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만, 블로그에 올린 글이 요즘 워낙 적기도 해서 올립니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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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052133335&code=990100 : [허지웅의 영화로 세상읽기] 분노로 도매가를 팝니다

 나는 종종, '너희가 이것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깨어있지 않는 사람이다!'라며 분노팔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한다. 이 영화는 현실에 기반했는데, 이걸 보고도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어? 라고 외치는 제작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어쩌면, 그런 것으로 어떤 공감대를 이끌어내 무언가 바꿔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영화 한 편, 소설 한 권으로 쉽게 세상을 바꿔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거기에 담긴 메시지가 온전히 옳기만 한 것이라도 그렇다.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는 일과 사건을 단순히 한쪽의 입장만을 보아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분리되었다면 속편하게 분노할 수 있겠지만, 인간 자체에 이미 선악이 함께 있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며,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그렇다고 '어차피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일 수 있다! 포기하고 살고 싶은 대로 막 살자!'고 외치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런 사건이야 언제건 일어나는 것인데 신경쓸 게 무엇 있는가?' 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 의견은 이런 일에 대해서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을 실제보다 단순하게 접근하고,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로 보고 접근하면 간단하게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선동한 것은, 그 이면에 일어난 실제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알게 되면 힘을 잃는다. 어쩌면 '일단 분노하는 게 중요해! 정말 복잡한 건 나중에 알아도 된다고!'라고 외치고 싶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일단 분노해서 와르르 움직였는데, 그것이 잘못된 움직임이었다면? 이를테면 인터넷에서 '누가 나쁘다!'고 외쳐서 신상털이하고 와르르 악플을 남기고 고통스럽게 만들어놨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딱히 나쁜 것도 아니었고 선동한 사람 쪽에 오히려 다른 속셈이 있었다면? (그리고 이런 경우는 아주 많이 일어난다. 난 그래서 페이스북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지구인들아 모두 나에게 힘을 줘! 그놈을 척살해야해!'라고 선동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좀 신중하게 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한 분노만으로 움직여서 안 좋은 결과를 남기는 일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건 사회 정의 실현이 아니라 단순한 분노 배출이며, 내가 개운해질 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좋은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는 것이다.

 분노는 모든 것을 알아보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실은 그런 분노야말로 정말로 오래 가며 무언가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실제로 고려해야 할 많은 것을 무시하거나, 혹은 실제보다 자극적으로 포장해서 사람들을 분노케 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분노팔이지.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