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타입의 소설이었습니다. 물론 소재는 꽤 흥미로웠지요. 모두가 눈 먼 자가 된 세계, 그런 세계는 대체 어떠할 것이며, 또한 그 속에서 홀로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당초 제가 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게 된 이유는 입소문 때문이었는데 이 책이 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랬죠. 그래서 읽어봤습니다만, 글쎄요, 아무래도 제 취향과는 거리가 있더군요.

 그건 이 소설이 묘사하는 세계가 원초적이고 음습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모두가 눈이 멀어서, 누구도 누구를 구속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면, 그리고 실질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생산적이라 여겨지는 거의 모든 활동이 정지되고 그저 소비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과연 모두는 어떻게 행동할까? 작가는 그에 대해 인간의 동물적인 면을 보여줍니다. 가치도 윤리도 사라지고 맙니다. 인간이 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와 같은 결과는 필연이라고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죠. 그러나 저는 작가가 이렇게 세계를 표현한다고 해서 굳이 반발할 생각까지는 없습니다. 애당초 저는 인간을 그다지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습니다만.

 사실 작가는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만큼 원초적이게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두가 이 망가진 세계에 동의하고 있지는 않는다고 이미 소설 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그리고 다시 세계를 되돌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존재합니다. 그것만이 이 눈먼 세계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냥 이런 내용이었다면 사실 제가 읽으면서 '아, 이건 진짜 취향에 안 맞는데.'라고 중얼거릴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극한상황에서의 인간의 비겁함이나 무력함을 본다 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겠죠. 그러나 제가 반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끊임없이 '너라고 다를 것 같아?' 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입니다. 저라고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죠. 총을 든 (나와 마찬가지로 눈먼) 깡패의 위협에 굴복해, 식량을 얻기 위해 자기 아내를 범하라고 내어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건 닥쳐보기 전에는 알 수 없죠. 그러나 작가는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는 듯이, 마치 일은 당연히 그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는 듯이 서술해냅니다. 그러면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반발합니다.

 이 소설은 우화적이고 관념적인데, 거기까지는 괜찮지만, 말이 너무 많습니다. 소설 내에서의 대사를 좀 옮겨보면, "그 행동 자체의 무시무시함이 워낙 충격적이라 우리가 굳이 입으로 그것이 무시무시하다고 말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p.411)" 그냥 이런 상황들을 보여주기만 하고 독자에게 생각하게 만들어도 좋았을 텐데, 작가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 노인이 노파가 사는 것처럼 산다면, 그의 교양 있는 태도가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한번 보고 싶다. (p.350)" 너희라고 다를 것 같아? 라는 외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는 답하죠: 그리 다르지는 않겠지만, 꼭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을걸.

 문장 부호를 생략하며 직 · 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 소설은 더더욱 관념적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실제로 있을법한 일처럼 여겨지기보다는, 작가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에서 굴러가는 일들처럼 여겨집니다. 물론, 어쩌면 제가 이런 세계와 그 삶에 그저 반발하기 위해 그렇게 여기고 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역시, 이 소설이 상당한 개연성과 현실성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관념적인 작가가 생각해낼 법한 사건 전개'를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가기 때문에 '실제로도 이러할 것이다'라고 크나큰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상황이 있고 그에 따라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생각하게 하고 싶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나올만한 상황을 만들어내었다는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물론 따지고 보면 많은 소설들이 그런 이유로 탄생됩니다만, 그래도 전 이렇게 노골적이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만일 관념적인 사건과 관념적인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이 소설은 충분히 여러분께 즐겁게 읽힐 겁니다. 애당초 '눈이 먼다'는 상황 자체를 소설 내에서 관념적으로 해석해주고 있는 소설입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