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외 옮김/예경

 미술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일컬어 미술이라 칭하고, 무엇을 보면 아름답다고 말할까요? 왜 고대의 미술은 그런 식이었으며, 현대의 미술은 이런 식일까요? 미술의 역사는 어떻게 변해왔으며, 지금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서양미술사>를 읽으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음, 이거 완전히 광고 문구로군요) '지금까지 출판된 미술에 관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책 중의 하나'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미술사에 대한 곰브리치의 해박한 식견을 선사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미술에 대하여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미술 작품들을 보다 즐겁게 감상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되었으니까요.

 이 책에 대해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란, 서양미술사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만큼 이 책에 담겨진 내용은 방대하며 깊습니다. 그러므로 이 감상에서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제가 이해한 내용들을 짤막하게 말하는 쪽이 좀 더 이 책을 잘 전하는 일이 될 듯 싶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만이 잘 된 미술은 아닙니다. 물론 미술마다 각기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므로 단지 '실제'와 똑같이 그렸다고 하여 잘 된 미술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과 영 다른' 미술보다는 '실제와 비슷한' 미술을 보았을 때 '멋지다'고 말하게 된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건 사실상 '(회화미술에 있어)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야 잘 그려진 것이다'는 사고가 지배하고 있음을 뜻하죠. 그런데 그렇다면 17세기 이후로 실제와 비슷하게 그리는 일을 그만둔 미술의 경향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쉽습니다. 왜 요즘의 미술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그려지고 있는가? 실제와 비슷하게 보이도록 그리는 회화상의 기법은 이미 17세기에는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그게 문제죠.

 이미 남이 다 해놓은 걸 그저 따라하기만 하는 것은,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전혀 매력적이지 못한 일입니다. 주문된 양식에 따라 필요한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 할 일이었던 중세 이전과 달리 근대 미술은 자기 표현의 경향이 아주 강해졌고, 과연 미술은 더 발전할 수 없는가? 또한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 그 사물의 실체인가? 라는 화두가 대두됩니다. 그러니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게 되지요. 그것이 설령 당장 보기에 아름답지 않다고 할지라도, 미술가의 의도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며 다시 그 작품을 본다면 정말로 아름답지 않다고는 할 수 없게 됩니다. 더구나, 사진이라는, 사물을 보이는 대로 그냥 그려주는 데에는 이미 완벽하다시피 한 물건이 나온 요즈음에는 '그냥 보이는 대로' 그리는 회화는 예전보다 더 그 매력이 떨어졌지요. (사진이 나오기 전까지는 회화가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죠)

 미술을 미술 그 자체만으로 따로 떨어뜨려놓고 이해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당시의 종교, 철학, 그리고 기타 기술의 발달 사항과 항상 연관시켜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미 많은 것들이 발전해있고 어떠한 사상도 사실상 표현의 자유로서 용인되는 지금의 시대 기준에서가 아니라, 그 미술 작품이 그려졌을 당시의 시대에서 그 작품이 어떻게 보여졌을까를 생각해보아야 그 작품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서양미술사>는 미술작품들을 시대상과 함께 이야기하며 설명해주어서 그런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ㅡ회화, 조각, (그리고 대략적인) 건축 양식이 시대별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게 되죠.

 부록을 제외하고서만도 64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책은, 많은 인문서적들이 그렇듯 사실 읽기에 편한 책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소설 한 권을 두어 시간이라면 읽을 수 있는 저도, 이 책을 읽을 때는 100페이지에 서너 시간이 필요했으니까요. 들어있는 정보량이 엄청나고, 도판들을 대조해가며 '아 이게 그렇게 되는구나' 하고 계속 이해해야 하죠. 물론 저는 이런 책을 한 번 읽고 끝낼 생각은 아니라 그래도 좀 편하게 읽은 편입니다. 대개 이런 류의 책은 전 '나중에 어느 부분이 필요할 때 어디를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정도까지로만 이해하면 만족합니다. 사실 이거 읽은 당초의 목적이 제가 쓰는 소설에 미술 부분이 나올 때 좀 더 시대상에 맞는 미술작품이 나올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교양 늘리는 것도 목적이긴 하지만 작가에게 있어 교양이란 결국 공부와 동의어니까······. 말이 좀 샜는데, 어쨌든 읽기 편한 책은 아니지만 그런 만큼 읽고 나서의 뿌듯함은 굉장히 큽니다. 미술에 좀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확실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봐요. 그런 분이라면 아마 제가 이 감상 쓰지 않았어도 이미 찾아 읽으셨겠지만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