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숨겨진 삶
짐 더처.제이미 더처 지음, 전혜영 옮김/글항아리
늑대를 좋아합니다. 어딘지 고결해 보이는 이미지나, 자기 배우자에게 충실하다는 성실함이나, 야생동물이지만 개와 비슷해서 친숙하다는 점 등을 좋아합니다. 사실 개와 친숙해서 늑대를 좋아한다는 말에는 조금 어폐가 있는 게 제가 좋아하는 개는 늑대와 비슷한 개들뿐이기 때문입니다. 소형견은 그다지 예쁘다는 생각이 안 들더군요.
뭐 그런 자기 취향은 그렇다 치고, 늑대 다큐멘터리입니다. 사진집이기도 합니다. 새끼 때부터 친숙해진 늑대들과 6년을 같이하며 보내온 시간의 기록입니다. 이 책은 늑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일종의 부족 같은 느낌이며 서열하에 자기 위치를 정립하고, 조직적이면서도 협동적으로 살아가는 동물.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 잔인하거나 공격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동물.
늑대 세계는 인간 세계와 비슷하며, 욕망과 동정과 애정과 죄의식, 공격성과 장난기 등 많은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 나름의 사회가 존재하고 그 사회의 서열 속에서 자기 위치를 분명하게 하고 있죠. (갯과 동물이 그렇듯, 이 서열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그들은 자기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는 쥐 같은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만, 사회 내의 약자를 먹이기 위해 되도록 큰 먹이를 잡을 필요가 있으며, 큰 먹이를 잡기 위해서는 (전승되는) 사냥 기술과 무리의 협동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사회적일 필요가 있으며, 또한 타고나길 사회적으로 태어났습니다.
인간을 기본적으로 두려워하여 잘 접근하지 않지만, 인간이 기르고 있는 가축에 대해서는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들이 가축이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잘 하기 어렵고 따라서 단순히 '잡기 쉬운 동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가서 가축을 죽였다며 늑대를 죽여 봐야, 그들은 (마치 잘못을 저지른 개를 2주 후에 혼내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가축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냥 기술을 가진 늑대가 죽음으로 인해 큰 먹이를 사냥하지 못하고 쉬운 먹이 (이를테면 가축)을 노리게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그래서 만약 인간이 늑대와 공존하고자 한다면 시간을 두고 그들에게 '가축과 인간이 함께 있으며 가축을 건드리면 인간이 제재를 가해오는 (죽이는 것은 아닌)' 일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번거롭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늑대가 없는 세계에서는 포식자인 늑대에게 압력을 받지 않는 엘크가 이상번식하여 사시나무를 다 뜯어먹어 버리고 따라서 그와 관련된 생태계도 변해버리죠. 새는 둥지를 틀 곳을 잃고, 개울이 훤해지고 얕아져 어류, 양서류, 파충류의 서식지가 줄고, 개울가의 초목이 만드는 그늘이 사라지며 수온도 올라갑니다. 늑대와 영역이 겹치는 코요테는 늑대가 사라지자 개체수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그들이 먹는 작은 포유류의 수도 줄게 됩니다. 또한 늑대가 먹고 남기는 사체가 사라지므로 여우, 오소리, 맹금류, 기타 썩은 고기를 먹는 동물의 수도 줄게 되죠. 늑대는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종인 셈입니다.
물론 그들의 영역은 인간의 영역과도 겹칩니다. 다만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목장 주인은 늑대들을 싫어할 수 있습니다. 자연사나 병사로 죽어가는 양들의 수가 훨씬 많더라도, 늑대들이 한두 마리를 잡아먹는다면 그걸 더 싫어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렇더라도, 늑대가 생태계에서 미치는 위치가 지대하며, 그들의 씨를 말려버려 생태계에 심각한 변화를 주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 게 아니라면 그들과의 공존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더불어 사냥꾼도 늑대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책에 의하면) 그들이 있음으로 인해 엘크 등이 더 이상 먹이를 넋놓고 한가롭게 먹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니기 때문에 그들을 잡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글쎄, 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긴 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늑대를 죽여도 좋다는 건 역시 좀 다른 문제겠죠.
말하자면 이 책은 늑대들이 인간의 관심과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말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저처럼 원래부터 늑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참 즐거운 책이랄까요. 본래 늑대를 좋아했지만,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충실하게 실린 사진들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늑대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