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열린책들
예전부터 한 번쯤 읽어 보고 싶었는데, 열린책들 판으로 나온 걸 보고 샀습니다. 딱히 문학사상사 판이 싫었던 건 아니고, 그저 열린책들의 책을 좀 여러 권 갖고 있다보니 책장에 꽂을 때 통일성을 유지하기가 보다 쉽고 책 자체의 레이아웃에도 익숙해서 친숙해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번역자가 김난주라는 것도 '그럼 뭐 괜찮게 번역했겠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원인이었고요.
사실 제법 유명한 소설이라,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실 분이 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 '나'의 시선으로 인간들을 보고 그 행태를 논하는 형태의 소설인데, 이게 제법 풍자적이고 날카로운 맛이 있어서 읽을만합니다. 원래는 처음 1장만 신문에 게재하고 그 후의 연재는 예정에 없었는데 이게 인기를 끌게 되어 이어 쓴 작품이다보니 소설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에피소드 형식인데다 그 에피소드끼리 이어지기는 하니 어쨌거나 '한 권'으로 묶어 내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의 속물 근성에 대해 말하는 소설입니다. 특히나, 있는 체 하면서 속물 근성을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죠. 주인공이 얹혀 사는 집의 주인인 구샤미 선생은 지식인인 체 하지만 실상은 별볼일 없고, 그의 집에 자주 놀러 오는 미학자인 메이테이 선생도 입으로는 참 잘 떠벌이지만 역시 실상 별로 합리적인 사람은 아니고······ 라는 식인데 그렇다고 통렬하게 위선을 논파하는 식은 아니어서 '이러이러하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도 못하다. 우습지 않은가' 같은 모양입니다- 서양 문물의 전래와 더불어 (이 소설이 쓰여진 연대는 1905년입니다) 물질적 가치를 정신적 가치보다 중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좀 더 강도 있게 비판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더불어,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인간이라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주인공격 인물들의 말이 무조건 어리석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구체적으로 보자면 ① 인간들이 모여서 이야기한다, ② 고양이는 관망하고 나중에 필요한 경우 코멘트한다, 는 구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이 대목은 꽤 와닿더군요:
이른바 포스트모던 시대, 너도 옳고 나도 옳아서, 절대 진리는 없고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사는 시대의 모습에 대해 소세키가 메이테이 선생의 입을 빌려 한 말입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자기를 절대 포기하려 하지 않기에 결국 부부간에도 이혼까지 가게 되니 슬픈 일이죠. 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두 전적으로 긍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심도 있게 생각해볼만한 거리가 상당히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뒤에 붙어 있는 해설에 대해서입니다만, 대개는 독자의 소설에 대한 이해를 도와 주는 괜찮은 해설입니다만 이학자 미즈시마 간게쓰와 사업가 가네다 일가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저는 좀 견해를 달리 해서 읽었기에 동의할 수 없더군요. 가네다 일가가 간게쓰에 대해 굉장히 목을 맨 것처럼 쓰여있는데 전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사위가 될 만한 사람의 뒷조사를 상당히 철저하게 한다는 정도로 읽어서요. 간게쓰의 결혼도, 어느 날 떡하니 하고 돌아와 가네다 일가에 물을 먹였다기보다는 하려던 걸 포기하고 그냥 적당히 타협했다고 읽혔습니다. 뭐, 아무튼 그랬다는 이야깁니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열린책들
예전부터 한 번쯤 읽어 보고 싶었는데, 열린책들 판으로 나온 걸 보고 샀습니다. 딱히 문학사상사 판이 싫었던 건 아니고, 그저 열린책들의 책을 좀 여러 권 갖고 있다보니 책장에 꽂을 때 통일성을 유지하기가 보다 쉽고 책 자체의 레이아웃에도 익숙해서 친숙해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번역자가 김난주라는 것도 '그럼 뭐 괜찮게 번역했겠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원인이었고요.
사실 제법 유명한 소설이라,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실 분이 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 '나'의 시선으로 인간들을 보고 그 행태를 논하는 형태의 소설인데, 이게 제법 풍자적이고 날카로운 맛이 있어서 읽을만합니다. 원래는 처음 1장만 신문에 게재하고 그 후의 연재는 예정에 없었는데 이게 인기를 끌게 되어 이어 쓴 작품이다보니 소설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에피소드 형식인데다 그 에피소드끼리 이어지기는 하니 어쨌거나 '한 권'으로 묶어 내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의 속물 근성에 대해 말하는 소설입니다. 특히나, 있는 체 하면서 속물 근성을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죠. 주인공이 얹혀 사는 집의 주인인 구샤미 선생은 지식인인 체 하지만 실상은 별볼일 없고, 그의 집에 자주 놀러 오는 미학자인 메이테이 선생도 입으로는 참 잘 떠벌이지만 역시 실상 별로 합리적인 사람은 아니고······ 라는 식인데 그렇다고 통렬하게 위선을 논파하는 식은 아니어서 '이러이러하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도 못하다. 우습지 않은가' 같은 모양입니다- 서양 문물의 전래와 더불어 (이 소설이 쓰여진 연대는 1905년입니다) 물질적 가치를 정신적 가치보다 중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좀 더 강도 있게 비판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더불어,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인간이라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주인공격 인물들의 말이 무조건 어리석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구체적으로 보자면 ① 인간들이 모여서 이야기한다, ② 고양이는 관망하고 나중에 필요한 경우 코멘트한다, 는 구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이 대목은 꽤 와닿더군요:
"(상략) ······· 요즘은 개성이 중심인 세상이야. 가장이 한 가족을 대표하고, 군수가 한 군을 대표하고, 영주가 한 나라를 대표하던 시절에는 그런 대표자 외의 인간에게는 인격이란 게 전혀 없었네. 아니, 있어도 인정하지 않았지. 그런데 시절이 완전히 바뀌어서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이 개성을 주장하면서 누구를 대하든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이 되었어. 길 가다 두 사람이 마주칠 때에도, 마음속으로 네가 인간이면 나도 인간이란 식으로 공연히 시비를 걸면서 지나치는 거야. 그만큼 개인이 강해졌어. 하지만 개인이 고루 강해졌다는 것은 개인이 고루 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해. 남이 나를 침해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내가 강해진 것이지만, 반대로 나 역시 남의 신상에 함부로 참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옛날보다 약해졌다 할 수 있지. ······ (중략) ······ 문명의 세례를 받은 도시 사람들은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면 손해니까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는 따로 살 수밖에 없는 거야. ······ (중략) ······ 그런데 부모 형제가 서로 떨어져 사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떨어질 것이 없으니까 최후의 방안으로 부부가 헤어지게 되는 것이지. ······ (하략)"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pp.430-431
이른바 포스트모던 시대, 너도 옳고 나도 옳아서, 절대 진리는 없고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사는 시대의 모습에 대해 소세키가 메이테이 선생의 입을 빌려 한 말입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자기를 절대 포기하려 하지 않기에 결국 부부간에도 이혼까지 가게 되니 슬픈 일이죠. 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두 전적으로 긍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심도 있게 생각해볼만한 거리가 상당히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뒤에 붙어 있는 해설에 대해서입니다만, 대개는 독자의 소설에 대한 이해를 도와 주는 괜찮은 해설입니다만 이학자 미즈시마 간게쓰와 사업가 가네다 일가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저는 좀 견해를 달리 해서 읽었기에 동의할 수 없더군요. 가네다 일가가 간게쓰에 대해 굉장히 목을 맨 것처럼 쓰여있는데 전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사위가 될 만한 사람의 뒷조사를 상당히 철저하게 한다는 정도로 읽어서요. 간게쓰의 결혼도, 어느 날 떡하니 하고 돌아와 가네다 일가에 물을 먹였다기보다는 하려던 걸 포기하고 그냥 적당히 타협했다고 읽혔습니다. 뭐, 아무튼 그랬다는 이야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