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솔직히 치안이 좋은 나라입니다. 밤에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나라가 그리 많지는 않지요.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안전한 편이기 때문에 방심하다가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심지어) 밤에 술마시고 뻗어 있는 사람 같은 경우, 사실 털어달라는 것과 다를 게 없지요.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만 일어났을 때 잘 처리하는 건 차선책이고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살아가는 게 최상책입니다. 저한테 호신술을 묻는다면, 그렇게 살아가는 게 진짜 호신술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호신하기 위해 어찌해야 하는가는 사실 모두 알고 있습니다. 위험한 데를 다니지 마세요, 주위를 경계하세요, 위급하다면 도움을 청하세요 (뭔가 낌새가 이상한 사람이 따라온다거나 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빨리 가세요)!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지만 이 경우만큼은 아무리 지나쳐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난 그럴 생각 없거든? 웃기는 여잘세' 하고 투덜거리는 남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남자는 여자가 절대적인 약자의 입장에 있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사람이니 신경쓰지 맙시다. 과잉경계로 벌어진 일은 웃음거리가 될 수 있지만 경계소홀로 벌어진 일은 웃음거리가 못 되죠.

 그러나 모든 것에 실패했을 때, 거주 환경 및 생활 문제 상 위험한 곳을 피해갈 수가 없었고, 경계했어도 어쩔 수 없었을 때, 습격을 받고 말았을 때, 그때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게 싸움의 기술이고, 보통 말하는 호신술이란 건데······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도 가끔 실감하지 못하는 여자분들이 있긴 있더군요. 그래서 말해둡니다: 대개의 호신술, 실전에서 안 먹혀요. 남자가 진심으로 여자에게 덤벼들면 체중 · 근력 · 체력 · 맷집 그 모든 면에서 우월합니다. 맞아도 아픈 줄 잘 모르고, 관절 꺾으려 해도 잘 안 꺾일 겁니다. 운동을 빡세게 해서 기술과 육체를 만들어낸 여자분 아니면 싸움으로 남자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혹시나 '응? 난 남자애들 때리고 사는데?' 라며 남자들을 얕보는 경우도 왕왕 있긴 하던데······ 그건 ① 주위 남자가 정말로 너무나 허약하거나, ② 여자를 상대로 진심일 수 없으니 맞아주는 것뿐입니다. 진짜로 덤비면 장난 아님다. 게다가, 여자를 습격하는 비겁한 남자놈은 당연히 자기가 상대하기 어렵지 않을 법한, 만만해 보이는 여자를 습격합니다. 당연하죠.

 그럼 어쩌라고? 상대 안 되니까 얌전히 당해주라고? ······네, 솔직히 말하면 어떤 의미에선 그게 제일 안전합니다. 어정쩡하게 반격했다가 남자가 광분해서 더 폭력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안 입어도 될 피해를 더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로 치자면 칼 든 강도가 돈내놔 했는데 상대할 수 있을 줄 알고 싸우려다가 괜히 서걱서걱 베이고 어디 찔리고 돈도 다 뺏기고······· 얌전히 건네주고 신고할 수 있는 거 나중에 신고하는 게 제일 안전합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지요. 최고의 호신술은 주위 경계와 달리기입니다. 당신은 초원의 임팔라입니다. 사자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사자가 어슬렁거리며 따라온다 싶으면 냅다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게 최곱니다. 격투기술? 물론 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자를 경계하는 게 늦었고, 거의 당하겠다 싶을 때 냅다 공격해서 뜻밖의 대미지를 주는 데 성공했다면 그 다음엔 더 공격하고 어쩌고 하기보다는 역시 달려서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별 수 없습니다, 클래스가 달라요.

 ······라고만 쓰면 '뭐 어쩌라고, 우리도 이미 위험한 데선 알아서 조심하거든? 덤벼들면 그냥 당하라니 니 일 아니니 그렇게 말하지!'라고 하실 여성분들도 있을 거 같아서 그나마 도움이 될 법한 것 몇 가지는 적어둘까 합니다.

 일단 뭐 꺾고 치고 어쩌고 하는 건 쓸 생각 하지 마세요. 적어도 체육관에 가서 전문적으로 배우고 나기 전에는요. 뭐 그렇게 배웠다 해도 그게 쉬운 게 아닌데, 어디서 동영상이나 강좌 잠깐 본 정도로는 죽어도 못 씁니다. 당장 주위의 (너무 빈약한 사람 말고) 남자더러 제대로 상대해달라고 부탁하고 실험해보면, '어라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는데?' 라면서 낑낑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설령 기술 성공해도 남자에게 치명적 대미지도 못 들어가고요. (놀 때야 아프겠죠. 하지만 그건 마치 베개싸움 할 때 아프다고 말하는 거나 비슷한 수준의 대미지)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하면, 일단 그런 습격상황에선 머리가 혼란해져서 그런 기술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몸에 배어있어야 통할까 말까 한 기술을 혼란스럽고 당황한 상태에서 쓸 수 있을 리 없지요.

 그나마 가능할법한 건, 꼬집기 혹은 찍기입니다. 피부를 뜯어서 근육까지 끊어버리겠다는 기세로 꼬집으세요. 팔 위쪽이나 허벅지 안쪽, (그만한 각오가 있다면) 사타구니-에 달려있는 그 무언가 두 쪽,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요-가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혹은 찍기는, 볼펜이나 기타 무엇이든 찍어서 효과를 볼 법한 무언가로 하는 건데, 이건 어디든 통하긴 할 겁니다. 도구 없이 그냥 친다면 목이나 사타구니 등지가 즉효성으로 통할 만한 부위입니다. (만약 눈을 목표로 할 수 있다면 찌르는 게 아니라 누르는 정도로만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엉키는 상황에서 제대로 찍을 수 있는 보장도 사실 없는데다 아드레날린으로 스팀팩 빤 남자놈은 목이나 사타구니를 맞고도 움직일 수 있는 경우가 있어서 (사실 이건 꼬집기도 마찬가지로 버티는 놈이 있을 수 있는데) 완전히 100% 방어가 가능하다는 보장은 못 합니다. 어느 쪽이든 통했다 싶으면 추가타 많이 먹이려 들지 말고 냅다 도망치세요. 어디든 사람이 있고 안전한 곳으로!

 최루 스프레이도 좋은 방법이라고는 하는데 이걸 위험하다 싶을 때 미리 잘 꺼내놓고 준비했다가 / 바람 방향 주의해서 / 상대에게 적절하게 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을 것 같군요. 방범 호루라기는 위에서 말한 '위험하다 싶으면 도움을 요청하라'에 포함되는데······ 어느 것이든, 위험하다고 낌새 느꼈을 때 미리 준비해두는 게 필수이긴 하겠네요.

 호신술에 너무 부정적이지 않냐고 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쓰지도 못할 기술 가지고 괜찮으리라고 위안 삼고 제대로 조심 안 하는 것보다는 위험한 줄을 알고 위험을 가능한 피하는 게 훨씬 안전한 것입니다. 전 '이러이러하게 쓰면 돼. 오케이 너 안전.' 이런 소리는 못 합니다. 격투 기술이란 제대로 배우고 익히고 수련하고 또 수련해서, 몸에 완전히 배어서, 그냥 자연스럽게 움직이는데 그렇게 될 때에나 사용 가능한 겁니다. 동작 잠깐 보고 조금 연습한 것 가지고,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정말로 상대가 미친듯이 달려들지도 않는 상황에서 기술 좀 써본 것 가지고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다간 크게 다치게 됩니다. 무술 관련해서 많이 말했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달라요.

 위험한 곳에 가지 마세요. 조심하세요. 습격받을 일을 만들지 마세요. 설마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게 호신술입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