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P.D. 제임스 지음, 이옥진 옮김/황금가지

오랜만에 읽은 추리소설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드보일드는 아니고 일반 추리소설에 가까운 문체이지만 담담한 어조가 좀 하드보일드틱하기도 해서 취향에 맞는 문체였지요. 제목에서부터 다른 추리소설과 약간 다름을 알려 주는데, 주인공이 스물 두 살의 여성입니다. 방구석에서 모든 걸 추리해 내는 탐정이라면 모를까, 직접 뛰어 사건과 부딪혀 진상을 파헤치는 탐정에 여성은 그다지 적합하지는 않죠. 사실 제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제 어머님께서 한 마디 하셨던 말씀이: "여탐정이 왜 환영받지 못해? 미스 마플도 있잖아." (제 어머님은 애거서 크리스티를 좋아하시죠) 그래서 "실제 탐정은 이렇게 머리로 사건을 추리하기보다는 몸으로 뛰어 단서를 취합해 나가는 일이 많고, 보통 생각하는 탐정이라기보다 흥신소에 가깝거든요. 그러니 여자가 환영받지 못하죠."라고 답했더랬습니다. 덧붙여 원제는 <An Unsuitable Job for a Woman>이라고 해서,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하드보일드틱하기도 하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소설에서 사건의 진상이란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어느 쪽이냐 하면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모습 그 자체와, 사건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각이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그 쪽에 무게를 실었기 때문이겠지만 진상이 밝혀졌을 때의 개운함은 그다지 없습니다. 밝혀지게 된 사실로부터 인간사의 추악한 일면을 보게 되고, 또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떻게 이 일들을 처리할 것인가,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느 쪽이 더 잘 된 일이겠는가 등이 강조됩니다. 뭔가 화끈한 것을 기대하거나 강한 필치를 기대한다면 이 소설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겠지만,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굴하지 않는 정신을 기대한다면 아마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물론 가장 포인트가 되는 것은 역시 '몸으로 부딪히는 여탐정'입니다. 당차죠, 코딜리아 그레이라는 이 주인공은. 아무래도 육체적인 부분에서는 연약한 면을 보일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정신적인 면이 그 약점을 덮습니다. (그렇다고 비정한 건 아닙니다, 어느 쪽이냐면 정이 많아서 곤란한 쪽이죠. 강한 척을 하긴 하지만) 사실 저로서는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보다는 사건을 덮는 과정이 더 인상깊었습니다. 마지막 챕터에서 달글리시 총경과의 대담은 흥미로웠지요. (이 달글리시 총경은 P.D. 제임스의 다른 소설에서는 주역으로 나오는 모양입니다. 꽤 마음에 드는 캐릭터이긴 했어요)

네, 저로서는 이런 글도 꽤 좋더군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