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컴 Kingdom Come
마크 웨이드, 알렉스 로스 지음, 김영 옮김 / 시공사

  우선 무엇보다 먼저, 이 책을 제공해주신 시공사에, 그리고 또한 렛츠리뷰라는 형태로 책을 받아볼 기회를 주신 이글루스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책을 무료로 증정받았고, 그에 대해 감사해야 예의겠죠. 더불어, 저는 이런 류의 미국 만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리 지식 수준이 높지는 않고, 따라서 거의 초심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리뷰가 되리라는 점을 밝혀둡니다. 제 주변 사람이나, 렛츠리뷰를 통해 들어오시는 분들은 초심자 분들이 더 많을 테니 그쪽이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뭐, 할 수 있는 감상을 하는 거죠.

 <킹덤 컴>은 <저스티스>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크로스오버 - 패러랠 월드 (교차 - 평행세계) 세계관을 기본으로 히어로의 활약을 그려나가고, 그 안에 생각해볼만한 내용을 담으며, 알렉스 로스를 기용해 그림 자체를 고품질 회화로 보여준다는 것 등이 있겠습니다. 약 세 달 전에 <저스티스> 감상을 한 적이 있는데, (렛츠리뷰를 통해 들어오신 분들을 위한 설명: 꺽쇠 안의 제목을 클릭하면 감상 포스트로 연결됩니다) 그 때 이런 만화의 올스타 히어로 연합에 대하여 약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 때의 설명을 다시 옮겨 보겠습니다.

 마블에 어벤져스가 있다면 DC에는 JLA (the Justice League of America)가 있습니다. ····(중략)··· JLA는 간단히 말해서 DC코믹스 계열 히어로들의 연합팀입니다. <아이언 맨> 감상을 할 때 마블 코믹스의 연합팀 '어벤져스'에 대해 언급한 적 있습니다만, 간단히 말해 이런 연합팀은 각각의 히어로들의 세계관을 크로스오버시켜 만들어진 또다른 세계관이며, 미국 만화를 즐기는 풍부함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저스티스>는 이 JLA의 구성 자체에 대해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넘어가고 그 안에서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독자들이 JLA와 그 히어로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한 후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뜻입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이 만화를 제대로 다 즐기기 어려운 이유가 되겠습니다만, 그래도 의외로 즐겨볼 만 합니다. 저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도 모른 채 갑자기 올스타 팀을 보는 격입니다만 원체 멋진 선수들이다보니 올스타 팀부터 즐겨도 나쁘지 않거든요.

 설명을 하는 김에 미국 만화를 즐기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덧붙여보면, 이 또다른 세계관이라는 점이 조금 중요합니다. 이런 미국 만화를 기본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말할 때, '저 캐릭터는 원작에서는 이랬는데 바뀌었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실은 그것이 그다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이유인즉슨 원작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물건너 동네에서는 캐릭터의 저작권이 작가에게 귀속된다기보다 회사에 귀속되는 식이라, 작가들이 원하는 대로 캐릭터를 뽑아 쓸수 있죠. 따라서 한 작품에 여러 히어로가 나오거나, 각기 다른 시리즈에서 동일한 히어로의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로부터 유래되는 깊이와 풍부함을 즐기는 게 저쪽 만화를 즐기는 방법이죠. 다시 설명하면, 기준이 되어야 하는 어떤 한 가지 이야기 줄기없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배트맨은 조커와 계속 싸우다 둘 다 늙어 죽었을 수도 있고, 혹은 배트맨이 조커를 아예 죽여버렸을 수도 있는데, 그 양쪽 모두 원작입니다. 수퍼맨은 로이스와 결혼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로이스가 죽어서 혼자 살 수도 있고, 혹은 원더우먼과 결혼했을 수도 있으며, 그 모든 상황이 별개의 세계로서 인정됩니다. 절대적이지 않다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평행세계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이건 아마 여러분도 몇 번 들어보셨을 수 있고, 혹은 이미 잘 아실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또다른 세계가 있다는 이론입니다. 그곳에서는 나나 내가 아는 다른 사람들이 또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이죠. 이건 타임 머신 등을 사용해서 과거로 돌아간 후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바꾸면 미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미래를 보여주는 다른 세계가 생겨난다고 설명되는 데에 많이 사용됩니다. 그 세계들은 분명히 모두 존재하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요. 정리하면, 그런 이유에서, 미국 만화에서는 같은 히어로들을 사용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 전개나 인간관계, 심지어 아예 다른 엔딩을 보여주게 되는 겁니다. 물론 히어로의 성격 Character은 어지간하면 그대로 유지됩니다. 아니면 적어도 납득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죠.

  서론이 길었군요. 그래서 이 <킹덤 컴>이 바로 이 패러랠 월드를 사용해 나타난 작품입니다. 여러 영웅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크로스오버 세계관에, 통상적으로 보던 세계관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패러랠 월드를 보여주죠. <저스티스>와 더불어, 미국 만화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내용 이야기를 좀 할까요. <킹덤 컴>에서는 모든 악인들이 잡혀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히어로들의 시대가 도래하죠.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밝고 희망차야 할 것 같습니다만, 실은 그다지 희망차지 못합니다. 이 시대는 내부에 종양을 키우고 있습니다. 히어로들을 크게 보면 두 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과격파와 온건파.

 온건파의 대표 - 수퍼맨은 은둔하고 있습니다. 그는 누구도 살해되는 일이 없게 하려 했었으나, 마곡이라는 히어로가 수퍼맨이 살해하지 않았던 누군가를 살해했고 그에 따른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는 일을 보고 은둔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왕년의 히어로들은 나이가 들어 있으며, 새로운 히어로들이 나타납니다. 악당들이 없어진 세계에서, 이제 히어로들은 히어로들끼리 싸웁니다. 그들의 싸움에 의해 인간들이 다치거나 죽기도 하지만, 그것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인간들을 지켜주니까요. ······라는 내용으로부터 시작하여, <킹덤 컴>의 이야기가 열립니다.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정작 책을 읽을 때의 즐거움이 사라지니 적당히 하겠습니다. (라기보다는 사실 정말로 세세하게 말하려면 지식이 부족한 게 드러날 테니까)

  어쨌든 몇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볼만한 주제도 있지요. 힘을 가진 자들의 책무와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단지 이런 수퍼히어로들만이 힘을 가진 자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내용을 공권력에 적용해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모습이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 등에서 저는 힘을 가진 이의 오만함을 봅니다. 단 한 사람도 죽이고 싶지 않아하는 수퍼맨은 보이스카웃이라는 비아냥도 듣지만, 그래도 그러한 의지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는 희생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물론, 묵시록을 계속해서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나 관찰자로 선택된 캐릭터가 목사라는 점을 볼 때, 여기서 히어로들을 인간을 초월한 그 어떤 것이라고 보고 있음은 명백해 보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신이죠. 히어로물은 일종의 신화이며, 이런 크로스오버 히어로물은 본격적인 다신교 신화일 수 있습니다. 종반부에 이르러 재앙이 닥칠 때, 그들을 심판하는 주체가 반 인간 반 히어로인 캡틴 마블이 된다는 것은 그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롭긴 합니다만, 그 장면에서 관찰자 노먼 맥케이의 나레이션과 수퍼맨의 대사가 교묘하게 겹치며 "(수퍼맨) 그리고 그 결정은···." '(노먼 맥케이) ···내가 내리는 게 아니다. 난 신이 아니야···.' "(수퍼맨) 난 인간이 아니야. 하지만 빌리 너는···. 넌 양쪽 모두이지." 라고 읽게 된다는 점이 이 이야기에 신화로 읽히길 바라는 의도가 들어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여기에서 캡틴 마블 - 빌리 뱃슨은 반신반인이 되는 셈입니다.

  다른 신경써볼만한 내용에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립도 있습니다. 대립, 그리고 또한 조화죠. 구세대는 그들이 겪은 삶과 경험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신세대는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결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대립할 때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또다른 신경써볼만한 내용에는 분쟁의 해결이 결국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느냐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혹자는 질문할 수 있을 겁니다. "히어로들이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폭력으로 제압해 억누르는 것이 이들의 방식이 아니냐?" 맞습니다. 수퍼맨은 일단 대화를 사용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제압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가 볼 때는, 대화를 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력이나 힘도 결코 부정할 수 없어요.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평화를 사랑하고 대화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면, 그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실제로 가진 것이 그것이라면 평화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무력 없이는 평화도 없다는 것이 역사가 증명한 결론입니다. 이런 히어로물을 볼 때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로 해석해볼 수 있다는 게 <킹덤 컴>의 장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만화를 좋은 만화라고 말하죠. 물론 이 만화를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데에는 단지 스토리만이 아니라 알렉스 로스가 그린 회화풍의 그림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수채화풍의 그림으로, 이 사람은 실존인물을 모델로 사용하는데다 포즈까지도 실제 사람을 찍어서 그리는 사람이라 그림의 퀄리티가 굉장합니다. 하기는 개인적으로는 <저스티스> 풍의, 더욱 선명하고 더욱 실제 사진 같은 느낌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킹덤 컴>의 그림이 나쁘다고는 절대 말 못하지요.

 이렇게 말하면 무시무시하게 멋진, 안 사면 후회할 만화가 되는 듯 싶습니다만······ 아쉽게도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등장하는 히어로들이 너무 많다는 문제입니다. 이 수많은 히어로들이 누구인지 알아볼만한 독자가 국내에 몇 명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아마 <저스티스>를 먼저 읽고 <킹덤 컴>을 읽으면 그나마 누가 누구인지 좀 잡히긴 할 듯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이게 누구지? 싶은 히어로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또 나름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게, 이 히어로들의 원작 만화는 많습니다. 정말로 많지요. 국내에 그것들을 출간하긴 정말로 어려울 겁니다. 그나마 이런 류의 컨셉 작품을 내는 쪽이 현실적이죠.

  그나마 희소식: 수퍼맨과 원더우먼, 배트맨, 캡틴 마블 정도만 알아도 이야기의 줄기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물론 잔재미를 다 제대로 즐기기는 불가능하겠지만요. 어쨌든 저로서는 꽤 괜찮다고 말은 하겠습니다만, 일단 먼저 <저스티스>를 읽으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그게 마음에 들었다면, <킹덤 컴>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적어도 저 네 명이 어떤 히어로인지 정도는 숙지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덧. 이것 말고도 다른 만화 포함해서 말하는 건데, 수퍼맨은 그 무시무시한 무기 참 많이 맞는군요.

 덧2. 원더우먼은 참 예쁜 듯. <저스티스>에선 자타나가 더 예쁘게 보이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죽었는데, 실질적인 히로인이 원더우먼이 되다보니······ 흠흠.

 덧3. 오오 배트맨 오오. 역시 탐정님.

 덧4. 캡틴 마블이 "샤잠! 샤잠! 샤잠!" 하고 외치는 부분. 여기 좀 찡하더군요.

렛츠리뷰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