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코담뱃갑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황제의 코담뱃갑에 대해서는 사실 예전에 PaleSara의 감상을 읽었던 적이 있었죠. 그 녀석이 꽤 극찬을 했기에, '괜찮겠지?'하고 산 겁니다만 괜찮군요. (히죽) 스토리 라인은 간단합니다. 책 뒷부분의 해설 중 내용 소개 부분을 옮겨와 보면,
' 이혼한 한 여성이 앞집 아들과 약혼한다. 두 사람이 연극을 보고 돌아온 그날 밤, 그녀의 방에 전남편이 숨어 들어와 관계 회복을 요구한다. 그녀는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입장은 점점 어려워진다. 문득 앞집을 보니 약혼자의 아버지가 수집품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도움을 청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다시 건너편 방을 바라보았을 때는 그의 아버지가 살해된 것을 깨닫는다. 앞집 식구들이 그 죽음으로 소란스러울 때, 그녀는 황급히 전남편을 집 밖으로 몰아내지만 뜻밖의 사고로 그녀가 살인용의자로 지목된다. 무죄를 증명하자면 피해자 측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전남편을 데려와야 하는데, 그는 자기 집에서 쫓겨난 뒤 뇌진탕으로 의식불명이라는 궁지에 몰려 있다.'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여성이 음모에 휘말려들어 있으며, 이 사건 해결을 돕기 위해 불려온 정신분석의 다모트 킨로스 박사는 이 여성의 증언과 주위 사람들의 증언, 그리고 여러 가지 정황을 토대로 이 사건의 허점을 찾아내고 결국 진범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 밀실살인은 완벽한 듯 보이지만 실은 어처구니없는 곳에 허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심리라는 사각이며, 사람들이 무심코 넘기게 되는 부분이죠. 그리고 킨로스 박사는 바로 그 부분을 예리하게 집어냅니다.
라는 것으로, 이 밀실살인은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심리를 이용함으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말하자면 트릭입니다만, 단순히 기술적인 것만이 트릭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도 뛰어난 트릭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하긴 기술적인 부분의 트릭이라고 해도, 결국 인간 심리를 이용하는 기술적인 트릭이라는 점에서 이 심리 트릭이 기술적 트릭보다 급이 낮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겠지요. 다만 이 소설은 심리적인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부각시켰을 뿐입니다.
글 내에 충분히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는 재료들을 뿌려주고 있으며 나중에 범인이 밝혀졌을 때 '오호, 그런 거였군!' 이라고 납득할 수 있게 짜여져 있습니다. 저는 중반쯤에서 언뜻 짐작했으나 굳이 생각하기 귀찮아서 그냥 슥슥 읽었기 때문에 결국 특정하지는 못했더랬습니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킨로스 박사가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기 전에 잠시 더 읽는 것을 미루고 그 때까지 나온 재료를 종합해보시면 충분히 범인을 찾아내실 수 있을 겁니다.
소설 속에 충분한 복선을 넣어 주고, 글 내에서 추리하는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은 독자도 같이 알고 있는 것이지요. 독자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고 글 내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내용으로 추리한다면 그 소설은 훌륭한 추리소설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황제의 코담뱃갑'은 충분히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추리 외적인 요소입니다만, 다분히 순정적인 로맨스도 곁들여지고 있는데 저는 이것도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뭐 결국 취향이라는 겁니다만.
또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면, 이 동서 미스테리 북스 판 '황제의 코담뱃갑'에는 뒷부분에 중편이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제 3의 총탄'이라는 중편입니다만, 이쪽도 추리하는 재미가 확실히 있더군요. 하나씩 하나씩 알려지는 사실들로 인해 주인공들과 함께 추리하는 맛을 살릴 수 있습니다.
추리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 중 '황제의 코담뱃갑'을 아직 안 읽어 보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책 둘레 띠지의 '크리스티가 탄복한 명작'이란 말은 과연 허언이 아니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