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전에 쓴 <무술과 실전>에서 부가로 이어지는 성격의 글입니다. 스파링 방식과 관련한 실전성 이야기라면 이야기인데, 먼저 적어두면 저는 실제로 '무술을 배운 후 다시 실전을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파링과 실전의 관계에 대해 올바르게 적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마도, 나름의 스파링은 경험한 입장에서 그 차이에 대해 좀 생각해보는 글을 적는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아래에 적을 글의 내용에 일부 혹은 전체 동의하지 못하는 분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의견의 차이, 혹은 여러분과 제가 겪는 상황의 차이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이 글에서 말할 스파링과 실전의 의미에 대해 명확하게 해두고자 합니다. 스파링은 '상호 간의 실력 향상을 위해 하는 대련'을 말하며, 실전은 '실력 향상과 관계없이, 서로 부딪히는 충돌'을 말합니다. 룰의 존재 유무로 구분하지는 않을 터인데, 왜냐하면 보통 '룰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실전에도 사실은 룰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다치게는 하지 않는다" 혹은 "죽이지는 않는다" 혹은 "항복한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혹은 "핵무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등등 말이죠. 개인별 혹은 사회별로 암묵의 룰이 존재하는데, 그게 경기 내지 시합의 룰처럼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룰이 없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룰은 스파링에도 실전에도 존재합니다. 스파링이 대개 보다 엄격한 룰과 보호장구를 갖추고 참여자를 보호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실전은 룰이 없다고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타격기를 배운 누군가가 '나는 어디는 때리지 않겠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게는 그것이 룰이고, 관절기를 배운 누군가가 '나는 제압은 하지만 관절을 부수지는 않겠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룰이니까요.
하지만 룰이 합치되느냐고 물으면 이건 또 이야기가 다르죠. 생각하는 게 다르면, 룰도 다릅니다. 우선 부딪히는 상황- 실전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무술과 실전> 글에서 그대로 옮겨보면, 혹자에게는 술자리에서 싸움 벌어지는 게 실전이고, 혹자에게는 전쟁터에서 사람 죽이는 게 실전이고, 혹자에게는 발광하는 범인 체포하는 게 실전이고, 혹자에게는 MMA 무대에서 상대방에게 이기는 게 실전입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실전이 다르며, 그 실전에 자신이 '어디까지, 어떻게' 대처하려 하는가가 다 다릅니다. 그걸 착각하면 쓰러뜨린 후에 다 끝났다고 생각하다가 역공을 당해 험한 꼴을 당하거나, 스파링이나 시합으로 충분히 경험을 쌓았음에도 전혀 다른 룰에 의거해 들어오는 다른 사람에게 어이없이 당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죠. 그 점에서 실전은 서로 다른 룰의 충돌입니다. 다른 가치관과 다른 룰, 다른 기술을 가진 '다른 사람'이 부딪히는 것이죠.
시합으로 말하는 실전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어떤 무술에서는, 시합 자체에 아주 큰 의미를 둡니다. 그리고 시합에서 이기는 것을 강함의 증명으로 여깁니다. (강함의 증명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무술에서는, 시합을 위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기술의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으며 그것의 승패 여부로 온전히 강함 여부를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팔꿈치치기나 무릎치기 허용 여부로도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생각해주세요. 강한 무술가라면 그걸 허용해도 더 잘 싸울 수 있다고 말하기는 쉬운 일입니다만 실제로는 그걸 쓴다는 전제로 계속 써왔던 사람들이 더 잘 씁니다) 그래서 어떤 무술에서는 시합을 스파링 이상의 의미로 여기지 않기도 합니다.
그게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글쎄요, 저는 풀컨택 스파링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거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향상할 수 있음을 압니다. 이 스파링의 효용성은 대단히 큽니다. 그 무술의 전략을 실행할 때 반드시 필요한 거리감이며 타이밍 등을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익힐 수 있죠. (고통도 더 잘 견디게 되고) 실전을 잘하는 것은 결국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고, '내 생각과 다르게 들어오는' 상황을 자주 겪어볼수록 그런 상황에 대한 대처가 보다 잘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국, 이것 자체가 실전은 아닙니다. 이 자체를 '실전'으로 여긴다면 그것을 위해 기술이 변하는 것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니는 양정파 영춘권이 실전에 대한 대응 연습을 위해 파이트 클래스라는 풀컨택 스파링을 하지만, 시합이나 토너먼트를 하지는 않는 겁니다. 그러면 그곳에서의 승리에 보다 유리한 방식으로 기술이 변할 것인데, 그 변한 기술이 쓰이는 곳은 영춘권이 생각하는 실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맨손으로 하지그래? 라고는 하지 마시길. 그랬다간 스파링 한 번 할 때마다 병원······은 고사하고 리타이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스파링하다가 리타이어······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우린 기술이 무시무시해서 풀컨택 스파링을 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무술도 사실 그렇게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파링으로 가능한 게 있고 불가능한 게 있는데, 기술 체계상 스파링에서 제한되는 게 너무 많아지면 곤란한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그거 빼고 싸워도 강한 건 강하다! 고 말하기는 쉽습니다만, 실제로는 그 무술이 생각하는 실전에 대한 접근법 자체가 달라지는 탓에 그 무술이 그 무술로서 존재하기 어려워지죠. 물론 풀컨택 스파링을 하지 못해 생겨날 경험치 부족 문제는 감수해야겠지만요.
그러므로 다들 다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고, 나름의 스파링 방식이 있고 (그게 풀컨택이건 라이트 컨택이건) 나름대로 실전에 접근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좋다 생각하는 방식과 다르다고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겁니다. 아 그야 이러니저러니 말해도 솔직히 제 머릿속에서 '이게 더 낫지 않나?' 하는 것이야 있지요. 안 그러면 지금 배우는 무술 말고 다른 것 배웠겠죠. 하지만 그 낫다는 건 제 가치관 하에서, 제 상황 하에서, 제가 앞으로 겪을 것 같은 상정되는 실전을 감안해서 나오는 결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게 더 나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제대로 배우면 다른 걸 뭘 배워도 무서운 거 알거든요. 태권도든 복싱이든 합기도든 가라데든 무에타이든 레슬링이든 삼보든 주짓수든 헬스도든 제대로 한 건 다 무섭습니다. 어차피 다 강한 거 가지고 누가 이겼네 누가 더 세네 이 무술 짱이네 해도······ 나는 7수다에서 (획 하나 빠진 것 같지만 신경 쓰지 맙시다) 어차피 다 상위 레벨인 가수들 모아놓고 1-7위 갈렸다고 이 가수가 짱이네 다른 가수 허접이네 노래는 역시 이 장르지 저 장르 깝ㄴㄴ! ······라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습니다. 원체 그 실전이란 게, 그 상황이며 환경에 따라 유리하고 불리한 사람이 다 바뀌는 것인데요. 그야 모든 상황에 모두 최적으로 적용 가능한 게 있으면 최고이겠습니다만 실제로는 인간이 수련 가능한 한계상 그건 실현이 안 되고, 결국 어떤 전법을 택해 그걸 빡세게 파는 게 현실성 있는 방안이죠. 그것이 맞닥뜨리게 될 실전하고 잘 맞을수록 좋은 거고, 영 쓰기 좋지 못한 상황이면 안 좋은 거고.
요즘은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두루뭉술하게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니까 막 까지 맙시다!' 식의 글이 되었는데 뭐 결론이 그렇게밖에 안 나는 걸 어찌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