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감상/도서 2016. 4. 4. 19:23

오만과 편견 (한글판 + 영문판)
제인 오스틴 지음, 김유미 옮김/더클래식


 예전에 시사영한대역 판으로 읽었는데, 그건 이야기 상당 부분이 요약되어 나오는지라 제대로 읽었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읽었습니다. 삼성폰을 쓰면 교보문고 eBook for SAMSUNG에서 무료로 책을 대여해주는 게 있어서 유용하게 써먹었죠. 이북으로 책을 읽은 건 사실 처음인데 의외로 괜찮아서, 좀 더 사용해볼까 하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오만과 편견>입니다. 정말 유명한데 전 제대로 읽어보질 못했어요. 이제 읽어보니 요즘에는 사실 거의 전형적인 구도가 된 로맨스더군요. 당차고 지적이고 적절히 아름답지만 부유하지는 않은 여자와 부유하고 아는 것 많고 교양있지만 다소 오만한 남자가 만나서 "나한테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로 사랑에 빠지는 그거 말이죠. 하지만 이건 이제 와서 전형적이 됐다는 거지, 이게 나올 땐 전형적이지 않았죠. 이게 나온 다음에 비슷한 구도가 쏟아져나온 것이니까요. 개척자라는 의미에서도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겠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런 로맨스이긴 한데, 이래저래 당시 (영국, 19세기)로서는 엄청나게 혁신적인 로맨스입니다. 가진 것 많은 남자의 청혼을 감사히 받아들여도 모자랄 여성이 가치관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거절한다는 것부터가 혁신적이죠. 근래라고 하더라도 배우자가 돈이 많으므로 다른 걸 감수하는 일이 놀라운 일이 아닌데 그녀는 그런 식으로 생활 때문에 가치관을 감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당대 여성이 남자의 보호 없이 먹고살 길이 실로 막막함을 고려하면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거기에다 남자 또한, 그런 여자의 지적을 무려 '받아들여' 변화한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잘 안 변합니다. 돈 가진 남자는 더더욱 그렇죠. 그런데도 변하다니, 사랑의 힘이란 참으로 무서움을 보여주는 혁신적이면서도 모범적인 로맨스 소설이 아닌가 싶네요.

 시대 배경이 19세기 영국이다 보니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저로서는 영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나 가치가 제법 있었습니다. 귀족이 몰락하기 시작하고 상인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가치관이 일어나는 시대에서 보여주는 이 로맨스는 그 자체로도 기존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충돌하여 화합하는 이상을 그리는 것이라는 해설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사실 전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냥 판타지 세계 보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도 완전 판타지예요. 잘생기고 교양있고 돈 많고 오만한 나쁜 남자 (그리고 알고 보니 착한 남자)가 내 여자한텐 따스해져서 온갖 역경 다 헤치는 (사랑에 빠지는 걸로 끝나면 재미없으니, 서로 사랑하게 됐다 싶으니 별일이 다 일어나 방해를 해댑니다) 이야기라니, 실로 판타지 아닙니까.. ..바람직하기 이를 데 없네요.

 이 감상에선 주인공들만 이야기하긴 했는데, 주변 인물들도 파고들어 보면 꽤 흥미로운 구석이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각 인물들이 가진 가치관이 서로 부딪히며 일어나는 일들을 로맨스 형식을 빌려 그려냈다고.. ..라고 하면 좀 너무 나갔다 싶습니다만, 그런 생각도 해볼 수 있을 정도로 잘 짜여졌습니다. 고전이 괜히 고전이 아닙지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