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정진 옮김/신원문화사

 이름은 익히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읽어보지 못한 책이 여럿 있는 법입니다. 제 경우는 <파우스트>가 그 중 하나였는데요, 사실 굉장히 심오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생각만큼 심오하진 않고 적당히 읽을만하더군요. 물론 그랬던 이유는 제가 이 희곡의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스토리 흐름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만, 뭐 그렇게 읽는 것도 나름 책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사실 <파우스트>를 제대로 즐기려면 좀 지식이 많아야 합니다. 우선 무엇보다 필수로 요구되는 건 시적 언어에 대한 감각이죠. 그리고 아마 이건 독일어 원본으로 읽어야 참맛을 알 듯 합니다만, 여하간 저는 시라거나 운율에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지라 그에 대해서는 뭐라 말하기가 어렵군요. 그리고 시에 대한 이해 외에도, 당시 독일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가 좀 필수요소로 들어갑니다. 이유인즉슨, 이게 괴테가 <파우스트>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동안 나오는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대사를 빌어, 마음에 드는 관념 (혹은 덕목, 혹은 사람)을 칭송한다거나 그 역은 깐다거나 (...)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빗대는지 알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죠. 따라서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주석이 필수고, 그런 의미에서 책에 달린 역주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줄거리 자체를 말해볼까요. 파우스트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그와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신 적 있을 듯합니다. 간단하게 간추려보면, <파우스트>는 다음과 같은 전개입니다: 우주의 원리를 규명하려 하지만 자신과 지식의 무력함에 고통하는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향락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르가레테라는 여성이 비극적으로 희생되는 부분까지가 1부. 2부에 들어서면 그리스 시대로 들어가 헬레네와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만, 그래도 결국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종국에는 어느 황제를 도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봉토를 갖게 되고 그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와 무언가 이루어내려 하지만 그 희망을 제대로 이루기 전에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 때문에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죠.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손에 넣어서 기뻐하지만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천사 강림으로 그를 뺏기게 되고 파우스트는 천국으로 올라가 마르가레테와 다시 만나게 된다······ 는, 어찌 보면 사랑 이야기로도 읽히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걸 그저 사랑 이야기로만 읽기는 어렵죠. 너무 단순하게 보면 왜 그리스 쪽 이야기가 왜 그리 긴지 설명하기 조금 어렵습니다. 이 경우는 미나 지식의 추구를 비유한 것으로도 이해해야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이를테면 ① 마르가레테로 대표되는 독일 - 현대의 미의 추구에서 실패하고, ② 그래서 헬레네로 대표되는 그리스-로마의 고전미를 추구하지만 그 역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여, ③ 봉토와 그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움으로, 더 이상 자기만을 위한 미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봉사로서 구원을 맞이할만한 결과에 이른다······ 고 생각할만하다는 뜻이죠.

 그리고 동시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로 대표되는, 방해요소를 계속 극복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도 들어있고요. 그는 끊임없이 파우스트가 그저 향락에 만족하도록 이끌죠. 인간을 망가뜨리는 수많은 악덕들을 <파우스트>에서는 논합니다. 여기에 대해 자세히 말하려면 꽤나 많은 분량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여하간 제 감상에서는 이 정도로 간단하게 설명하는 정도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워낙, 심오하게 들어가려면 한없이 심오하게 들어가는 희곡입니다.

 의외로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말이 고급스럽긴 하지만, 고전이라 해서 무조건 어렵게 읽어야 한다거나 심오하게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죠.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