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닥터, 밥 피터슨

 어떤 의미에서, 픽사는 영화계의 흥행 보증수표나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3D를 아는 사람은 그 표현력이나 질감에 감탄하고, 3D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은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합니다. 어느 쪽이건, 어떤 부류의 사람이건, 픽사의 3D 애니메이션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점만은 인정하리라 봅니다.

 이를테면 밸런스가 잘 맞습니다. 확실히 픽사의 기술력은 상당한 수준인데, 그러나 그 기술력에 휘둘려서 '영화 전체적으로는 사실 별로 필요 없지만 우리는 이런 영상을 만들 수 있으니까 영화에 어떻게든 끼워 넣어야겠어.. 그런 스토리를 써내자!'는 식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면 이야기, 영상미면 영상미, 연출이면 연출, 그 모두가 잘 조화를 이루며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라따뚜이> 감상 때에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각각의 신마다 웃음과 감동, 스릴과 감탄을 주기 위한 연출이 실로 적절합니다. <같은 장면이라도,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볼 수 있을까?>를 세심하게 연구했다는 것이 전달되어 오는 그러한 장면들의 연속'이기에 시간이 흐르는 걸 느끼지 못하고 즐겁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스쳐지나가는 장면 하나하나가 신경써서 세심하게 만들어져 있음에 감탄하게 되죠. 이런 게 계속되는 한 픽사는 앞으로도 흥행 보증수표가 되어줄 겁니다.

 <업>에 대해선데, '잊고 있던 꿈'이라거나 '풍선을 타고 날아가기', '모험', '인간이 함께한다는 것', '원래 옳은 길을 갔었을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는가' 등의 이야기를 잘 버무려 놓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만화적이어서, 관람자로서는 여하간 부담 없이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메시지를 잡아 사유하건 하지 않건, 사실 별로 관계없습니다. 그래도 되고 안 그래도 돼요. 즐기고자 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관람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전 그런 걸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제가 본 건 더빙판 ㅡ네, 그 유명한, 이순재가 더빙한 한국어 더빙판이요ㅡ이었는데, 개인적인 견해를 말해보라면 영화 즐기는 데 부담 없게끔 잘 더빙되었다고 봅니다. <업>을 볼 생각인데 관람 가능한 시간대에 더빙판밖에 없다고 해도, 별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