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아프리카
카렌 블릭센 지음, 민승남 옮김/열린책들

 아주 가끔 그런 책이 있습니다: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샀지만, 엄청난 만족을 가져다주는 책이요.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그런 책 중 하나였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열연했다는 동명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유명한데, 원작인 이 책은 영화와는 달리 주인공의 로맨스가 주고 아프리카가 부이지 않고 아프리카가 주이고 주인공이 부입니다. (로맨스는 사실 나오지도 않습니다. 전 그런 게 있다는 걸 해설 보고 알았어요······ 아시다시피 전 소설이 원작이면 영화를 보지 않아서요)

 이 책은 아프리카에서 카렌 블릭센이 보고 들은 일들, 그리고 느끼는 일들로 채워져있습니다. 그녀는 서양인으로 아프리카에 갔지만, 서양인의 가치관으로 그들을 판단하지 않고 그들의 가치관과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아프리카를 유럽식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아프리카를 아프리카 그대로 바라봅니다. 사실 외려 아프리카를 너무 좋게만 표현하지 않았나, 지나치게 호의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시선이 따듯합니다. 백인 시각에서 볼 때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거든요.[각주:1]

 그녀는 그곳에서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커피 농장을 세우고, 그곳에서 많은 아프리카인들과 교류하고, 아프리카의 자연을 체험하고 동물들을 보고, 아프리카와 함께 하다, 커피 농장이 결국 망하게 되어 유럽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느끼는 많은 일들을, 그녀는 어딘지 관조적이며 한편으로 따스함이 느껴지는 시각으로 적어나갑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치 그녀와 함께 아프리카에 다녀온 기분입니다. 무엇보다 묘사력이 좋고, 세심합니다.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기쁨이죠.

 아프리카를 좋아하신다면, 아니면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좋은 벗이 되어줄 겁니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쏴 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키 큰 나무들을 스치는 소리지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가 땅에서 들린다면 관목과 키 큰 풀들 속에서 나는 바람 소리지 빗소리가 아니었다. 땅 바로 위에서 살랑거리고 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옥수수 밭의 바람 소리였다. 그 소리는 빗소리와 너무도 흡사해서 번번이 속고, 애타게 기다리는 존재를 연극 속에서 본 것처럼 약간의 만족감까지 얻지만 그래도 역시 빗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지가 공명판처럼 깊고 풍부한 포효로 응답하면, 그리하여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모든 차원에서, 위아래 전체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건 빗소리였다. 그건 마치 오랫동안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가 바다로 돌아간 것과 같았고 연인의 포옹과도 같았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pp.46-47


······ 함께 탄 파라 말이 그 기린들은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에서 함부르크로 실려 가는 것이며 순회 동물원에 들어갈 신세라고 했다.
 기린들은 놀란 듯 가냘픈 목을 이리저리 돌렸는데 사실 놀랄 만도 했다. 바다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나무 궤짝은 기린들이 겨우 서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기린들의 세상이 갑자기 줄어들고 이상하게 변하여 기린들을 옭죄고 있었다.
 기린들은 항해 후에 자신들이 어떤 신세로 전락할지 상상도 못 할 터였다. 드넓은 초원을 여유롭게 거닐며 살아온 당당하고 순수한 생명체가 포로 생활과 추위, 악취, 담배 연기, 옴,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의 끔찍한 권태를 어찌 알겠는가? ······
같은 책, pp.2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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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론 혹자는 그래봐야 결국 그녀는 농장주이고, 백인 제국주의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프리카를 착취 대상이 아니라 아프리카 그 자체로 이해하려고 한 노력을 부정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있어 사냥 대상이었던 아프리카의 동물들도, 나중에는 그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되는 것으로 바뀌었죠. [본문으로]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