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사부님께서 비디토리에 출연해 영춘권에 대해 "상대방을 빨리 극복하고 도망가려고 하는 무술"이라고 언급한 것에 관련해, 도장에 안 나오고 영상만 본 분 중 영춘권이 몇 대 때리고 상대방이 정신없을 때 도망치려고 하는 무술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솔직히 우리 파 (양정파) 영춘권에 대해 조금 알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 영상의 그 말만 보면 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긴 하겠다 싶습니다.
실제로 사부님께 10년 이상 영춘권을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 이야기는 "필요하다면 빨리 쓰러뜨리고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도망가려는 무술"인 쪽에 가깝습니다. (....)
기술을 어떤 식으로 가르치시고, 어떤 식으로 배우는지 보면 그런 건 알 수 있죠. 파고들 때 인정사정 봐주지 않습니다. 치사오할 때야 그렇게까지 파고들진 않지만, 일반 공격을 할 때는 한번에 확실하게 보내버리는 게 기본이고, 파이트클래스(우리 파의 풀컨택 스파링)을 할 때도 상대가 쓰러졌어도 끝나지 않고 완전히 무력화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중단됩니다. 그리고 경기가 아니라 실전을 가정할 때 이건 당연한 겁니다. 확실하게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상대는 다시 공격해올 거고, 그러면 내가 당할 수 있으니까요.
영춘권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비가 있으면 싸우지 않아야 하고, 싸울 때는 자비가 없어야 한다." 이건 영춘권이 실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시비가 걸렸을 때 최선은 당연히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해서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것이죠. 하지만 싸움을 피할 수 없을 때, 영춘권으로 싸워야만 할 때, 자비는 필요없습니다. 끝장을 내야 하죠. 물론 그리고 나서 생길 법적인 문제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겁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감안하고서도 싸워야만 할 때, 그때가 영춘권을 쓸 때인 거죠.
게다가 애초에 일대일 싸움만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라, 일대다 싸움도 자주 상정하고 멀티파이트를 연습합니다. 왜 여럿과의 싸움을 연습하느냐? 그건 실전은 깨끗하지 않으며 여럿이 덤벼올 일도 얼마든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이것 역시, 애초에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하지만 그런 걸 자주 연습한다는 건 그런 일이 닥칠 수도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일이 닥쳤을 때의 행동요령은, 몇 대 치고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럿을 시야에 두면서 하나하나 부딪힐 때마다 확실히 보내버리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멀티파이트 연습은 치사오와 다른 의미에서 몸놀림을 키워줍니다)
영춘권이 보는 실전은 거칠고 잔혹합니다. 깨끗한 싸움이란 없고, 싸움 후에 서로를 인정하는 일도 없습니다. 원수가 되는 일과 법적 분쟁이 있을 뿐이죠. 그러니 여러 가지 의미로, 도망가기가 최고인 건 맞긴 합니다. 애초에 위험할 일을 만들지 않고, 위험한 장소에도 안 가는 게 최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