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高地戰), 2011
감독: 장훈
출연: 신하균, 고수 외

 그저께 보았습니다. 재미있더군요.

 더불어 이 감상은 내용 특성상 다소의 스포일러를 포함함을 밝힙니다.

 휴전협정이 난항을 겪고 있던 1953년, 애록고지를 놓고 벌어진 고지 쟁탈전을 그린 영화입니다. -물론 그 고지의 존재나 부대 등은 허구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 중 현실에도 실재한 것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총 사망자 400만명. 이중 1.4후퇴 이전 사망자수가 100만이며, 나머지 300만 병사들은 51년 6월 전선 교착 이후 25개월간 벌어진 각종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내용 자체가 사실에 근거했다면 영화 시작되기 전에 그렇다고 밝혔겠죠.

 무엇이 재미있었는가 하면,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형제애나 전우애 같은 것을 강조하지 않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몇 가지가 있습니다: 지도 위에서 보는 전황 따위로는 병사들의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없다. 전쟁은 근본적으로 인간성이 말살된 행위이며, 그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싸우는 것은 이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다.

 이 영화에서는 정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인간이니만큼 정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혹은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장에서 비정함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우를 수단으로 사용하고, 상관을 살해하고, 전우들을 사살하는 일조차도 가능해집니다. 전장 속에서 쓸데없는 정을 찾다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나으며 이게 현실적입니다. 전장에 낭만 따위는 없습니다. 전쟁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뿐이죠. <고지전>은 그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이 사람을 얼마나 지옥으로 떨어뜨리는지를 보여줍니다.

 <고지전>이 흥행한다면, 그건 이 영화가 전쟁 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물론 굉장히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것은 사실입니다. 박진감 넘치며, 괜찮은 연출이 여기저기에서 보입니다), 이젠 우리 사회가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받아들여질만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물론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 몇 가지는 존재합니다. 어쩌면 일종의 타협이 아니었을까도 싶지만, 영화는 현실적이지만 다소 작위적인 구석이 보이며, 비록 잔혹하지만 가슴이 먹먹할 만큼 잔혹하지는 못합니다. <공동구역 JSA>를 연상하게 하는 북한군과의 교류 (비록 현실성을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와 그로부터 연결되어 계속되는 이야기들이 그러하며, 여성 스나이퍼 '2초'의 존재가 또한 그러합니다. 신경 써서 이야기를 만들어갔지만 영화 자체가 주는 인상이 '전장의 비정함'이다보니 저런 이야기들은 좀 겉돕니다. 솔직히, 영화상 임팩트를 주기 위해 집어넣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단 생각이 듭니다. 저더러 말하라면, 스나이퍼를 만났는데 여성이라고 망설인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고, 그런 여성 군인이 군 내부에서 그리 '깔끔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안 듭니다. 거기에서 전쟁의 비정함을, 미쳐있음을, 먹먹함을 보다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게까지 하면 아무래도 곤란하긴 하겠군요.

 어찌 되었든, <고지전>은 잘 만든 영화입니다.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정말 전쟁을 겪어 본 사람의 의견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다는 말이죠. 글쎄, 에라스무스도 말했거니와 "전쟁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유쾌한 일"이다보니······.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