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 가지 기술을 한 번씩 연습하는 것보다 한 가지 기술을 천 번씩 연습하는 게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연습을 한 가지만 하고 있지야 않지만, 무엇보다도 깊이 있게 연습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고, 따라서 제대로 연습할 수 있는 기술의 수는 아무래도 제한됩니다. 배운 걸 잊지 않기 위한 정도로 적은 회수로만 가볍게 해주는 기술도 있기야 합니다만..
- 문제는 기술 낱개를 얼마나 하느냐만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체계가 무엇이냐입니다. 상황에 따라 머리로 생각해서 기술을 내는 게 아니라, 몸이 자동으로 움직여져야 합니다. 몸에 새겨진 모든 기술들은 하나의 체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동되어야 하며, 거리와 타이밍이 잘 맞아 들어가야만 합니다. 체계가 몸에 새겨진다는 게 포인트인데, 기술을 잘 쓴다는 건 그냥 게임에서 스킬 장착하듯 하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을 잘 쓸 수 있는 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세, 근육, 반응, 모든 것들에 있어 그 체계에 최적화가 된다는 뜻이고, 한 무술을 잘한다는 말을 들으려면 그렇게 돼야만 합니다.
- 그런 이유로, 두 가지 이상의 무술을 동시에 잘하기는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며, 사실상 생활체육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냥 기술만 쓰겠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서로 따로 놀기 쉽고, 무언가는 최적화가 되어있지 않겠죠. 시너지를 주기보다는 서로 상충되기 오히려 쉽습니다. 시간을 아주 많이 들여서 그 원리와 체계를 서로 이어지게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이 없고, 영춘권이 가진 깊이만도 다 파고들기 벅찹니다. 제가 영춘권만 하기도 벅차다고 말하는 건 대략 이런 의미죠.
- 깊이 이야기를 하면, 사부님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 깊이에 감탄하는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게 되는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 건 영춘권을 배우기 시작한 지 12년이 넘은 지금에도 유효합니다. 제가 생각하던 몸 움직임과 다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깨닫는 게 반복되는데, 그래서 연습할 때 감각이나 포인트 등도 조금씩 계속 바뀌어 갑니다. 이게 계속 이어지고 나면 같은 동작 같지만 사실은 같지 않은 동작이 되어 있는 거죠.
- 그런 이유로, 초보가 무작정 기술을 반복한다고 기술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의 향상을 위해서는 깨달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초보의 기술 반복에 의미가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닌데, 무엇보다 일정 이상 연습하지 않으면 기술이 숙련될 일이 없고, 깨달음도 오지 않으며, 고쳐질 기회도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술을 반복연습하는 가운데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신경쓰고, 뭔가 깨달았다면 그걸 반영해서 계속 고쳐나가고, 그런 사이클이 돌고 돌아야죠. 제가 영춘권을 하면서 지루한 적이 없는 건 이게 계속해서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