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문답이 아닙니다만. 뭔가 재미있더군요.

 이곳으로부터 트랙백했습니다: http://lawrence.tistory.com/760

 원문은 여기: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g_fre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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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작가임을 알 수 있을 때]


당신에게 너무 행복한 유년시절을 선사한 부모님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 더 화려했던 유년시절이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 유년시절도 나름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많았다.

오로지 글을 쓸 때만, '이게 아닌 뭔가 다른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 99% 동감. 100%가 아닌 이유는,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도 나 자신을 찾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들 사이를 혼자 운전하고 있을 때, 당신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사슴 한 마리를 피하려고 방향을 홱 틀었지만, 앞유리가 사슴의 발에 치이면서 거미줄 모양으로 깨져버리고 차는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차는 몇 번 구르다가 골짜기 밑바닥에 정지했다. 그녀는 아직 살아있었다."
 - 그런 생각을 하기 위해 나는 먼저 면허를 따야겠군 .. 차를 타고 다니며 문장을 떠올리는 건 사실

당신은 남편과 말싸움 벌이는 도중에 문득 멈추고는 "잠깐만 기다려, 여보!" 하고 재빨리 메모를 적는다.
 - 남편이 없는데.. ..뭐 누군가와 싸울 때 그 상황과 상대방의 표정과 동작을 문장으로 만들어보는 일이 있긴 하다.

작업 중인 시기에는 너무 그 생각에 빠져 있어서, 내릴 정류장을 놓치는 바람에 버스를 다시 잡아 타야 한다. 그런데 거기서도 또 정류장을 놓쳐버리고 만다.
 - 정류장을 놓쳐 본 적은 없다. 독서 중이었건 게임 중이었건 아니면 수면 중이었건간에.

당신은 유럽으로 이주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 중이다.
당신이 고려하는 한 나라는 아일랜드인데, 작가들에게는 세금이 면제되기 때문이다.
 - 뭐 진짜야? 아일랜드가 급땡기는걸 이거.

당신이 여자친구 때문에 짜증이 날 때는, 그녀는 뭔가 뜨거운 사랑을 원하는데 당신은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 아니 난 뜨거운 사랑도 원해.. .. 인 거 치곤 하드보일드한 삶이지만.

당신의 컴퓨터 옆에 빈 시리얼 그릇이 세 개 놓여있다. 각 끼니 당 한 그릇씩.
 - 그거 대신 콜라와 커피가 시간당 0.5개씩 증가..

뭔가 나쁜 일이 친구에게 일어났는데 당신은 그 친구가 작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당신이 글감으로 쓸 수 있으니까.
 - 그 친구가 작가여도 상관없다. 사실, 나는 남이 쓰지 않았던 것만을 쓸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으니까.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당신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캐릭터 문제 때문이다. 예컨대, '클라리사가 사랑하는 유부남의 아내가 클라리사의 편지들을 신문에 내보내려고 하는데, 클라리사가 그 전에 편지들을 회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내 캐릭터 문제가 어떻게 내 문제가 아닐 수가 있단 말이냐!

남편이 성교 도중에 갑자기 멈추고 화난 목소리로 "세바스천이 어떤 놈이야?"라고 묻는다. 그때서야 당신은 남편 이름이 아니라 당신 작품의 주인공 이름을 외쳤다는 것을 깨닫는다.
 - 뭐야 그거 몰라 무서워..

당신은 배우자에게 "나는 글 쓸 시간이 필요하다고!" 라고 말하고는, 머릿속으로 서술을 덧붙인다.
- "나는 글 쓸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소리지르더니, 두 손으로 붙잡고 있던 연필을 낚아채서 빼앗고는...
 - 스스로의 행동을 문장화하는 것이야말로 묘사 연습의 첫걸음..

아이는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서 돌보게 시켜놓고, 당신은 회사에 가서 자신이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글을 쓴다.
 - 아 이런 건 많은 사람들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요..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

초조함, 모욕, 좌절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 당신은 정확히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초조함 모욕 그리고 좌절이 내게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키보드를 너무 많이 썼더니, 심지어 펜으로 쓸 때도 오타가 생긴다. 예컨대 "내가 작은 아ㅣㅇ였을 때."
 - 그런 오타 따윈 벗ㅇ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 당신은 뭔가 미친 짓을 한다. 예컨대 우라늄에 투자한다든가 방 하나 크기의 태피스트리를 짠다든가.
 - ..또는 여자친구가 필요하다는 등의 미친 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

당신은 경찰서에 15살짜리 아들을 데리러 갔다. 눈물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아이러니컬한 요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컨대 로비의 자동 판매기에 달린 작은 전광판에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는 글씨가 빨갛게 빛난다든지.
 - 이건 공감하기에는 너무 연령대가 다른 사람의 글이로군.

카페에서 더 이상 당신에게 펜을 빌려주려 하지 않는다.
 - 내 경우 펜을 빌려 써 본 일은 없으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지

글쓰기를 그만두고 진짜 직업을 갖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는 글을 썼는데, 프린트해보니 행간 띄움 없이 양면으로 15페이지에 달하고 부록은 4페이지였다.
 - 그런 글이 부질없음을 알기 때문에 글쓰기를 그만두겠다고 난 결코 말하지 아니해

공중화장실에서 당신이 칸막이의 낙서를 비평하고 교정하는 사이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 라기보다는 이 낙서에 어떻게 리플을 달아볼까 하는 궁리를 하는 일은 있다

주차장 직원이 "저기요, 차 좀 빼주실래요,"라고 소리치는데, 당신은 그의 말에 구두점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생각한다. 느낌표를 찍을까 물음표를 찍을까?
 - 거기서는 마침표를 찍고 문장으로 직원의 어조를 설명하도록 하자

휴대폰 문자를 보낼 때 엠대쉬(―)와 세미콜론(;)을 쓴다.
 - … 를 상용구로 만들어두긴 했지

글쓰기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이며, 당신은 글쓰기가 싫다.
 - 애증이지.. 애증이야

컴퓨터에다가 마커로 "글쓰기는 신나!"라고 써놓아야만 했다.
 - 야 신난다

내용이 말이 안 되는 영화를 보다가, 이 영화의 극작가가 "아무도 눈치 못 챌 거야"라고 생각했겠지 싶어진다.
 - '타협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나와는 사고구조가 다른 사람의 작품이로군'

당신의 첫사랑은 나이틀리 씨였다.
 - ..키이라 나이틀리?

어쩔 때는, 글쓰기만이 당신을 제정신으로 지켜준다는 생각이 든다.
 - 그리고 어떤 때는 글쓰기 때문에 내가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지..

당신의 어머니가 "지금 나 플라켓(placket: 스커트의 옆을 튼 부분이나 주머니)에 다림질 하고 있어"라고 말하자, 당신은 어머니 옆에 서서 생각한다. Placket. 좋은 단어로군.
 - 그렇잖아도 어제 어머니에게서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는개, 안개비와 이슬비 사이의 비.

당신이 쓴 이메일 내용을 긁어서 복사한 뒤 당신의 일기에 붙여넣는다.
 - 난 이메일은 아주 간략하게 쓰는 사람이라..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