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보고 왔습니다


 <에쿠우스>라는 연극에 관해 저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친구인 최모 군이 예매했고, 같이 연극 볼 사람을 찾는다는 말에 '저 연극 좀 보고 싶음 ㄳㄳ' 하여 보게 되었죠. 음악 연주회라면 몰라도 연극이나 영화를 보기 전에 정보를 찾아보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연극을 보면서 줄거리를 파악해야만 했습니다.

 연극의 구성은 미스터리입니다. 무대 한켠에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 (제가 본 날에는, 송승환 분)이 등장해 독백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대 뒤에 그리스 조각상과도 같은 몸을 지닌, 전라에 가까운 남자 (연극 상에서는 말- '에쿠우스')와 그를 숭배하는 듯한 한 소년이 등장하며, 마틴 다이사트는 연극이 시작하는 그 시점에서는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합니다. -이 장면은 2막에서 재연되며, 그 때에 가야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어쨌든 이 시점에서는 이해 가능할 리 없으며, 한껏 의아함을 키운 다음에야 마틴 다이사트는 관객들을 이해한다는 듯이 이야기를 순서대로 풀어나가겠다고 말하고 사건을 처음부터 시작합니다.

 열여섯 살 소년이 있습니다. 알런 스트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소년은 마굿간에서 일했는데 돌연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찔렀습니다. 왜였을까요? 그가 단지 미친놈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건이 풀려나감에 따라 관객들은 소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억압된 가정, 무신론자 아버지와 지나치게 종교적인 어머니. 알런에게는 그 모두의 영향이 존재합니다. 알런의 종교는 '원시'적이고 '광기'적이 됩니다. 어릴 때 보았던 기수와 그의 말. 말이라는 존재는 알런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며, 이것이 연극의 키포인트입니다. -내용을 다 말해버릴 생각은 없으니 기본 줄기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만.

 여하간 제법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구속, 자유, 억압, 광기, 종교, 섹스, 개성. 이에 관한 내용들이 펼쳐집니다. 예전의 <에쿠우스>를 본 적은 없습니다만, 극단 실험극장의 이번 <에쿠우스>는 표현에 있어 좀 육체적인 인상이 강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에쿠우스' 즉 말 역을 맡은 배우들이 이 <에쿠우스>에서는 거의 벗고 나왔는데, 구입한 프로그램에서 예전 <에쿠우스>의 사진을 보니 말 역을 맡은 배우들이 꼭 몸을 드러내지는 않았더군요. 때로는 가면을 쓰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 <에쿠우스>에서는 노골적으로 몸을 보여줍니다. 아아 말이라 말근육인가. 정녕 말근육이란 말인가.
앞의 모델은 같이 본 친구인 최모 군······ 뒤의, 말 역을 맡은 배우들과 비교되라고 찍은 사진입니다만 ←


 사실 연극 끝나고, 이 말 역을 맡은 배우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그들을 찍을 기회를 주더랍니다만 전 안 찍었습니다. 그냥 뭐 이 사진만으로도 충분하지 싶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래도 어쨌든 찍어 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아무튼, 뭐, 여하간, 저 사진과 비교해 덜하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고 저런 복장과 저런 몸입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제일 앞자리였는데 바로 앞에서 저러고 열심히 뛰고 달리더군요······. 여담으로 이 연극의 정신과 의사인 마틴 다이사트는 그리스 신화에 심취해 있는데, 알런에게 신과 같은 존재인 '에쿠우스'가 그리스 조각상 같은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또 뭔가를 시사하려 하지 않는가 싶습니다. 사실, 몸을 저렇게까지 조각상같이 만들어놓은 탓에 코앞에서 보면서도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어요.

 알런 스트랑 (제가 본 12월 1일엔, 정태우 분)이나 질 메이슨(제가 본 12월 1일엔, 김보정 분)의 경우에도 나신이 나오는데, 이 경우는 저 '에쿠우스'들처럼 몸을 극한으로 만들어놓지는 않았기 때문에 현실감이 있더랍니다. -나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말 다 벗더군요 (···). 아름다운 몸이긴 했고 보게 되어 눈이 즐겁긴 했는데 바로 그 즐겁다는 게 문제라 그날 밤 전 번뇌로 고생했다는······ ······건 여기선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여하간 원래부터 대본에서 '다 벗을 것'을 지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뭐 육체적이긴 한데 외설적이진 않습니다. 신을 위해 줄거리가 존재하느냐 줄거리를 위해 신이 존재하느냐 하면 명백히 후자고, 나신을 보고 야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느냐 야한 생각이 들면 미안한 마음이 드느냐 하면 또 명백히 후자니까요.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는 제법 역사가 있는 연극이고, 이 연극을 통해 여러 유명한 배우들도 알려진 듯합니다. 강태기,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등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배우들이 이 연극에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하네요. 하긴 제법 연기력이 필요한 연극이긴 합니다. 보면서 재미있었어요. 그리 머리아프지도 않았고.



막이 내리고, 마지막으로 무대를 한 번 찍어본 사진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다면, 한 번 더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굳이 이번 버전의 <에쿠우스>를 또 볼 필요까지는 없겠고, 다른 연출 버전으로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