는 아직 어리고, 공부도 모자라다. 한 편의 글을 다 써내도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보면 잘못된 점이 자꾸 눈에 보인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니까. 어떤 글이 언제까지라도 완벽해 보인다면 (여태껏 그런 일은 없었지만. 써낸 직후에조차), 그건 내가 완벽한 글을 써내서가 아니라 내가 전혀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계단을 밟아 오르는 작가가 되고 싶다.

 · 여하간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글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에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글을 쓸 이유는 충분하겠지.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