샀습니다

 뭐랄까, 이놈을 산 건 거의 운명이지 싶습니다. 애초에 헤드폰을 처음 샀던 4년 전 당시, 젠하이저 HD238과 놓고 고민했던 게 OE였죠. 뭐, 그땐 OE2는 없었고 OE였습니다만. 성향상 OE보다 저음 부스팅을 줄이고 조금 더 올라운드 느낌으로 간 게 OE2라고 합니다. 그래도 저음이 별로 약하진 않은 기분이지만요.

 OE는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HD238이 너무 오픈형이라 바깥에서 쓰기 곤란해서 밀폐형인 AKG K450을 샀을 때도 사실 Bose OE를 계속 신경 쓰고 있었어요. K450이 좀 더 싸고 디자인도 괜찮아서 그쪽을 샀습니다만, 아무튼 마음속 한군데에는 OE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잘 써오던 K450입니다만, 지난주에 오른쪽이 안 들리게 되었습니다. 내부 단선이 의심되고 AS를 받아야 하게 되었는데, 최근에 AKG의 공식 수입처가 바뀌면서 AS에 문제가 많다는 소문이 들려오더랍니다. 심한 경우는 AS를 부탁한 지 4개월이 지났는데 그 시점에서도 언제 AS가 될지 모르겠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 이야기를 보고 나니 '아 이거 안 되겠다.' 싶더구만요. AS를 맡기긴 해야겠지만 일단 이참에 새 헤드폰 주문을 해보자! .....라는 건 뭐 사실, 결국 이 정도 살 여유 자금은 있었기 때문에 나온 생각이긴 하죠. 새 헤드폰 사볼래! 사고 싶어! 가 더 정확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프리스비나 영풍 등지에서 청음을 좀 해보았습니다. Bose AE2와 OE2 (AE는 Around-Ear =귀 전체를 아예 덮는 형태이며, OE는 On-Ear =귀에 올려놓는 형태입니다. IE라고 In-Ear =이어폰 같은 타입도 있습니다. 아무튼 AE니 OE니 하는 게 보스의 제품명입니다) 모두 들어보았는데, OE2는 K450과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공간감이 넓은 AE2가 마음에 들었더랬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AE2를 주문했는데..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배송을 기다리며 (휴일이 껴서 오래 걸렸는데) 며칠 지나 주문서를 확인해보니 OE2인 겁니다. 어 이게 뭐야?! 싶었는데 밤중에 AE2와 OE2를 계속 왔다 갔다 하며 고민하다가 AE2를 주문했다고 생각하고 OE2를 주문했던 모양입니다. '으아 이게 뭐야!' 를 외치고 판매자에게 전화해 교환을 시도할까 했습니다만, 시간 더 걸릴 게 싫기도 하고 OE2가 딱히 마음에 안 들었던 것도 아니고, 케이블 탈부착이 가능한 건 AE2나 OE2나 마찬가지고, 공간감 좋은 헤드폰은 그냥 나중에 3,40만 원대 이상의 인도어용으로 좋은 걸 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소리에 그냥 그만두었습니다. 뭐, 됐어요, 전부터 신경 쓰이던 헤드폰이고, 이건 이것대로 마음에 드는 물건이고.

 해서 오늘 와서 좀 들어보았습니다. 사진에도 보입니다만, 기본적으로 K450과 같은 형태로 접혀서 휴대하기는 편합니다. K450보다는 좀 더 머리에서 뜨게 벌어지는 타입이라 조절 밴드 있는 쪽에서 머리 사이로 손을 넣어보면 아주 느긋하게 손가락을 넣어 까딱거릴 수 있습니다. 소위 요다 현상이 K450보단 있는데, 있습니다만, 사실 전 그런 거 크게 신경 안 씁니다. 핫핫.

 아무튼 음에는 만족합니다. 확실히 저음이 좀 세긴 합니다. 베이스가 강하거나 저음이 두드러지는 음악을 들을 때 좀 더 궁합이 잘 맞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첼로 연주곡을 들을 때 '오오' 했습니다. 그렇다고 저음이 다른 음을 다 잡아먹는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신경 쓰이는 분이라면 이퀄라이저를 좀 만지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어차피 늘 이퀄라이저를 사용합니다.

 여태까지 사용하던 K450보다 좀 더 넓은 곳에서 듣는 느낌의 음이 나는데, 보니까 이거 누음이 있더군요. 아예 오픈형은 아닌데 밀폐형이라기엔 제법 소리가 새어나가는, 반 밀폐형? 버스나 지하철에선 음량 세게 들으면 조금 민폐일 것 같습니다.

 집에서는 계속 HD238로 음악을 들었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음이 조금 더 윤기 있는 느낌이 나는 기분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HD238이 좀 더 삼삼한 느낌? 어떤 의미에선 좀 더 편안한 음이랄지, 뭐가 좋고 나쁘다기보다 그냥 조금씩 다른 느낌인 거죠. 일이십만 원 이상 차이 나는 것도 아니고 다 십만 원대 헤드폰이니까..

 아무튼 상황 따라 돌려가며 들을까 싶습니다. (K450은 수리 맡기긴 해야 할텐데요.. 음) 공간감이 좋은, 아예 작정하고 인도어용 3,40만 원대 이상 헤드폰은 어떨까 하는 마음이 또 스물스물 들기 시작합니다만, 뭐 그건 또 다른 이야기..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