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블로그에 글이 아예 없어서, 근황이라도 좀 써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뭐랄까 현재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주 서식지가 옮겨갔는데, 사실 그조차도 그리 많은 글을 올리진 않습니다. 일주일에 글 하나 정도 짤막하게 올리고 마는 경우도 제법 있고 (뭐 먹는 사진 같은 건 자주 올리는 편입니다만) 그렇습니다만, 아무튼 어떻게 지내는지 오랜만에 블로그에도 가볍게 슥슥 써볼까 합니다. 하는 김에 도장 풍경도 느낌을 좀 전달해보죠. 편하게 쓸 생각이니 존댓말 생략합니다.
낮이 되면 일어난다. 다시 늘 늦게 잔다. 밤이 돼야 글 관련 일이 잘된다는 건 운동도 하는 입장으로는 슬픈 일이지만 별수 없다. 쓰던 걸 완결하고 나서 조금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차기작 준비와 더불어 종종 메일로 들어오는 교정 일감도 해야 하니 어쨌든 밤에 깨어 있는 걸 피하기는 어렵다. 누워 있다가 배를 만져보고 달리기 좀 제대로 해야겠다고 머리를 흔들며 일어난다. 좀 정신을 차리고 나면 스트레칭을 가볍게 해준다. 요즘 스트레칭도 소홀했더니 너무 몸이 굳었다. 다시 재개했더니 그래도 하루가 좀 가벼워지는 것 같다. 바람직한 일이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즈음 도장으로 출발한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탄다. 총합 2시간 정도 걸린다. 혹자는 도장이 가까워야 배울 수 있다고 하는데, 반쯤은 동의하지만 정말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사람은 그 거리가 멀어도 가기 마련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야 프리랜서에 작가니 시간 조정이 가능한 덕분이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주위 사람을 보면, 이분들도 어째 일을 구할 때 도장에 나갈 수 있는 직장인가를 보고 일을 정하는 느낌이 물씬물씬 묻어난다. 아름다운 일이다.
홍대에 도착하면 가볍게 식사를 한다. 운동 직전에 식사하는 게 별로 좋지 않은 건 알지만 어쨌든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면 먹는 게 인간다운 거라고 믿고 있다. 후딱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도장을 향해 걷는다.
사람들과 카톡으로 늘상 대화하기 때문에 오늘 도장에 누가 올지는 대강 짐작하고 있다. 비슷한 레벨대의 사람들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친해져서, 도장에 나가지 않는 날도 같이 만나 노는 일이 많다. 아마 이렇게 친해진 게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 없이 계속 함께 영춘권 하는 큰 이유가 되지 않았나도 생각해 본다. 저레벨 사제들도 그렇게 서로 친해지고 좋은 관계가 되어 계속 쭉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레벨대로 나뉘어 연습하는 도장 특성상, 저레벨 사제와 말을 섞기는 아무래도 조금 어렵다. 기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미 고렙들끼리 친한 이상, 친한 사람끼리 이야기하게 되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보면 저레벨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같이 돌아가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도장에 들어서면 대강 예상했던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옷을 갈아입고 난 뒤, 나와 마찬가지로 검은티 (학생 12레벨 이상부터의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 쪽으로 간다. 흰티 쪽 사람들은 사실 봐도 잘 모른다. 인사는 가볍게 할 수 있지만, 어쨌든 말을 섞을 일이 거의 없으니까. 슬슬 치사오를 시작한, 그래도 1년쯤은 나온 사람들은 보면 좀 대화도 하지만, 같이 수련할 일이 거의 없으니 아무래도 어쩔 수 없다.
수련 전에 몸을 가볍게 풀며 대화하거나 치사오를 한다. 수련 시각이 되면 사부님께 인사를 마치고 그날의 수련을 시작한다. 하는 것은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는 투로 후 치사오로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굳었던 어깨가 풀리고 감각이 다시 살아난다. 오래 다니다 보니 요즘은 도장 분위기가 아주 편해져서, 치사오 하는 중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거나 가볍게 웃거나 조언하는 일이 잦다. 분위기는 편하지만, 그래도 치사오 자체는 진지하게 한다. 영춘권을 하러 갔지 놀러 간 건 아니니까.
중간에 파트너를 바꿔가며 하는데, 누구와 해도 별문제는 없다. 이미 다들 지나칠 정도로 친해졌다. 다만 바꿔가며 하는 건 중요하다. 누군가는 딱딱하고 누군가는 부드럽다. 누군가는 힘이 없고 누군가는 힘이 세다. 누군가는 느리고 누군가는 빠르다.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같은 걸 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마다 장기가 다르고,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르다. 상대방은 나와 다른 시각에서 내 문제를 잡아줄 수 있고, 나 역시 내가 보는 대로 상대방의 문제를 잡아줄 수 있다. 물론 가장 확실한 건 사부님께서 고쳐주시는 것이지만.
가끔은 저레벨 사제의 수련을 도와주게 될 때도 있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보다는 한참 아랫급의 기술이 되지만, 어쨌든 진지하게 하며 그 자체도 내 수련이 되도록 열심히 한다. 위 단계의 기술을 배우다 보면 아래 단계의 기술에 소홀해질 수 있다. 그러면 안 된다. 이건 나 자신을 다시 다잡는 좋은 기회가 된다.
또 가끔은 사부님과 자유 치사오를 할 때가 있다. 체력이 팍팍 깎여나가게 되는 멘붕의 시간이다. 내가 뭘 해도 결국 당하게 될 것은 알지만, 할 수 있는 대로 들어간다.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뭘 더 해야 하는지 더 잘 알 수 있다. 어쨌든 당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예전보다는 좀 더 고급스럽게 당한다는 거다. 좋아, 어쨌든 발전하고 있다.
치사오만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도 한다. 어떤 때는 일 대 다수에서의 대응, 어떤 때는 잡혔을 때의 대응, 어떤 때는 자유공격에 대응 등으로 다양하다. 치사오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순간적으로 치사오의 그것이 응용되는 일은 자주 있는 편이다. 항상 하는 게 그거니까. 어쨌든 확실한 건, 연습하지 않으면 쓰기 어렵다는 거다. 몸에 배어야만 한다.
모두 마치고 나면, 남은 시간에 따라 원을 그리고 둘러서서 연환충권을 하거나, 약간의 스트레칭이나, 약간의 근력운동을 더 하는 일도 있다. 시간이 모자라면 생략할 수도 있는데, 이건 사실 도장에서만 할 수 있는 종류의 운동이 아니니 집에서도 하는 게 가장 좋다. 집에 가서 시키는 사람이 없으면 잘 하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문제지만.
마치고 인사가 끝나도 바로 집에 가지는 않는다. 도장에서 조금 더 툭탁거리다가, 저레벨 사제들이 다 가고 나면 사부님과 함께 도장을 나온다. 그래도 집에는 안 간다. 도장이 있는 곳 편의점 앞에서 모여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나면 슬슬 헤어진다. 헤어지지 않는 경우엔 또 몇 사람이 뭉쳐서 모 치킨 프랜차이즈에 가서 치킨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논다. 요즘은 정말 너무 친해졌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러다 12시쯤 홍대에서 헤어진다.
집에 오면 거의 2시다. 씻고 좀 정리하면 금방 3시다. 이것저것 하다가 느지막이 잠이 들고- 낮이 되면 일어난다.
대충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도장에 참관을 오신다면 저런 모습을 실제로 도장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일상이.. 도장 안 가는 날은 또 다릅니다만, 아무튼 그건 그냥 집에서 영화보고 책보고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나날이라 정말 말할 거리가 없습니다. 도장에 가는 날은 아무튼 아주 즐거워요. 활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