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장가
곽승범 지음/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어쩌다 보니 1, 2권을 입수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사실 제대로 말하려면 완결까지 다 읽고 평해야겠습니다만 완결까지 읽을 기회가 생기지는 않을 듯해서 2권까지의 내용만 대강 감상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만 이 감상은 전적으로 제 취향에 기준합니다. 아, 우선 장르를 말해 두면 <질주장가>는 신무협이고, 속 편하게 읽기에 적합한 글입니다.

스토리 라인은 간단한데, 조선에서 살 수 없게 된 일단의 부상배 (富商輩: 등짐장수)들이 중원에 정착하여 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조선에서 온 부상배들은 다섯 명이고, 따라서 주인공도 다섯 명입니다. 이들은 중원에서 압도적으로 강한데, 조선에서 산적들을 상대하며 짐을 날라야 하다 보니 무력이나 체력이 어처구니없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산적이 강한 것은 조선에서 무를 천시하기 때문에 전승무예를 가진 이들이 산적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고요. 이 책에서의 설정으로는 중원 무림인들의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으며 과대포장되어 있는 셈이고, 조선 사람들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훨씬 강합니다. 물론 중원 무림이란 게 애당초 중국인들 특유의 허풍이 맛깔스럽게 포장되어 탄생했다고 보면 중원이 과장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게 일리는 있는데, 그렇다고 조선을 너무 치켜올리는 것도 좀 오버스럽긴 하죠. 하기야 주인공들이 압도적으로 강한 쪽이 보기에는 속시원하니 이런 류의 책에서는 나쁘지 않은 설정이겠습니다. (이런 류의 책··· 이라고 하는 게 좀 애매하긴 하군요. 제가 워낙 이런 책을 안 읽다 보니. 국내 판타지도 안 읽은 지 수 년이 지났고)

아무튼 중심 주인공이 다섯 명인데, 그로 인해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긴 합니다만 동시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주인공격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딱히 누군가에게 제대로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그 중에서 중심 주인공은 산호라는 사람인 듯하고 이 사람이 처음부터 서술되긴 하는데, 워낙 여러 명이 스쳐지나가다 보니 제대로 집중해서 감정을 이입하기 어렵습니다. 애당초 주인공은 너무 강하니 죽음의 위협도 전혀 느끼지 않는데 게다가 그 의형제가 도합 다섯이나 되죠. 사실 한 사람만 서술해도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데 다섯이나 주인공이 나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좀 더 파고들어 보면 이런 말입니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좀 더 완급을 조절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죠. 이를테면 이야기의 기본 얼개 자체에는 그다지 불만이 없어도, 그 이야기를 좀 더 독자로서 즐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겁니다. 사건들이 좀 빡빡하게 지나가는 감이 있습니다. 늘어지는 것보다야 낫습니다만, 좀 더 표현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죠. 개인들의 감정의 흐름을 좀 더 분량을 할애해서 서술해 나갔다면 캐릭터 중 누구 하나를 잡아서 마음에 들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누구 한 사람 골라잡기가 애매합니다.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단지 '어떤 식으로 전투하느냐, 그의 특기는 무엇이냐'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거든요. 모처럼 전대물인데 아쉽잖습니까.

다만 <질주장가>에는 다른 매력이 있는데, 그건 바로 건설 + 전략 시뮬레이션 (...)입니다. 심시티 보는 듯한 재미가 있어요. (아니면 웹에서 인기를 끄는 듯한 부족전쟁? 그거 해보지는 않았고 스샷만 봤습니다만)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자금을 만들고, 마을을 건설하고, 그걸 발전시켜 나갑니다. 방파라고 하기에는 이 사람들이 (자기 출신지가 드러날까봐) 소극적이긴 합니다만 워낙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른 인간들이 쳐들어올 건덕지가 많고, 결국에는 방파건설 → 무림일통 루트를 탈 것만 같아 보이는 전개죠. 출신지 문제가 있어서라도 과연 이 사람들이 어디까지 나갈까 싶기는 합니다만, 이 사람들의 주위 사람들이 이들을 편안하게 놓아 주지 않을 듯 하니 어쨌든 일이 갈수록 커질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이 소설은 이거 보는 재미로 봤죠.

덧붙여 이건 좀 사소한 문제인데··· 위에서 산적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 부상배들은 중원무림의 사람들의 강함의 척도를 산적으로 구분합니다. 이 정도면 조선에서는 산채 두목 정도는 된다, 혹은 이 녀석들은 산적질도 못하고 살 놈들이 설치는구나, 라는 식으로 말이죠. 나름대로 신선하기는 합니다만, 이걸 1권에서만이 아니라 2권까지 가서도 드러내고 다니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애당초 조선에서 온 걸 숨기기 위해서 중국인인 척하고 조선말도 쓰지 않는데, 그런 식으로 자기의 출신지를 알려줄 만한 정보를 입밖으로 내고 다니는 건 솔직히 생각 없는 짓이죠. 그 정도 각오였다면 싸우는 중에 갑자기 조선말이 튀어나온다거나 하는 일도 몇 차례 있을 법 한데 2권까지는 또 그런 건 없더군요. 애매합니다.

다른 이야기로, 같은 출판사인 파피루스에서 나온 신무협 <일월광륜>은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는데.. 이건 감상을 좀 미뤄 두겠습니다. 완결까지 다 읽고 감상이 쓰고 싶어졌거든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책을 살 돈이 없으니까)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