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격

영춘권/수련단상 2011. 10. 5. 08:22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른 법입니다. 만화 <홀리랜드>에서도 작가가 후기에서 그런 소릴 했었는데, 사실 격투는 상대적인 것이고 자기 체격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 마련이라 내 느낌은 다른 사람의 느낌과 다를 수 있어요. 이를테면 제가 177cm/85kg인데 제가 다니는 영춘권 도장에서는 이게 제법 키가 크면서/굉장히 무거운 편입니다. 파트너와 10kg 가량 차이가 나는 일이 보통이고 20kg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꽤나 생기는데 이런 경우 제 펀치를 상대가 미트 대고 받아도 너덧 발짝 튕겨나가게 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달까, 아무튼 그 정도나 차이가 생깁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이게 제 체격이면 아주 강한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키 한 2m 되고 몸무게 100kg 넘어가는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참 부족합니다. 그러면 이제 또 체격을 키워서 쩔어주는 거구를 만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일까 하면 그러면 또 그보다 더 큰 사람은 없나? 라는 건 그렇다치고 옷값과 식비가 어마어마해질 것이므로 현실성이 없다 사료되네요. 뭐 이렇게 말이 길어졌나, 아무튼,

 체격은 중요함다. 기술로 힘을 흘리는 게 가능하지만, 힘으로 기술을 씹는 것도 분명히 가능하거든요. 압도적인 기술 앞에 어설픈 힘이 소용 없는 것처럼, 압도적인 힘 앞에 어설픈 기술 또한 설 수 없죠. 아니 뭐 그건 그렇다치고서라도 애당초 기술 제대로 쓰려면 힘도 좀 있어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

 요게 제가 개인 수련 중에 근력 운동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배제하지 않는다고 해봐야 팔굽혀펴기의 연장인 딥스와, 복근 강화에 좋은 평행봉 레그레이즈와, 광배근을 노리는 치닝 약간 정도뿐이지만) 사실 사부님께서 파이트클래스 때 가르쳐주신 체력 강화 세트에도 근력 운동이 포함되어 있으니, 영춘권은 근육과는 전혀 무관해!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싶네요. 근육에 의지하지 않는 무술인 것은 틀림없습니다만 근육에 의지하지 않는 것과 근육이 필요 없는 것은 좀 다르죠. 중국무술 식으로 말하면, 졸력을 쓰지 말고 제대로 발력하라는 것이겠군요.

 체격 이야기로 돌아가서, 힘이 있으면 좋습니다. 힘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어요. 아니, 연비가 나빠져서 식비가 좀 많이 든다거나 하는 문제는 있구나. 아무튼, 힘이 있으면 기술이 좀 안 들어갈 때라도 힘으로 밀어버리는 게 가능합니다. 그거에 습관을 들여서 힘으로만 하려고 하면 큰 문제지만요. 신체의 통합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힘을 부분적으로만 쓰는 데만 익숙해서 그 상태로 근력만 키워도 문제고. 혹시나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신다면 간단히 말해 무술가로서 발전하기 힘들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도 힘이 있는 건 좋아요. 네. (...) 다르게 말하면, 기술을 쓰는 데 저해받지 않도록 주의하며 체격을 키우는 건 분명 좋은 일입니다. 환경을 바꿔버릴 수 있거든요. 177cm/85kg인 사람과 177cm/100kg인 사람이 피차 기술 수준이 같다면 어느 쪽이 더 유리할지는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죠. 그래서 제 이상이 군살 쪽 빼고 90kg까지 만들어내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운동 후에 포카리스웨트라거나 피곤할 때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큰일인데, 그렇잖아도 어제 도장 갔다 오는 길에 포카리스웨트 사마시다가 조나단 사형 보고 드실래요 물어보니 몸에 안 좋다고 거절해서 나도 이걸 심각하게 다시 고려해봐야겠다 생각한ㅡ 건 뭐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는 아무래도 좋은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무튼,

 속칭 헬스보이와는 다르겠지만 저는 앞으로도 꾸준히 체격향상을 꾀할 겁니다ㅡ 영춘권사로서 부적합하지는 않을 정도 내에서 말입죠. 아무튼 팔꿈치는 몸 앞으로 모여야 하고, 고관절은 열려야 합니다. 유연하면서도 강하고 세심한 신체를 만드려면 글쎄 뭐 갈 길이 머네요. 그나저나 영춘권 시작하고 나서 다리는 정말 단단해진 듯함다. 다리 근력 운동 따로 안 하는데도 확실히 굵고 튼튼해짐. 그야 영춘권 할 때는 언제나 무릎 조이며 다리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하는데 다리가 안 튼튼해질 수 있겠냐마는.


 여담. 그리고 사실 힘이 있으면 꼭 무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뭔가 무거운 것 (가구/생수통/아이 탑승 상태의 유모차/할머니 짐/etc)을 든다거나, 민다거나, 끌어당긴다거나, 안 열리는 뚜껑 연다거나, 에스컬레이터 위쪽에 자전거랑 같이 올라가던 여자분이 어째 못 버티고 뒤로 미끄러지려 할 때 스윽 가서 자전거/여자분 둘 다 가뿐하게 받쳐주고 어이구 조심하셔야죠 하하하 하고 산뜻하게 웃어준다거나 (실제 경험담-_-v). 사실 무술한다고 말하면서 어디 가서 힘없이 끙끙대는 것도 별로 좋은 건 아니니까.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