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왔습니다


원래 라이프로그에 연동해서 영화 감상을 하는데, 어찌 된 게 라이프로그에 <테이큰>이 안 뜨더군요. 그런 이유로 그냥 포스터를 적당히 긁어와 감상을 쓰겠습니다. 현재 극장가에서 잘 나가는 영화인데, 한 마디로 말할 것 같으면 더 없이 제 취향입니다.

스토리를 일단 소개할까요. 딸이 있고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전에 CIA에서 일하던 정부 요원으로,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막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영화상에서 preventer라고 말하죠, 예방자라고 번역되며, 애니메이션 <신기동전기 건담 W 극장판>에서도 우페이가 프리벤터 일을 했기 때문에 귀에 익숙한 단어였습니다) 여하간 아버지는 이제는 은퇴했고, 가끔 보디가드 알바라도 하며 살고 있는 한가한 사람입니다. 불행히도 프리벤터 시절 워낙 집에 들어오지도 못했기 때문에 아내에게 이혼당해, 딸을 보기 좀 힘들어진 게 슬프긴 합니다만. 그 새아버지는 꽤 인격이 훌륭한데다 돈도 많은 사람이라 이제 와서 새삼 아내가 돌아올 일은 없을 그런 상황입니다. 이게 기본 바탕입니다.

그럼 배역도 좀 말해볼까요. 아버지인 브라이언에 리암 니슨 (Liam Neeson)입니다. 본래 상당한 연기파 배우로, 상당히 많은 영화를 찍었습니다.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를 맡기도 한 사람이죠. 근래에는 <스타 워즈>에서 제다이를 하기도 했고,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이었던 크리스챤 베일을 가르쳤던 닌자 두목 듀카드를 연기한 사람도 바로 이 리암 니슨입니다. 딸인 킴에는 매기 그레이스 (Maggie Grace)로, 로스트에서 쉐넌 역으로 유명하다고는 합니다만 저는 로스트를 안 봤습니다. 어쨌든 연기는 잘 하더군요. 집안에 소홀한 브라이언을 버리고 재혼을 한 어머니는 팜케 얀센 (Famke Janssen), <엑스맨>에서 진 그레이를 맡았던 그 여성입니다. 나머지 캐릭터는 뭐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넘어가죠. 어쨌거나 쟁쟁한 배우들로, 드라마가 별로 중요한 영화는 아닙니다만 기본적으로 해 줄 건 다 해 주고 있습니다.

위에서 드라마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실제로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보디가드 알바를 하고, 그래서 팝 디바를 위험에서 구출하고, 덕분에 가수를 지망하고 있었던 딸을 이 연줄로 엮어 줄 수 있게 된다는 에피소드 같은 게 있긴 합니다만 말 그대로 너무 액션만 있으면 허전하니까 집어넣는다는 느낌이고, 실제로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무적 아버지가 딸을 구한다'라는 겁니다. 파리로 놀러 간 딸이 납치되자 의지 못할 공권력을 버리고 아버지가 직접 딸을 찾아 나선다는 게 이 영화의 모든 것이거든요. 사실 매우 뻔한 이야기 전개에다, 곁다리 없이 잔가지를 다 쳐버리고 이어지는 전개라 보기는 의외로 편합니다. 런닝 타임을 길게 만들 수 있었던 몇 가지 부분 (어떻게 장비를 다 조달하는가 등등)이 있긴 한데 '한가닥 했었던 아버지니 다 구하는 방법이 있겠지'하고 관객에게끔 생각하게 넘겨 버리고, 딸을 납치한 조직을 밑바닥으로부터 추적해 나가는 과정만 중심으로 보여 주죠.

원래 예방자였던 만큼 이런 사건의 예방을 위해 딸에게 국제 통화가 가능한 핸드폰을 주고,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전화하고 자기 전에도 전화하라고 말하는데, 이런 것들에 대해 (이혼한) 어머니는 브라이언이 너무 통제가 심하다고 말합니다만 우리 관객들은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미 다 알고 있지요. 실제로 이 핸드폰이야말로 딸을 추적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이, 딸인 킴은 친구인 아만다와 함께 파리에 도착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이 있는데 그건 영화 보면 아니까 다 제끼고) 그 파리의 집에서 아만다가 먼저 납치되고 그 후에 킴이 납치됩니다. 아만다가 납치될 때에 킴이 브라이언과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최강 아버지는 딸에게 "너도 끌려가게 될 거다"라면서 딸에게 무엇을 해야 할 지 다 말해 줍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재빨리 이 통화 내용을 녹음합니다. 과연 전직 요원입니다) 끌려가는 순간 딸은 아버지가 지시한 대로 자신을 납치하는 자의 인상착의, 문신 등을 말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버지는 딸의 추적을 시작합니다. 추적 - 단서를 잡아 누군가와 마주침 - 싸우거나 해서 정보를 얻음 - 다시 추적. 이걸 딸을 찾아 낼 때까지 반복하는 영화죠.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의 포인트는 무엇이냐? 제목에 써 놨듯이 스티븐 시걸 + 제이슨 본입니다. 제이슨 본처럼 뭔가 요원다운 치밀함과 계획성을 보여서 적을 추적하고, 스티븐 시걸처럼 무자비하게 적을 제압합니다. 이 과정들을 계속 보아 가는 게 재미입니다. 무엇보다도 스토리 라인 자체가 '새끼를 납치당한 아비 사자의 분노를 한 번 맛보아라' 라는 식이기 때문에, 무식하게 무자비하고 강한 액션신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브라이언에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철심을 아예 허벅지에 꽂아 버리고 전기 충격을 하는 고문신을 보고서도, 그리고 전기 충격을 가한 채로 그냥 가버리는 걸 보고서도 '어떻게 저럴 수 있지?'하고 생각하기보다는 '딸을 잃게 생긴 아버지니까 저럴 수 있어'라고 봐줄 수 있다는 이야기죠.

주인공이 적에게 총 한 방 안 맞는다는 공식은 이 영화에서도 유효해서, '람보가 따로 없다'는 지적이 들어갈 수 있긴 합니다만 (사실, 영화 초반부에 보디가드 알바를 할 때, 주인공의 친구가 주인공더러 '람보'라고 말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의외로 이 영화의 액션은 꽤 현실적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주인공이 지나치게 강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있는 무른 구석을 거침없이 찔러 들어가기 때문에, 완전히 불가능하다기보다는 이럴 수도 있겠다 생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까지 무적으로 일이 풀려 주기 위해서는 좀 운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액션은, 요즘 영화들의 특징인 카메라 흔들기 덕분에 무얼 어떻게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 보기 어려운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만, 대체로, 위를 치는가 하면 아래를 치고 아래를 치는가 하면 위를 쳐서 방어하기 힘들게 만든다거나, 충분히 무게를 실어서 상대의 급소를 침으로써 '강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같이 본 친구는 '액션신이 좀 빨리 끝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했는데, 사실 제대로 칠 줄 아는 사람이 급소를 치면 그렇게 뻗는 게 당연합니다. 제대로 무게가 들어간 타격에다 심지어 뼈를 아작을 내놓는데 사람이 움직일 수가 없죠. 사타구니 가격은 기본이요, 목이나 쇄골을 갈겨서 한 방에 쓰러뜨리기도 하고, 타격이 잘 안 들어가면 관절을 꺾거나 목을 한 바퀴 돌려줘서 끝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싸움이 길어지는 건 상대가 워낙 기술을 잘 비껴내거나, 치는 본인이 워낙 타격이 안 들어가는 물주먹일 때 뿐입니다. 정말 타격력 있는 펀치를 얼굴에 먹으면 한 대만 맞아도 사람은 뻗어요. 더불어 총질에 대해서는, 팔다리를 쏘는 걸 참 유효하게 써먹더군요. 하긴 맨몸으로 싸울 때도 팔다리를 먼저 부수는 걸 유효하게 썼죠. 좋은 경향입니다.

(카메라 흔들기- 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이 기법은 역동성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기법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또 반면에 액션 기술의 미숙함을 잘 안 보이게 흐리는 기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저는 7,80년대 액션 영화의 방식을 오히려 좋아하죠. 정적이긴 하지만 솔직하니까요)

해서 그런 영화입니다. 무자비하고 통쾌한 액션을 좋아하시는 분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주인공이 무적이긴 한데 우작스럽게 무적이 아니라, 당할 수도 있지만 치밀하고 대범한 행동과 다소의 운으로 이겨 나간다, 라는 타입이라 어느 정도 현실성도 보장합니다. (뭐 이런 액션 영화에서 현실성을 따지는 것도 좀 우습습니다만)

그리고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현실적인 교훈:

1. 일을 소중히 여겨서 가정을 소중히 못하면 가정이 깨집니다.
2. 한 번 깨진 가정은 다시 복구되기 어렵습니다.
3. 세상은 여러분 생각보다 위험합니다. 부모님 말씀 잘 들으세요.
4. 납치당할 것 같으면 전화해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납치범의 인상착의를 알려주세요.
5. 자동차는 아우디가 짱입니다. 엔진소리 그릉그릉.

마지막 건 농담입니다만, 누가 뤽 베송 각본 아니랄까봐 자동차 추격 멋지게도 들어갔더군요. 이 영화는 아우디에서 협찬 받은 게 틀림없습니다. 아무튼 액션 좋아하는 저로서는 참 즐겁게 보았습니다. 사실 그것 아니면 볼 게 없지요, 이 영화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