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준비. 싸우기 전에 자기 마음하고 머리는 정리해야 돼요.
두 번째는 경험. 연습하면서 경험 쌓을 수 있어요. 경험이 없으면 싸우기가 좀 힘들어요.
그리고 세 번째는 기술. 연습하면서 기술에 맞는 동작과 맞는 반응이 필요해요.
그 세 가지가 제일 중요한 거예요."
- 사이언스TV '고수비급' 중, 사부님의 인터뷰에서
아마 전 평생, 정말로 격하게 싸울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무술이 단지 취미생활일 뿐이며, 싸우고 나면 법의 제재를 받는데 싸울 일이 뭐가 있겠느냐는 생각 때문에서는 아닙니다. 뉴스를 통해서든,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든, 법의 제재를 두려워하지 않는 미친놈들은 언제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음을 압니다. 단지 내 보통의 일상생활에서 그런 사람과 마주칠 일은 정말 거의 없으니까, 그 확률은 사실상 거의 제로에 가까우니까, 아마 싸울 일이 없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지, 제로라는 것이 아닙니다. 엄연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죠. 어떤 사람은 그 일어날 가능성을 부정하고 전혀 마주치지 않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무시했던 가능성과 만나게 되고, 그 사람에게는 없는 가능성이 아니라 일어난 일이 돼버리죠. 준비하지 않았던 사람이 예기치 않았던 사태를 만나 제대로 대응하기란 어렵습니다.
무술을 배우는 건 그런 위협이 존재함을, 그리고 그런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배워서 쓸 일이 없을지 모르나, 쓸 일이 생긴다면 써야 함을 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무술을 배우는 사람은 배울 때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싸워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쓰기 위해서죠. 그건 마치 평생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화기는 언제 어느 때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최근에 <전투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대해서는 조만간 감상글을 적을 예정입니다. 위의 소화기 이야기도 이 책에서 인상 깊게 들은 비유입니다만), 처음에 인용한 사부님의 인터뷰가 떠올랐습니다. 싸울 필요가 있을 때 싸울 수 있도록, 도장에서는 기술, 맞는 동작, 그리고 반응을 배우고, 실전에 대비해 유사 경험을 쌓습니다. 그러나 그것들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 준비입니다. 싸우는 법을 배운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 빠르게 판단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즉각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과 나아가 주위 사람)이 다치게 되죠. 망설이는 마음으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습니다.
시비가 붙었을 때 대응하는 법에 대해 도장에서 배운 바 있습니다. 길을 가다 잘못 부딪혔고 상대가 공격 의지를 가지고 이쪽을 향해올 때 대응하는 법이죠. 상대가 적의를 가지고 오는 순간, 그때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머뭇거리다 상대가 그냥 나를 치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적절히 대응하고 나를 지키거나.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무엇보다도, 부딪히지 않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 어깨를 부딪치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죠.
그러나 싸워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잘 피하려고 노력해도, 피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법에 의지하기에는 이쪽이 받는 피해가 너무 크다고 판단될 때, 법에 의한 제재를 감수하더라도 당장 싸워야만 한다고 판단될 때, 나뿐 아니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다치게 될 때- 그럴 때는 싸워야만 하겠죠. 그리고 그때 잘 싸우고 싶다면,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빠르게 심리 준비를 마쳐야 할 겁니다.
-라는 뭐 그런 생각을 요즘에는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