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브루스 토마스 지음, 류현 옮김/김영사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이소룡 평전'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인간 이소룡'이 어떠한 사람이었는가에 집중해 서술하고 있지요. 홍콩 영화계를 바꾸어버린 영화배우라거나 절권도를 창시할 만한 무술가였다거나 하는 것들이 물론 중요한 부분들로서 다루어지기는 합니다만 그의 삶이 어떠했으며 왜 그런 식으로 살아갔는지 그 이면에 보다 시선을 두는 느낌입니다.

 먼저 말해두면 이소룡은 제 삶에 아주 큰 영향을 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이 사람 때문에 저는 무술을 좋아하게 되었고 도장에 나가 절권도를 배웠으며 (비록 깊은 수준까지 들어가진 못했지만) 쓰는 소설에 무술 액션을 서술하게 되었지요. 현재는 도장에서 영춘권을 배우고 있는데, (다소 견자단의 영향도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 역시 이소룡의 영향이라고 봐야겠지요.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필히 행해야 한다'라는 그의 말이 사실 저를 도장으로 가서 무술을 배우게 만들었습니다. 뭐 그게 꼭 무술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이소룡의 육체적 강함을 동경하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겠죠.

 이 책의 내용이라거나 이소룡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이 감상에서 다루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워낙 할만한 이야기가 여럿이고,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만 해도 상당히 많은지라 그걸 다 말하긴 어렵죠. 그러니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간단히 줄여보면- 이 책은 이소룡의 성장과정이나 그가 무술을 수련한 이유나 방식, 그의 철학들, 그리고 표현의 방법으로서 사용한 영화와 그 영화를 찍으며 있었던 여러 문제거리들 그리고 영화배우로서 유명해진 후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고통스러워 하던 흔적 등을 잘 정리해서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이 한 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해도, 이걸 읽고 나면 이소룡이 어떤 인물이었는가에 대해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게 된달까요.

 이소룡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사람마다 다른 인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다음과 같습니다: 실전을 중시한 무술가- 절권도를 창시했음, 풀컨택 스파링의 필요성을 일찌기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도입한 중국인, 친절하고 따듯한 한편 자기과시욕이 컸던 남자, 배우 및 스태프가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홍콩영화계를 바꾸어버린 영화배우.

 현재의 저는 20대 초중반의 저처럼 이소룡을 동경하지는 않습니다. 뭐 그 때야 영화 속의 이소룡의 이미지를 소비했을 뿐인 시기였으니까요. 그러나 말하자면, 정말 이소룡처럼 되고 싶다면 단지 이소룡을 동경하는 것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소룡을 동경하는 것에서 벗어난 제가 이소룡처럼 될 거라는 소리는 절대로 아닙니다만. 흠, 제가 그를 '동경'하지 않는 건, 결국 그도 인간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상이 높았고 열정도 뜨거웠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를 지치게 했고, 자신이 말하는 철학을 꼭 실천하지도 못했지요. ㅡ이렇게 말하니 이소룡이 별로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소룡이 이루어놓은 위치까지 올라가지도 못해요. 단지 그 역시 흠이 있는 인간이었고, 예전에 상상하던 것처럼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것 뿐이죠. 그러니 굳이 말하라면, 동경하지는 않지만 존경하기는 한다고 하는 쪽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이소룡을 동경하기보다는 존경하는 쪽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많은 것들이, 그것이 처음 나타났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받아지고 사용됩니다. 이소룡 이야기가 나왔으니 절권도 (截拳道, JKD) 이야기를 잠깐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절권도는 이소룡의 무술 개념이자 철학입니다. 그건 단지 무술뿐 아니라 다른 어떤 상황에서건 적용되는 것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상황을 처리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런 개념이기에 절권도가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정확하게 답하기 어려워집니다. 단지 무술 형식으로서의 절권도만 말한다 해도 좀 복잡합니다. 그것이 이소룡이 만들어냈던 '그가 싸웠던 방식'을 말하는가, 아니면 '그가 지금도 있었다면 그의 무술 형식을 계속 변화시켰을 것이 당연하므로 변화시켰다면 이렇게 했을 것 같은 그런 방식'을 말하는가? 이에 따라 오리지널 절권도와 컨셉 절권도가 나뉘어지는데, 어느 쪽이 옳다 분명하게 말하기 좀 힘듭니다.

 이소룡은 생전에 자기의 스타일에 '절권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후회했습니다. 편의를 위해 붙인 이름이지만, '절권도'라는 이름을 붙인 이상 그것 역시 (그가 싫어하던) '형식에 고착될' 운명이 되었기 때문이었죠. '이소룡이 정립했던 그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야 그렇게 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그걸 이소룡도 좋아할지는 다른 문제죠. 무엇보다 이소룡 자신이 계속 스타일을 바꾸어갔습니다. 나중에 '완성'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가 더 살아있었어도 그 상태로 놔두었을지는 알 수 없지요. 물론 '이소룡이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바꾸어갔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계속 무술을 변화해시켜가는 사람들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걸 '이소룡이라면 이런 식으로 변화시켰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거든요. 그냥 개념이기만 했거나 아니면 그냥 형식이기만 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래서는 아무래도 복잡하죠. 어느 쪽도 나름의 방식으로 절권도를 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분명히 주지할 점은, 개념을 취하는 식인 컨셉 절권도가 절권도가 아니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컨셉 절권도의 거두인 댄 이노산토 (Dan Inosanto)는 분명히 이소룡의 생전에 그에게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절권도의 사범입니다)

 절권도 이야기를 하는 김에 절권도의 전신 (前身)이 된 영춘권 (詠春拳) 이야기도 좀 해두면ㅡ 아, 영춘권이 절권도의 전신이 되었다고 하는 데 이의가 있으신 분이 있으실 수도 있겠지요. 오리지널 절권도의 (지금은 고인이 되신) 테드 웡 (Ted Wong)의 말에 의하면 절권도는 최후에는 펜싱과 복싱 스타일이 조합된 것만 남았으며 영춘은 버려졌다ㅡ고 하는데, 최후에 버렸다 하더라도 이소룡의 무술의 기반을 닦은 것이 영춘권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고 영화에서도 (분명 영화가 절권도와 이퀄은 아닙니다만) 영춘권의 흔적들을 상당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절권도의 전신이란 말이 혹시 마음에 안 드신다면, '이소룡의 무술 기반이 된'이라고 하면 적절할지 모르겠군요. 여하간 영춘권 이야기도 좀 해두면ㅡ

 이소룡이 영춘권의 효율성에 결정적으로 회의를 느낀 계기는 왕작만 (黃澤民, Wong Jak Man)과의 대결이었다고 하죠. 대결이 시작되자 갑자기 왕작만이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하고 그와 함께 온 다른 사람이 대결에 끼어들려 하니, 끼어든 사람을 제임스 임 리 (당시 이소룡의 도장의 동업자, 준판 쿵푸의 공인된 사범입니다)가 막았고 이소룡이 왕작만을 쫓았습니다. 도망가는 그를 쫓아가며 뒤통수를 때리다못해 팔로 목을 감아서 눕히고 두들겨 패게 되었는데, 몇 초 안에 끝낼 승부를 3분이나 끈 데 대해 화가 났고 이게 전통 무술의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계기였다 합니다.

 그러나 이게 전통 무술, 혹은 영춘권이 그다지 써먹지 못할 무술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죽어라고 도망가는 상대를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는 기술은 솔직히 어떤 무술에든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게 영춘권이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진 일화라고 하기에는 좀 모자란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다만, 어떤 상황에서건 대응할 수 있는 것을 원했던 이소룡이 '싸우러 오는 상대를 상대하는 기술'만으로는 특정 상황에서는 모자랄 수 있다고 여긴 계기라고 해두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영춘권 이야기를 하는 김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 책의 마지막에 부록 02로 윌리엄 청 (William Cheung 또는 張卓興, 장탁흥: 18p에는 이 사람의 이름이 장초흥으로 적혀 있는데 卓는 초 자가 아니죠. 장탁경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 인물입니다만 興을 경으로 읽어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Cheung Cheuk Hing이라고 읽는 발음을 봐도 장탁흥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 16.12.2 추가: 어느 분이 리플로 윌리엄 청의 이름은 장탁경이 맞으며, "장탁경 노사가 자기 싸인을 중국의 간체자(많이 생략된 한자)로 쓰는데 경의 간체자인 庆를 조금 더 흘려 씁니다. 그걸 누가 간체자의 흥(兴)으로 착각해서 퍼진 이름이 장탁흥입니다"라고 알려주셨습니다)이 다른 사람들의 영춘권은 모두 수정되어 기술이 실제보다 효과가 떨어진 영춘권이고 자신만이 엽문 사부에게서 제대로 된 정통 영춘권을 배웠다고 주장한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엽문 사부의 아들들에게조차 수정된 것을 가르쳤다고 했으니 영춘권 분파들 사이에 좀 알력이 생겼습니다. 물론 이건 그가 주장할 뿐이고 실제로 어땠는지 검증 가능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윌리엄 청이 유럽으로 진출해 세미나를 개최했을 때 세미나에 (먼저 유럽에서 영춘권을 가르치기 시작한) 양정파의 (지금은 양정파에서 나와 자신의 파를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만) 에민 보체페 (Emin Boztepe)가 난입하여 '네가 정통이라며? 싸워보자!'하고 윌리엄 청을 눕혀버린 사태도 있었습니다. 물론 윌리엄 청의 당시 나이가 40은 되었으니 젊은이에게 진 게 꼭 치욕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결코 좋은 일도 아니어서 당시 세미나는 흐지부지해져버렸다고 합니다. 영춘 문파의 좀 거시기한 이야기니 굳이 쓸 필요는 없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윌리엄 청의 '정통 영춘권' 주장 이야기가 책에 붙어 있길래 저도 붙여 써봤습니다.


 그리고 진짜 부록:

 이 책의 용어나 인명 번역에 좀 문제가 있습니다. 급하게 한 건지 잘 몰랐던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읽다가 그냥 보였던 것들을 여기다 적어둡니다.

 이수 수련 → 치사오 (黐手) 수련: 사실 한자를 읽으면 이수가 맞습니다만, 보통 그냥 치사오라고 읽으며 무술 용어로서는 이미 치사오 쪽이 더 익숙한 용어입니다. 굳이 이수라고 적는 것보단 치사오가 낫지 않았나 싶군요.
 목인춘 → 목인장 (木人樁): 영춘권이나 홍가권, 채리불가권 등의 남파 무술에서 사용하는 나무 더미입니다. 목'인장'이죠.
 장초흥 → 장탁경 (張卓慶):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진화선 → 진화순 (陳華順): 順이 왜 선이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서클 오브 아이론 → 서클 오브 아이언 (Circle of Iron): 이건 이렇게 쓰는 단어가 분명히 아닐 텐데요. (...)
 필립 말로위 → 필립 말로 (Philip Marlowe): 뭐 이 책의 번역자가 하드보일드를 좋아하지야 않았겠지만······. 말로입니다. 끝에 e가 붙지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