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영춘권을 배운 지도 만 13년이 되었습니다. 이번엔 기념글로 살짝, 요즘 생각중인 영춘권의 힘빼기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그간 쓴 글의 통합편 같은 느낌일 수도 있겠네요.


# 용어

영춘권은 중국무술이고, 대체로 보통 중국무술에서 말하는 요결을 공유합니다. 함흉발배, 침견추주 같은 것들 말이죠.

다만 저희 도장에선 그런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보통은 그냥 알기 쉬운 언어를 사용합니다. 어깨 낮춰라, 머리 숙이지 마라, 등 구부리지 마라, 등이죠. 그런 이유로 저도 쉬운 언어를 쓰고 있으며, 용어는 종종 사용하더라도 그 자체가 크게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나저나 용어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한마디로 중국무술이라고는 해도, 실은 중국무술끼리 쓰는 용어가 같다고 그 개념이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큰 틀에서 몸을 움직이는 데 원리가 통하기 때문에 같은 용어를 쓸 뿐이지, 세부적인 사항은 다른 경우가 많죠. 특정 무술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개념을 다른 무술에도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 있음을 짚어둡니다.

그래도 중국무술끼리는 좀 더 서로 공유하는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몸 쓰는 법'이 다른 무술에는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몸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의미에서는 악기 다루는 법과도 공유하는 게 있을 정도라..

게다가 중국무술이라고 퉁치기엔 또 너무 많은 무술이 있기도 하니, 가볍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문제는 아니겠습니다. 저로서는 역시, 무술끼리 비슷한 것도 있고 통하는 것도 있지만, 무술이 서로 다른 건 다를 만한 이유가 또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 자세

영춘권에서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처음 배울 때부터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수련하면서도 계속 다듬어 갑니다.

정확한 자세는 초보자일 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초보자에게 정말로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않는데, 솔직히 말하면 초보자가 정확한 자세를 취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도 몸이 안 따라오니 적절한 수준으로 맞추고, 수준이 올라가면서 계속 잡는다는 쪽이 맞겠습니다.

다만 '어차피 정확하게 안 되니까 대충 해도 돼'라고 생각해버리면 큰 문제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백날 해도 절대로 위로 올라갈 수 없게 됩니다. 이건 물론 초보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군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결코 그 위의 실력을 가질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다시 자세 이야기입니다만, 영춘권에서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정밀한 자세입니다. 정확한 폼이 큰 힘을 낳는다는 건 쉽게 이해하실 수 있겠지요. 다만 그것 외에도, 영춘권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힘을 이용하고 흘리며 공격하는 무술이기 때문에 더더욱 자세가 중요합니다.

한마디로, 강한 힘을 낼 수 없다면 상대의 강한 힘을 흘릴 수도 없는 거죠. 헐렁헐렁해서는 그냥 뭉개질 뿐입니다.

그러나 강한 힘을 낸다는 게 딱딱하게 힘을 쓴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반대죠. 부드러워야 합니다. 몸이 경직되면 그게 힘이 전달되는 걸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강한 힘을 낼 수 없게 합니다.

물론 몸이 경직되지 않아야 한다는 건 그저 힘쓰기 측면에서가 아니라 무술이기 때문에 사람을 상대하는 게 중요해서이기도 합니다만, 그 이야기는 지금은 굳이 하지 않도록 하죠.


# 힘빼기 - 힘쓰기

중국무술에 관심있는 분들은 방송이란 단어를 들어보셨을 텐데, 즉 힘빼기입니다. 하지만 힘빼기라고 해서 힘을 아예 넣지 않고 흐물거리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춘권에서 힘을 뺀다고 하는 건 쓸데없는 힘을 빼고, 제대로 힘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확한 자세에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도록, 불필요한 힘과 긴장을 배제하고 긴밀하고 민첩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 힘빼기죠. 매끄럽게 잘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다.

하지만 숙련되지 못할수록, 힘을 넣지 말아야 할 곳에 힘을 넣고, 힘을 써야 할 곳은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인지라, 이게 아주 쉽지 않죠. 계속해서 힘을 빼고 자세를 만들어가는 방법 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힘을 쓴다고 의식하지 않지만 강한 힘을 쓸 수 있게 되는 거고요.

상대연습과 개인연습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한가? 하면 전 늘 다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힘빼기에 있어서는 어느 것이 중요한가? 하면.. 그 역시 전 둘 다 중요하다고 말할 겁니다.

많은 중국무술처럼 영춘권에도 투로가 있죠. 혼자서 자세를 연습할 수 있습니다. 투로를 연습하고, 동작 하나하나를 또 따로 연습하죠. 이걸 왜 연습할까요? 그저 빠르고 강해지기 위해서?

실은 맞습니다. 빠르고 강해지기 위해서죠. 하지만 어떻게 하면 빠르고 강해지나요? 그냥 생각 없이 단순반복만 한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결국 연습의 요체는 반복과 숙달이죠. 정확한 자세를 몸에 새겨 넣으면서, 그 정확한 자세로 깔끔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필요없는 힘을 빼낼 것인가, 어떻게 더 안정적으로 움직일 것인가, 어떻게 더 부드러우면서도 강해질 수 있을 것인가. 연습에는 항상 도전과제가 있습니다. 영춘권을 하면서 무얼 고쳐야 하는지 깨달았다면 그걸 연습하면서 고쳐나가야 하죠.

연습하지 않으면 무얼 고쳐야 할지도 깨닫지 못합니다. 혼자서 연습하며 기술에 쿵후를 쌓고, 그 기술을 사람과 상대하며 무엇이 모자란지 알고 다시 연습합니다.

힘이 들어갔다면 십중팔구 자세가 깨졌습니다. 자세가 깨지면 힘이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자세와 힘빼기는 늘 함께합니다.

힘이 새지 않아야 합니다. 넘쳐서 굳어져도 안 됩니다. 민첩하되 뜨지 않습니다. 힘을 빼고 힘을 씁니다. 이렇게 하는 게 강하다는 걸 머리가 아닌 몸으로 믿고 움직이게 됩니다.


# 대략 그렇게 13년

..을 해왔습니다. 힘을 빼야 한다고는 영춘권을 처음 배운 때부터 알았지만 그때 생각한 힘빼기와 지금 생각하는 힘빼기는 많이 다릅니다. 몸 쓰는 법도 많이 달라졌죠.

앞으로 또 달라지게 되겠죠. 과거에 찍은 영상을 보면 많이 미흡한 게 보이는데, 지금 찍은 영상을 미래에 보면 또 허술해 보이겠죠.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