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영춘권을 배우기 시작한 지도 만 10년이 되었습니다. 수련 연차가 한 자리에서 두 자리로 바뀌었죠. 감회가 새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무언가 달성한 기분으로, 오랜만의 기념글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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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엽문 4>가 나왔고, 길었던 시리즈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영춘권을 좋아하는 사람들 다수에게 그렇겠지만, 제게도 역시 엽문 영화는 특별합니다. 당초 이소룡에게 관심이 많았다가 점차 영춘권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던 와중에, 결정적으로 영춘권이 멋있다고 느끼게 해준 영화였기 때문이죠. 영춘권을 실제로 배우게 되면서 영화 속의 영춘권과 실제의 영춘권이 차이가 많음을 알게 되었고, 실제 무술을 하면서 무술 영화에 대한 관심 자체도 이전보다 많이 사그라졌습니다만, 그래도 역시나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저 자신이 그러했기 때문에, 영화 등을 통해서 영춘권을 동경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혹시나 실제로 영춘권을 배우지는 않으면서 영화 속의 영춘권만을 동경하는 분이 있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춘권은 영화 속이나 책 속에만 있는 무술이 아니라 실제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당신의 무술이 될 수 있는 무술입니다. 관심이 있다면 도장에 들러보시고, 배워보세요.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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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을 배운다는 건 그냥 무술을 배운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와 비슷하게, 혹은 조금 다르게, 마찬가지로 무술을 배우려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도 또한 의미합니다. 영춘권을 배우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함께하다 떨어져 나간 사람, 처음엔 없었지만 함께하게 된 사람,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함께하는 사람. 좋은 사람도 있고, 좋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묵묵히 수련하는 사람도 있고, 말만 앞서는 사람도 있고, 제대로 영춘권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마음대로 영춘권을 고쳐 이해하고 다른 무술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죠.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는 건 영춘권 수련을 위해서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 자신의 사람에 대한 경험에도 좋은 일이죠. 어느 쪽이건, 저는 그 모든 사람들을 만난 게 제게 있어 좋은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사람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생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요.

물론 영춘권을 배우면서 만난 사람들은 꼭 같이 도장에서 만난 사람들만인 것도 아니라, 다른 파 영춘권을 하거나, 다른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같은 도장을 다니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분들도 넓게 볼 때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서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이무회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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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의 기술적인 부분을 조금 이야기하자면, 표지 (영춘권의 마지막 맨손 투로)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실력 향상에 확실히 가속이 붙었습니다. 그동안 쌓아 왔던 기본들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치고 올라간다고 할까요. 확연히 교묘하고 정교해지는 몸쓰임을 느끼니, 요즘 영춘권 배우는 게 여태까지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진 느낌입니다. 이제부터 계속해서 표지를 죽자고 연습하게 될 텐데, 정말 힘들고 어렵지만 그만큼 즐거울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위에서 기술적인 부분이라고 이야기하긴 했습니다만, 사실 기술이 바뀐다는 건 몸쓰임이 바뀐다는 것도 함께 의미하는 거죠. 몸이 바뀌지 않았는데 기술을 익힐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쓸 수 없다고 해야 옳을까요. 전 그런 기술을 익힌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부님 말씀대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반복한 기술만이 (과장이 아닙니다) 자기 것이 되는 법입니다.

무술을 배운다는 건 그런 무한한 반복을 즐기고, 그걸 단순한 반복으로 만들지 않고 반복 속에서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게 쿵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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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10년을 배웠는데, 이제 앞으로의 10년은 어떨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은 오래전에 얻었습니다만,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에 대한 제 기준은 좀 높은 편입니다. 아직은 저 자신을 더 향상시키고 싶은 마음이죠. 앞으로의 10년 안에는 아마 가르치게 되지 않을까? 싶지만 사람 앞일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어쨌거나 더욱 더 실력을 키워, 언젠가 생길 제 제자가 자랑스럽게 이분이 내 사부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제 사부님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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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즐겁게 영춘권 하고 있습니다. 뭐,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