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여행하는 시각장애행세자를 위한 안내서
The Fakeblind's Guide to the Metro


 돈 벌기 힘든 세상입니다. 돈 벌기 힘들어서 별 수 없이 벌어먹기 위해 빌어먹는 길을 택하신 여러분ㅡ 그리고 그 중에서도 시각장애행세자 여러분께 아마 이 글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구걸이란 즉 사람들의 동정심에 기대어 금전을 획득하는 작업인데, 이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동정심을 짜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짜 시각장애자라도 생각만큼 동정심을 받기 어려운 판에 시각장애행세자는 더 그렇죠.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진짜 시각장애자처럼 보여야 한다는 점인데 이게 여러분의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눈 감고 맹인용 지팡이 적당히 휘젓는다고 시각장애자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뜻이죠. 여러분이 쉽게 범하기 쉬운 두 가지 오류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선글라스에 의지해선 안 됩니다

 초보 시각장애행세자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어필하는 데는 역시 선글라스가 기본입니다만, 요즘의 (지하철을 여행하는) 시각장애자들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눈을 제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추세입니다. 워낙 행세자가 많아진 탓에 선글라스 낀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러느니 그냥 눈을 감고 다니는 쪽이 낫습니다.

 무엇보다도, 선글라스를 끼면 '저 사람들은 내 눈이 안 보이겠지' 싶어서 실눈을 뜨게 되기 쉽습니다. 혹시 누군가 돈을 주었다고 해도 돈이 얼마짜린가 괜히 실눈으로 보고 그러지 마세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당신의 을 주시하고 있으니, 그런 일을 했다가는 바로 행세자임이 뽀록나므로 좋지 않습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2. 맹인용 지팡이는 짚고 다니는 물건이 아닙니다

 맹인용 지팡이 (white stick)는 장식이 아닙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몰라요. ······최근의 시각장애행세자들은 맹인용 지팡이에 진지하지 않은 경향이 있는데, 이 도구의 사용법에 숙달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각장애자의 마음이 되어, 맹인용 지팡이를 당신의 안내자이자 더듬이로 완벽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냥 들고서 적당히 허공에 휘젓기만 하는 일, 안 됩니다. 자신의 발치 너무 코앞에 대고 흔드는 일도, 안 됩니다. 자신의 두어 발짝 정도는 떨어진 곳에 대고 흔들어주면서 오로지 그것으로 앞에 장애물이 있는지 없는지 감지하도록 합시다. 가끔씩 바닥을 탁탁 쳐서 '여기 맹인이 간다'고 어필해주면 보다 효과적입니다.

 이 지팡이를 잘 사용함에 따라 정말 리얼하게 보일 수도, 짝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지팡이만 잘 사용해도 '문 앞에서 알아서 멈추더니 문을 열고 다음 칸으로 넘어간다', '지팡이가 닿지도 않았는데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몸을 좀 피하려 든다'는 등의 실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로 못 느꼈다면 차라리 그냥 부딪히세요. 그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서 보다 효과적인 구걸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마음을 보다 느껴주세요. 가능하다면 홍천녀는 당신의 것입니다.


 ······요즘 전철에 순 가짜 시각장애인만 보이길래 간만에 써봤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