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은 죽지 않는다: The Gifted
이슬기 지음/로크미디어
스스로도 거창한 제목이라 생각합니다만 이 포스트의 성격을 가장 분명히 알려주는 제목이 아닐까 싶어 이렇게 지어보았습니다. 여하간 <탐정은 죽지 않는다>도 출간한지 두 주가 좀 넘었고, 슬슬 뭔가 적어볼까 하는 마음이 드네요. 원래는 글을 하나 다 쓰고 나면 이래저래 후기를 적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안 했단 말이죠. 책에 대해 작가가 이래저래 말하는 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또 뭔가 주절주절 말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라·····.
읽어보셔도 여러분의 해석에 큰 변화를 주지 않도록 써볼 생각입니다만, <탐정은 죽지 않는다>를 온전히 여러분의 이미지로 남겨두고 싶으시다면 읽지 않는 쪽이 좋을 수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으로 하겠습니다. (아, 적어도 이 글을 읽기 전에 <탐정은 죽지 않는다>를 먼저 읽으시길 권합니다)
1. <탐정은 죽지 않는다>의 구성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이라면 다들 아실 테고, 저 스스로도 작가의 말에 적어놓았습니다만 전 레이먼드 챈들러의
하드보일드를 아주 좋아합니다. 하드보일드의 감성 그 자체를 좋아하죠. 상처받지만 상처받지 않은 척 하는 주인공, 무력한
개인으로서 사회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그 거대한 힘에 꿋꿋이 맞서고 결국 자기 주변의 무언가는 바꿔놓죠. 그래서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추리 그 자체가 중요하진 않습니다.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주인공과 또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죠.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세계관으로 판타지를 채용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중성의 확보인데, 본래 제가 습작으로 온라인에 써 오던 건 추리소설이나 하드보일드가 아니라 판타지 소설이었단
말이죠.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세계관을 택하고 싶었고, 잘 쓸 수 있는 세계를 쓰고 싶었습니다. 하드보일드를 그려내는 데에는
외국을 배경으로 써나가는 게 편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요. 그리고 세계관으로 판타지를 택한 또 하나의- 더 중요한 이유는, 읽으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기프트gift'라는 소재를 채용하고 있는데 이걸 잘 살리고 싶었습니다. gift가 선물과 재능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에 착안해서 떠올린 이 소재는 <탐정은 죽지 않는다>의 중요한 뼈대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액션은 다분히 액션 영화와 무술 영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격투신은 사실 무술 영화라기보다는 무술 도장에서 직접 배운 (뭐 그리 깊이 있게 배우진 못했습니다만)
무술을 기초로 써냈습니다만. 제가 배운 건 중국 무술인 영춘권과 필리핀 무술인 칼리를 조합한 무술로, 제법 써먹기 유용합니다.
무술 신이 너무 매니악하게 흘러갔다간 독자들이 피곤할 듯해서 상당히 약화시켜서 단순화하긴 했는데, 그래도 아마 일반 독자
여러분께는 좀 복잡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네요. 어쨌든, '실제적'인 느낌을 주는 데에 주력했습니다.
즉
한 마디로 간략해 말하면 <탐정은 죽지 않는다>의 구성에서 가장 신경쓴 부분은 바로 실제성, 리얼리티입니다. 정말
그런 인물들이 있을법하다고 여겨지고, 그런 인물들이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면 그런 식으로 행동했으리라 여겨지길 바랐습니다. 다소
미흡한 부분은 있겠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는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 연재본에서 출간본이 되며 바뀐 몇 가지
본래 <기프트>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이 소설을 출간본으로 바꾸면서 가장 크게 변한 건, 무엇보다 늘어난 분량입니다.
온라인에 연재할 때의 '에피소드 1'은, 에이레네의 의뢰를 받는 부분부터 자작가에 침투하고 그녀를 다시 구출해내오는
장면까지였습니다. (출간본으로 바꾸면서 이 내용 자체도 좀 더 보강하긴 했습니다만)
그 후에 에필로그로 바로 넘어갔죠. 매트 윔머나 에드거 길로이나 필립 맥스웰 등은 출간본에서 새로 등장한 캐릭터입니다. 사실
분량을 늘리는 건 늘리는 것이지만, 분량을 단순히 늘리는 게 아니라 그 분량이 늘어남으로 인해 오히려 더 깊이 있는 내용이
되도록 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어쨌든 나름대로 머리 써서 조합해냈고,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예민하신 분은 에이레네 구출 - 루신다 윔머의 실종 건 연결이 미묘하게 서로 나뉜다고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더불어, 원래 <기프트>는 좀 더 노골적인 판타지였고, 몬스터나 이종족, 드래곤 등도 등장할 계획이었습니다.
출간본으로 바꾸며 고심하는 중에, 인간만으로도 충분하겠다 싶어 바꾸긴 했습니다만. 바꾸고 나서 보니 이 쪽이 훨씬 낫더군요.
아, 가장 눈에 뜨이는 바뀐 점이라면 역시 제목이겠군요. <기프트>가 <탐정은 죽지 않는다>가 되었죠.
소설 전체의 내용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역시 <기프트>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소설을 처음 보는 독자에게는 별
임팩트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 써놓고 출간을 기다리는 중에 (아, 이 책이 나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렸죠) 어슐러 르귄의 <기프트>가 나와버렸다는 거야 뭐······ 솔직히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기프트라는 작품이 그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요. 어쨌든 이 제목에 대해서는 편집부에서 계속해서 말이 있었고, '하긴 확실히 처음 보는 사람은 별로 안 땡길 지도 모르겠다. 그럼 앗싸리 하드보일드하게 가볼까?'
하고 과감하게 바꾼 게 <탐정은 죽지 않는다>였습니다. 아, 물론 제가 생각해낸 이름입니다. 저 같은 인간은, 바꿔도
제가 바꾸지 않으면 마음에 안 차거든요. '노병은 죽지 않는다'의 변형으로 여겨지는 듯합니다만 생각해낼 당시에는 그 말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고, 오히려 염두에 둔 건 <야수는 죽어야 한다> 같은 소설 제목이었습니다. 딱 하드보일드스럽잖아요.
엄밀히 말해 아주 처음에 생각해낸 제목은 '탐정은 죽지 않는다'가 아니라 '죽지 않는 남자'였는데, 이걸 시험삼아 네X버에 쳐
보니 19금 인증을 하라는 소리가 나오더군요······ 앍 이게 무슨 소리야 싶어서 바로 휴지통행. 그 다음에 생각해낸 게
'탐정은 죽지 않는다'였는데 '죽지 않는 남자'보다 훨씬 센스 있게 느껴지더군요. 그 후에 몇 개 더 생각해 봤지만 신통찮아서 '탐정은 죽지 않는다'로 가기로 했습니다.
3. 기프트gift에 관한 몇 가지
소설 내에서 기프트gift와 오너owner는 고유명사입니다. 원래부터 작정하고 국문으로 영어를 써내려간 <탐정은 죽지
않는다>입니다만 이 두 단어는 더욱이 한국어로 치환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말하자면, 이 두 단어에 있어서만큼은 '그
세계'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선물과 재능의 두 의미를 항상 함께 내포하고 있는 기프트는 그렇다 치고,
오너 정도는 소유자로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게 그래서였습니다. 기프트 자체를 번역하지 않는데 오너만 번역하기도
어쩐지 일관성이 부족한 듯이 여겨졌고요.
인물들의 기프트 중 가장 처음에 결정된 기프트는 역시 얀 트로닉의
기프트입니다: 부상 회복. 이걸 쥐어준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느 정도 흥미진진한 전투신은 쓰고 싶었는데, 주인공이 너무
압도적이지 않길 바랐어요. 그런데 주인공의 격투능력이 초월적이지 않으면서도 초월적인 놈들과 싸워 이기려면 이게 딱이더군요.
얻어맞으면서도 결국 이긴다······ 는 능력이다보니 하드보일드하고도 제법 어울리는 듯했고, '모든 사람이 당신 머리를 때리고 목을 조르고 턱을 후려치고 아편으로 당신 몸을 가득 채우지만 당신은 태클과 엔드 사이를 계속 씩씩하게 돌진해서 마침내 그들이 나가떨어지게 하는*1)' ..기프트로 딱이덥니다. 그 외의 인물들의 기프트는 포지션에 맞게 적당히 쥐어줬고요.
1) 레이먼드 챈들러, <안녕 내 사랑> , p.421.
4. 인물들의 이름
<탐정은 죽지 않는다>의 인물 이름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얀 트로닉 (Ian Tronick): Ian이라는 이름은 John에서 파생되는데, Gift of God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성인 Tronick은 그냥 무슨트로닉 할 때의 접미어에서 왔고요.
에이레네 키르헨펠 (Eirene Kirchenfel): Eirene는 그리스어로 평화를 의미하고 (=히브리어로 '샬롬'), Kirche는 독일어로 교회를 뜻합니다.
그레이스 트로닉 (Grace Tronick): Eirene가 평화라면, Grace는 은혜죠.
엘사 키르헨펠 (Elsa Kirchenfel): 땋은 애쉬 블론드지만 <풀 메탈 패닉!>의 텟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믿어주세요.
길버트 모건 (Gilbert Morgan): '길(을 함께 가는) 벗'. 성인 모건은 <원피스>에서 왔습니다.
일레인 브룩필드 (Illein Brukfield): <기동무투전 G건담>의 레인 미카무라와 영화배우 Brooke Shields에서 땄습니다.
레스터 브링크 (Lestor Brink): 레스터는 별 의미 없고, 브링크는 링크Link를 좀 바꿨습니다.
리처드 하워드 (Richard Howard): 리처드라는 이름은 사자왕 리처드에서 왔습니다.
하인즈 클랜시 (Heinz Clancy): 그 이름을 지을 때쯤에 하인즈 케찹이 보였습니다. 클랜시는 전쟁소설가 Tom Clancy에게서 따왔고요.
메리안 페어필드 (Marianne Fairfield): 그녀에게는 그녀의 삶이 'Merry'하지 '않'았죠. '정당fair'하지 않은 '곳field'에 있었고요.
요크 굴드 (York Gould): 앨러리 퀸 著 <Y의 비극>에 나오는 사람 이름이 요크이고, 여기에 피아니스트 Glenn Gould의 성을 붙였습니다.
그렘 와이트 (Grem Wight): 무게측정단위 gram과, 영단어 weight를 조금 바꿔봤습니다.
케이트 빌마 (Kate Vilmar): 후지타 카즈히로의 만화인 <꼭두각시 서커스>의 등장인물 중 빌마가 있습니다. 검은 단발이죠.
보안관보 브릭스 (Bricks)와 웩슬러 (Wechsler): 당도 단위인 Brix와 Oechsle에서 왔습니다. 달콤한 남자들이죠.
보안관 캐터 (Catter): 캐터필러에서 왔습니다. 그의 머리와 수염은 턱수염으로부터 정수리까지 한 바퀴 빙 둘러 났죠.
브루너 키르헨펠 (Bruner Kirchenfel): 그의 이름은 Dick Bruna에게서 왔습니다. 미피 그림책으로 유명하죠.
에드거 길로이 (Edgar Gilroy): 에드거라는 이름은 Edgar Allan Poe에서 따왔습니다.
필립 맥스웰 (Phillip Maxwell): 그의 사무소인 맥스웰 사무소를, 사실, Maxwell House라고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얀 트로닉의 가명 열전:
앨런 프레드 (Allen Fred): 이 가명 지을 때 주위를 둘러보다 보인 DVD가 마침 <Alien VS. Predator>였습니다.
데이브 덴져 (Dave Danger): 고전인데, <Dangerous Dave> 라는 컴퓨터 게임이 예전에 있었습니다.
존 앨리엇 (John Elliot): John은 Ian의 다른 말이고, <거짓말의 진화- 자기 정당화의 심리학>이라는 책의 저자 이름이 앨리엇 애런슨 (Elliot Aronso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