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영춘권/수련단상 2010. 10. 14. 01:13

사진은 며칠 전 학과실에서 찍은 것


 오늘은 드디어 도장에서 소념두를 끝까지 배웠습니다. 이 투로의 내용들을 실제로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부단한 수련이 필요하고 또 실제로 도장에서도 투로의 식 하나하나를 여러가지 상황에 적용하도록 2인 1조로 수련합니다만, 어쨌거나 가장 기본이 되는 투로를 끝까지 배웠다는 건 뭔가 사람을 뿌듯하게 만듭니다. (3개월이 조금 안 걸렸네요)

 소념두는 기초죠. 그리고 기초는 가장 중요합니다. 기초가 중요하단 건 고급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밟아야 할 토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고급 기술로 올라가도 결국 기초를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수학의 기초인 사칙연산을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할 줄 알아야 고급 문제를 빠르게 풀 수 있게 되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그리고 소념두는, 도장에서 같이 수련하던 분과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이것만으로도 (물론 형 하나하나를 제대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바로바로 쓸 줄 안다는 전제에서입니다만) 싸울 때 써먹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가르친다는 건, 그게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라는 겁니다. 이걸 간과하면 어떤 무술을 배워도 결국 보기에만 화려하고 실제로 쓰지는 못하는 화권수퇴의 무술이 되어버립니다.

 이제 겨우 소념두를 배운, 잘날 것도 특별히 없는 인간이 기초를 강조하는 이유? 음, 전에 다른 무술을 조금 배웠을 때 -사실 제대로 깊이 있게 파고들질 못했습니다만- 그걸 아는 사람들에 대한 시범이나 대련 등에서 적용하며 느낀 게 아 정말 난 기초가 부족하구나 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보법이 안 됐죠. 보법 수련은 사실 재미가 덜한 편이기 때문에 수련이 소홀하기 쉬운데, 강한 하체와 올바른 보법은 움직임의 핵심이며 겨루었을 때 버티는 토대이고 펀치의 발사대입니다. 이게 부족하면 뭘 해도 제대로 나가질 않아요. 결국 그런 걸 느꼈기 때문에 영춘권 도장에 나가면서는 꾸준히 집에서도 보법을 수련하고 있는 것이고요.

 기초 이야기를 강조하는 이유 또 한 가지는, 사실 오후에 유학 관련으로 학교에 들렀다가 학과실로 찾아온 후배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검도를 배워서 무술 이야기로 나름 죽이 맞아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검도의 경우, 빠른 머리치기를 반복해서 시키는 것이 단지 빠르게 치는 것만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서도 동작이 흐트러지지 않는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하는 건데 그러지 않고 대충 하는 사람들이 많다더군요. 빨리 타격대부터 치고 싶어하고, 기초 말고 화려한 기술을 원하고요. 그런 건 그런 걸 배울 만한 시기가 되면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지금 가르쳐주는 게 있다면 지금 그게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걸 열심히 해야지요.

 기초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초를 꾸준히 계속 해서 숙달하는 것은 뜻밖에 어렵습니다. 잘 티가 나지 않고 지루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기초를 소홀히 해서 대가가 될 수 있는 일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는 법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고급 기술을 배우더라도, 기초를 꾸준히 계속할 작정입니다. 나중에 심교나 표지 등의 투로를 배우고 그걸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언제 어떤 때라도 가장 잘하는 건 아마 소념두가 될 겁니다.

 ······그 소념두를 바로 오늘 다 배웠단 말이죠. 으흐하하하하. 신났네 신났어.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