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지 문장을 쓰기 위해 블로그를 연다.
<탐정은 죽지 않는다>의 후속작을 쓰기 위해 플롯을 짠 지도 이미 수개월이 지났다. 그 수개월 동안 나는 학교에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플롯을 짠다, 는 구조였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러나 나는 집에 오면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했다. 소설조차도 잘 읽지 않았다ㅡ 이유는 간단하다. 비교적 널널한 게 조교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역시 일은 일이어서 집에 오면 머리를 쓰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지는 것이다. 플롯을 짜기 위한 한글 파일을 한켠에 열어놓지만 (한글 2010을 제돈 주고 산 후 '한글 파일을 열어둔다'고 말하는 데 더이상 아무런 거리낌이 없게 되었다. 좋은 일이다) 단지 열어놓을 뿐 별다른 작업은 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뼈대가 잡혔기 때문에 남아있는 일은 그 골격을 좀 더 올바르게 맞추는 일과 살을 붙여 세부사항을 명확히 하는 일뿐이지만 (현재 플롯 파일의 길이는 A4 열 페이지, 그리고 세부사항을 붙인 후의 길이 예상은 스무 페이지 이상) 바로 그런 일이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힘들다. 조합된 모든 것의 결과는 말이 되면서, 흥미진진하면서, 뻔하지 않아야 한다. 이건 어려운 일이다. 사실은 무엇보다도, 이렇게 써낸다고 해도 그걸 출판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나를 이 작업에 온전히 전념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설렁설렁 써내면 그런 건 정말로 출판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 또한 나를 압박한다. 요 수개월은 그런 생각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진행되고 있다. 진행되지 않을 수는 없다. 어느 때고 바깥에서라도 나는 생각이 떠오르면 휴대폰을 열어 메모장에 메모하고 나중에 한글 파일로 옮긴다. 그것은 쓰고 싶은 어떤 문장일 수도 있고 장면일 수도 있으며 플롯 자체에 대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그 모든 메모가 퍼즐 조각이 되어 플롯의 전체상을 만들어간다. 플롯: 이 망할 놈의 플롯이 나를 죽이고 있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그저 글을 쓰고 싶다. 멋진 장면을 쓰고 싶고 문장을 쓰고 싶다. 특정한 상황에 처한 어떠한 인물이 그 상황에서 그 인물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써내고 싶다. 그러나 단지 무작정 써내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그 모든 것은 글의 한 조각으로서 유효하게 기능해야만 함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기적으로 짜여진 플롯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충분히 완전하게 쓰여졌다고 생각한 플롯조차도, 실제로 써나가는 도중에 다시 이치에 닿게 교정해야 하는 일이 태반이다. 하물며 플롯 없이 쓰는 글이야 말할 필요가 있으랴. 그러니 나는 플롯을 써나간다.
하지만 플롯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쓰고 싶다. 떠오르는 문장과 상황을 플롯에 부가해 적어두는 것만으로는 갈증이 풀리지 않는다. 애당초 작가란 쓰지 못하면 병이 나는 인종이다.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이 난 족속이다. 그리고 나는 어쨌거나 프로 작가라 할 수 있는 인간이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는 인간이다. 플롯이 완성되지 못하는 한 소설을 쓸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블로그에라도 뭔가 써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대로 계속 플롯만 짜고 있다가는 나는 어쩌면 내 일상생활의 일부를 소설화하여 써낼 지도 모른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는 듯하다.
좋다. 이만하면 충분히 문장이란 걸 만들어본 듯하다. 울분이 제법 풀렸다. 이만하면 플롯 작업을 재개해도 되겠다.
ㅡ그런데 벌써 세 시가 넘어가는데, 안 자면 내일 교회에서 힘들 듯하니, 이를 어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