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겠지만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사람마다 무술을 배우는 이유는 다른 법입니다만, 사실 이십대 후반 이후에 굳이 무술을 배운다는 것이 단지 멋있어 보여서일 수는 없는 법이죠. 먹고 사는 일에 투자하기만도 벅차다는 걸 알면서도 무술을 배우는데 돈과 시간을 들이는 이유? 그건 무술이란 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종종 그런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생각이냐." 사실 그렇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무술이란 쉽게 쓰기 어렵죠. 정당방위로 사용한다 해도 정당방위의 기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사람을 가격하는 종류의 무술은 정말 큰 맘 먹고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전 그런 질문을 들을 때 이렇게 말해주곤 합니다: "무술이란 건 말이죠, 평생 배워서 쓰지 않는 거예요." (들은 건 많아서 말이죠)

 물론 정말 쓰지 않을 생각인 건 아닙니다. 다만, 쉽게 사람에게 쓰지 않을 생각이란 거죠. 정말 써야만 할 상황에 쓸 수 있도록,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얻어지는 모든 결과를 이해하면서도 폭력을 행사해야만 할 경우 쓸 수 있도록, 배워두는 거죠. 이건 만화에서 나온 대사이지만, 정말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 자신도 무술의 좌우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망설임이 있을 때는 주먹을 날리지 말며, 주먹을 날릴 때에는 망설임을 가지지 마라."

 건강을 위해서 무술을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 건강만을 위한다면요. 하루에 30분 이상만 뛰고, 또 30분 정도만 근력 운동에 투자해도 충분한 정도의 건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냥 보통 사람은 간단히 위압할 수 있을 만한 근력을 얻을 수도 있죠. 단지 건강을 위하거나, 그냥 적당한 정도의 힘을 원한다면, 그냥 달리고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 평행봉 턱걸이 정도만 좀 해줘도 나쁘지 않은 몸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면서도 제가 굳이 무술을 배우러 2시간 거리의 도장까지 가서, 단지 이동 시간만 왕복 4시간을 소요하면서도 그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다시 말하거니와 저에겐 무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였죠. 아이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고, 힘은 없지만 고지식한 정의파였던 저는 그 싸움을 말리려 했습니다. 결과요? 싸우려던 애 중 한 녀석에게 손끝으로 목을 찔리고 바로 쓰러졌습니다. 그 때 그 녀석의 비웃는 듯한 눈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마 그 때부터였겠죠. 힘이 없이 정의를 외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건요. 힘이 없는 자가 '널 용서한다'고 해봐야 그보다 힘있는 자는 그 용서를 우습게 여깁니다. 용서할 수 있는 건 강한 사람뿐입니다. 물론 제 중고등학교 시절이 딱히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괜찮은 친구들이 있었고,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죠. 하지만 절 고깝게 여기는 녀석들에게 딱히 뭘 할 수는 없었고, 남들이 싸우건 말건 말릴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쯤 되어서 이소룡이란 존재를 알게 된 겁니다. 이소룡의 무술 실력은 사실 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의 영화에서 제가 본 건 그 절대적인 자신감이었습니다. 힘이 있는 자가 가질 수 있는 그 자신감 말이죠. 이건 굉장히 큰 겁니다. 저도 그런 걸 갖고 싶었죠. 아무리 현대사회에서 폭력을 금하고 있다고 해도,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으면서 행사하지 않는 사람과 행사할 능력 자체가 없어서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긴 사회에서 이라고 할 때 무술 같은 폭력은 그리 높은 등급의 힘으로 쳐주진 않죠. 재력이나 권력이 훨씬 높은 힘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술은 가장 즉각적이며, 재력이나 권력이 적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이걸 갖고 있으면, 실제로 어떤 분쟁 상황 속에서도 (필요하면 폭력에 의지할 수 있기에)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폭력의 힘으로 위압하려 드는 사람에게는 위압당하지 않죠. 네, 성인이 된 후에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현대사회에서 폭력을 금하고 있다 하더라도, 쓰려 드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물론 무술을 배웠어도 결국 사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평생 배워서 평생 사용하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게 이상적이죠. 하지만 평생 배워서, 이 무술을 사용하게 될 순간이 단 2초만이라도 있다면, 그 2초의 순간에 전 무술을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아마 저에게는 그런 게 이유겠죠. 두 번 다시, 폭력에 쓰러지는 자신을 용납하고 싶지 않다는 거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