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아키 히토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먼저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인간은 다른 생물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좋은 만화를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만약 '읽고 사유하게 한다'는 기준으로 만화를 본다면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는 틀림없이 좋은 만화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본다면 흔하다면 흔한 '인간이 아닌 생물이 인간의 몸을 빼앗아 인간의 행세를 한다'는 신체 강탈자 (body snatcher) 류의 만화이자 상당히 고어한 묘사도 다량 들어있는 꽤 말초적인 만화입니다만 조금만 진지하게 이 만화를 읽어본다면 그리 단순한 만화는 아님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글쎄요, 제게 있어 베스트 5에 들어가는 만화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인간의 머리에 파고들어 머리를 파먹고 머리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인간의 신체를 조종할 수 있는 어떤 생명체가 있습니다. (주어진 질량 안에서) 모습을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으며, 그들 자신의 세포를 경화시켜 무시무시한 무기로 바꿀 수도 있는데, 인간들에게는 불운하게도 그들은 그들의 '본능'에 따라 인간을 먹습니다. 이른바 천적이 없는 인간에게 주어진 천적인 셈이죠. 그리고 주인공인 신이치는, 예상밖의 사태로 인해 이 미지의 생명체가 그의 머리를 파먹지 못하고 팔로 파고들어 그의 오른팔을 먹고 성장합니다. 머리로는 가지 못하고 성장해버리기 때문에 팔인 채로 지성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그리하여 신이치와 이 '오른쪽이 (이름)'와의 기묘한 공생관계가 시작되고, 인간을 먹는 '괴물'들에 의해 각지에서 인간 도살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만화에 대해 호평을 내리는 사람은 아마 이게 '철학적'이라고 평을 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이 만화가 왜 철학적인가? 단순히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넘어서서, 인간과 자연 - 인간과 다른 생물과의 관계로까지 이야기를 확대시켰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신체 강탈자로서의 이야기도 재미있고, 그것이야말로 사실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주된 축입니다. 그리고 이종족을 몸에 지닌 신이치에 의해, 사실상 이능력물로서의 재미까지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거기에서 끝났다면 이 만화는 그냥 재미있을 뿐인, 특별히 생각할만한 거리는 없는 만화로 끝났을 겁니다.

 몇 차례나 거듭해서 '생각할만한 거리가 있다'고 말해왔으니 "대체 뭘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데?"라고 질문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에서 이 감상의 첫 문단에서 드렸던 질문을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인간은 다른 생물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즉, 이 만화는 인간을 잡아먹는 생물의 존재를 통해 현재 인간과 다른 생물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현재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과 다른 생물들이 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만화와 같이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실존하며 각지에서 인간들이 그들의 먹이로 사라져간다면, 사람들은 그 상황을 '인간과 괴물이 잘 공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앞에서 언급했듯, 이 만화는 상당히 고어합니다. 애장판은 무삭제라 더하죠. (라고 해도 이게 원래의 임팩트이겠습니다만) 그러나 그 잔인함이 단지 잔인하기 위한 잔인함이 아니라,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기 위한 잔인함이라면 충분한 의미가 있습니다.[각주:1] 다른 곳에서도 종종 나오는 말이지만, 우리는 다른 생물들의 시체를 식량으로서 노상 보고 있습니다. 돼지, 소, 닭, 기타 등등의 생물들 말이죠. 만약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이 인간과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건 내 친구가 하던 말인데···. 인간을 소나 돼지나 물고기랑 같은 선에 놓고 보라는 거야. 그러면 인간은 살해당한 동물들의 토막난 시체 조각을 매일 먹는 셈이니까···."
- <기생수> 애장판 4권, pp.77-78


 생물들은 때로는 서로를 이용하고, 때로는 죽인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아니, 상대를 자신이라는 「종」의 잣대로 재면서 다 파악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다른 생물의 마음을 아는 체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 <기생수> 애장판 8권, pp.211-212


 사실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준에서 가치를 판단하고, 인간의 잣대로 사물을 재죠. 인간에게 객관이 있을까요? 객관임을 가장하는 주관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마음조차도, 혹은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다른 생물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기생수>는 신체 강탈자로서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이런 질문들을 던집니다.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현재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여러분이 이 만화의 테마에 동감하든, 동감하지 않든, <기생수>는 반드시 여러분에게 '생물들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 것입니다.


 다른 생물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 외롭기 때문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멸망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인간 개인의 만족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그게 전부니까. 인간의 잣대로 인간 자신을 비하해 봤자 의미는 없다.
- <기생수> 애장판 8권, p.212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라구.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이 얼마나 멋진 일이야!!"
- <기생수> 애장판 8권,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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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좀 재미있는 건, 8권 (애장판 기준)에 이르도록 수도 없이 인간의 신체가 해체되는데 그것들은 '19세 미만 구독불가'가 아니고 섹스 장면이 표현되는 (크게 노골적이지도 않지만) 7권은 '19세 미만 구독불가' 딱지가 붙어있다는 겁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