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라보세
Zal.Sa.Ra.Bo.Se.

-의미불명패러디난무엽기발랄실험소설-

제 1장. 용사여 깨어나라 …… (4)

봄의 햇살이 아름답게 내리쬐는 초원.

두 마리의 고블린이 손을 잡고 해바라기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뛰어놀고 있었다. 인간이 보기에는 둘 다 비슷한 외모이지만 한쪽은 좀 더 체구가 연약한데다 옷도 바지가 아니라 치마라, 조금만 자세히 눈여겨보면 한쪽이 암컷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수컷 고블린 (별로 상관하지 않겠지만, 이름은 드라이크 리닝. 10세) 은 암컷 고블린 (역시 별로 신경쓰진 않겠지만, 이름은 헤어드 라이어. 9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아아 사랑스런 헤어드, 그대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구려. 저 태양조차 그대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얼굴을 가리고 말 것이오.”
“어머나, 드라이크. 그런 말을 하면 질투 많다는 사랑의 여신이 우리를 갈라놓으려 할지도 몰라요.”
“하하하하, 걱정 말구려. 내 그대를 위해서라면 사랑의 여신과 싸우지 못할까? 나의 삶은 오로지 그대를 위해서만 존재한다오.”
“몰라몰라.”

참으로 흐뭇한 고블린의 청춘, 그 한 자락. 그러나 여기 암운이 드리웠으니, 멀쩡하던 초원에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웠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우고, 사랑을 속삭이던 두 연인들 너머로 일단의 불량배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여어. 그림 좋은데?”

그런 말을 하며 어깨에 대검을 걸치고 등장한 이는 비키니 갑옷을 입은 금발의 아리따운 (그리고 떡대가 바디빌더 이상인) 샤이륑 건담이었다. 그 뒤로는 긴머리와 하늘거리는 원피스가 아름다운 (남자) 성녀 히로인 비엘이 한쪽 입가를 끌어올리는 웃음과 함께 빈정거리듯 말했다.

“이거 눈꼴셔서 볼 수가 있어야지.”
“다, 당신들, 이게 무슨 짓이오!”

고블린 드라이크가 헤어드를 감싸며 외쳤고, 샤이륑이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안심해, 우리도 그리 나쁜 사람들은 아니야.”
“도, 돈이오? 돈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드리겠소!”
“돈? 후후후…… 그것도 괜찮지. 하지만!”

돌연 샤이륑이 대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우리가 원하는 건 경험치야!”

전연령가를 지향하는 잘사라보세에서는 차마 서술하기 힘든 참극이 벌어졌고, 쓰러진 드라이크는 미처 지켜내지 못한 자신의 연인을 향해 손을 내밀며 고통스럽게 외쳤다.

“미…… 미안하오, 헤어드, 내 힘이 부족해서…….”
“나……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그리고 고개를 떨구는 두 고블린. 그러자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영상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블린 (♂)이 사망했다.
고블린 (♀)이 사망했다.
샤이륑과 그 동료는 4 경험치를 얻었다!

“자,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샤이륑이 밝게 이대팔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대팔이 덜덜 떨며 말했다.

“이, 이건 뭔가 다르잖아요?”
“다르다니 뭐가요?”
“아니, 이건 마치 우리가 악당이 되어서 고블린을 괴롭히는 듯한.”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용사 이대팔.”

히로인이 끼어들었다. 그가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요. 우리에게는 그들이 악당이고 그들에게는 우리가 악당인 것이죠. 모든 존재에게 다 영웅이 될 수만은 없는 거예요.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 되러 이 세계에 온 것이 아니었던가요?”
“그건 그렇지만,”

이대팔이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과의 이미지와는 달라서. 뭔가 난 더 엄숙하게 용사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게 있어 보이게 하는 거예요. 그것이 광고죠.”
“그, 그런가요.”
“납득했으면 이제 실전으로 들어갈까요.”

그리하여 우리의 이대팔은 실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상대는 지나가는 고블린 한 마리.

“드, 드라이크? 헤어드? 왜 이런 곳에서 죽어 있는 거냐! 나의 벗들이여!”

죽은 고블린과 친구라는 설정인 모양이었다. 곰으로 변신한 이대팔, 가르마 베어가 어슬렁거리며 그에게 다가가 샤이륑이 가르쳐 준 대사를 말했다.

“후, 후후후, 또 멍청한 고블린이 나에게 죽으려고 나타났구나!”
“뭐, 뭣이. 네놈이 내 친구들을 죽였느냐!”

분노한 고블린이 달려들었다. ‘역시 흥분하는군! 승리는 나의 것이야!’ 가르마 베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상체를 흔든 고블린이 간단히 가르마 베어의 앞발을 피하더니 더 달려들어 가르마 베어의 왼옆구리에 펀치를 올려쳤다! 실로 훌륭한 리버 블로 (간장치기). “이것은 드라이크의 몫.” 고블린이 외쳤다.

그 다음에는 무릎을 굽혔다가 체중을 실어 튕겨 올려치는 어퍼컷. “이것은 헤어드의 몫.”

움직이지 못하는 가르마 베어의 앞에서 고블린이 상체를 반동을 실어 ∞의 궤도로 흔들어댔다. “그리고 이것은…….” 그 반동을 살려 왼쪽과 오른쪽에서 번갈아 훅을 날려 친다! “이것은,”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친구를 잃은, 나의 분노다아아아아아!”
“우와.”

멀리서 그것을 구경하던 샤이륑이 평했다.

“보디블로에 가젤펀치에 뎀○시롤. 이거 어디서 본 연속기인데요.”
“게다가 대사는 또 어디서 나온 대사인지.”

히로인도 한마디했다.

그런 거야 어쨌든, 가르마 베어는 참으로 신명나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우오오오오오오!” 분노의 고함과 함께 고블린의 라스트 레프트 훅이 가르마 베어의 얼굴을 갈겼고, 선 채로 좌우로 펀치를 두들겨 맞던 가르마 베어는 초원 저 편으로 날아가 사라져버렸다.

변함없이 나타나는 메시지.

이대팔 가르마 ‘THE 가르마 베어’(이)가 사망했다.
림보는 0 경험치를 얻었다! (WEAKIST 등급, 경험치 없음)
림보는 <열 살에 곰을 잡은> 타이틀을 획득했다!

“고블린한테도 0 경험치 주는군요…….”

히로인의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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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를 매우 좋아합니다. 진지하게 쓰는 글에서는 차마 쓰지 못할 전개들을 가득 써낼 수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Neissy였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