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사실을 말하자면, 미스터리 장르는 꽤 해묵은 장르입니다. 해먹을 트릭은 거의 다 해먹었고, 정말로 참신한 트릭이란 건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죠. 로맨스 소설의 공식이 거의 뻔하게 나오는 것만큼이나 추리소설의 공식도 대개 뻔합니다. 패턴A, 패턴B, 패턴C, ······· 등등등.

 <명탐정의 규칙>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공식들을 대놓고 비웃으며 웃음을 선사합니다.


 "그럼 좋아. 뭐든 좋으니 빨리하게. 탐정 소설의 정해진 패턴대로 구태의연하고 뻔뻔스러운 선언을."
 나는 또 한 번 덴카이치에게 눈짓했다. 녀석은 부루퉁한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경감님, 그리고 여러분."
 모두의 시선이 탐정에게 집중됐다. 녀석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이었지만 눈물을 꾹 참은 채 자포자기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건 완벽한 밀실 살인 사건입니다."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와"!
 이렇게 해서 밀실 선언이 내려졌다.
<명탐정의 규칙> pp.23-24


 이 소설에서 캐릭터는 소설 내의 캐릭터인 동시에 현실의 우리들에게 직접 말하는 화자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분명 그들이 풀어나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동시에 작가가 만들어낸 상황임을 그들 자신이 인식하고 있으며 그 트릭의 부조리함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직접 설명합니다. 왜 이런 트릭을 추리소설작가들이 짜내는가? 또한 그 트릭의 해결에 있어 얼마나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풀이가 이루어지는가? 그 결과로 추리소설의 공식을 따르면서 공식을 비웃는다는 블랙 유머 미스터리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미스터리를 많이 읽어본 사람에게 유효합니다. '푸하하, 그런 거 진짜 많지.' 라는 반응이 나오게 되죠.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을 단순히 미스터리를 까기 위한, 자기부정의 소설만으로 써내지는 않았습니다. 이 소설의 에피소드들은 공식을 따르며 공식을 비웃지만 또한 추리소설답게 해결하여 문제풀이의 카타르시스도 안겨주는, 미스터리 소설로서도 충분히 기능하는 에피소드들입니다. 좀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작가는 미스터리 소설 공식의 구태의연함을 공격하는 것이지 미스터리 소설 공식 자체를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랄까요. 공식대로 쓰면 독자들이 만족한다고 해서 대충 써내지 마! 라는 느낌입니다.

 그런 연유로 전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소설을 좀 이것저것 질리게 읽어본 독자들에게 (뭐 하다못해 김전일 시리즈라도 전권 다 읽어본 사람들에게) 어필할만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또 좀 취향을 탈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무엇보다, 여기 나오는 미스터리의 공식은 일본 미스터리의 공식이다보니 말이죠.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