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엮음/열린책들

드라큘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한때는 흡혈귀의 대명사로까지 불렸지만 요즘은 다들 뱀파이어로 제대로 부르는 덕분에 오히려 흡혈귀를 '드라큘라'라고 부르면 생소하죠. (나만 그런가? 뭐 아무튼) 유명하긴 무지하게 유명한데 막상 제대로 읽은 사람은 또 드문 드라큘라, 읽었습니다.

..그냥, 뭐, 그랬습니다. 아니, 재미 없었다는 뜻은 아니고, 막상 감상을 써보려니 별 게 없군요. 이거 안 읽은 분들이라 해도 제대로 안 읽었다 뿐이지 대강 내용은 다 알 거 같아서. 이교사상인 흡혈귀가 기독교와 만나 결국 깨졌다거나, 흡혈이란 게 성적인 코드와 꽤나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다거나 하는 건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테니까요. 이런 쪽의 의미로선 별로 소개할 것도 없을 듯 합니다.

뭐 그런 쪽은 그런 쪽이고, 막상 책을 읽으면서 특히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이 있다면 '흡혈귀를 죽이는 행위가,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구원시키는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건 기독사상과 결부되었기 때문에 다소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실 분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소설에서 '악의 축'인 드라큘라 백작조차 마지막으로 분해될 때에는 정말 평화로운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흡혈귀는 마늘에 약하고, 십자가를 두려워하며, 성체의 빵 (기독교에서, 성찬식을 할 때에 사용하는 빵: 성찬식에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기념하며 빵은 그리스도의 살을 기념합니다)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햇빛 아래에서는 존재하지조차 못하죠. 이걸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물리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수많은 뱀파이어물이 있습니다만, 어떻게 해석해도 이 '드라큘라'에서는 뱀파이어가 확실히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들은 어둠의 존재이고, 오로지 어둠 속에서만 제대로 움직이며 성스러운 것에는 범접할 수 없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마늘에 약한 거야 기독적인 게 아니라 민간신앙 쪽이겠습니다만) 뱀파이어는 아무리 그 형상이 괴기하다고 해도 결국 인간에서 변형된 존재, 다시 말하자면 타락한 인간입니다. 이미 죽은 존재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시키자면 결국 그들을 '죽여야' 하겠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마지막에 그들이 '뱀파이어로서 죽을 때' 그들의 영혼은 구원받습니다. 여기 나오는 모든 흡혈귀들은 죽기 직전에 비로소 정말 평화로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였달까요. 사실, 뱀파이어가 된 건 그들의 의지도 아닌데다 뱀파이어가 된 시점에서 원래의 인격과는 완전히 다른 인격이 들어서 버리니 이건 일종의 귀신들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딱히 자세하게 파고들 생각은 없습니다. 비평이나 논문을 쓰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생각난 게 그랬다는 겁니다. 애당초 흡혈귀 자체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다보니 억지로 기독사상에 끼워맞추려면 아무래도 에러가 생기죠. 좀 깊이 파고들어볼까 하다가 역시 관두기로 했습니다. 그러려면 생각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서. (...)

신학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드라큘라는 그저 괴기소설로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걸 산 건 '그렇잖아도 뱀파이어물이 범람하는 작금의 세태에서 일단 좀 드라큘라 정도는 제대로 읽어야 여기에서 설정을 끌어다 쓴 흡혈귀에 대해 뭐라도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라는 이유였습니다만. 아무튼 말 그대로 뱀파이어물에서는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읽어 두어서 나쁠 건 없겠지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