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생각의나무

이 책은 제법 이름이 알려졌죠. 이 책을 유명하게 한 원인이라면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천한 경력이 있다는 점이겠는데, 읽으면서 좀 찝찔하긴 하더랍니다. 미리 말해 두지만, 이 책은 저하고는 어지간히 상성이 안 맞았어요. 이 소설을 카방글 왈 '유사 하드보일드'라고 합니다만, 음, 글쎄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책, 전 더럽게 재미 없었습니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면 1~2챕터 지나고 나면 화자의 시선에든 뭐에든 몰입을 하게 되고 남은 페이지가 줄어 가는 게 아쉬워지게 되는데, 이건 다 읽을 때까지도 엄청나게 싱크로가 안 되덥니다. '이거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라고 생각하는 소설은 오랜만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중반까지 읽고는 몰입을 포기하고, 한 페이지에 길어야 3초 정도 읽는 속독으로 후딱 넘겨버렸습니다.

저와 안 맞았던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첫 번째로 이건 끝이 어떻게 될 지 이미 알고 있는 소설이라는 겁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죽음까지를 써낸 소설이기 때문에, 어떻게 진행될지 이미 다 알고 있지요. 거기에서 변용으로 사소한 에피소드들에 작가적 상상력 가미를 넣는 정도는 있습니다만, 사실 그게 딱히 와닿지도 않았지요. 엄밀히 말해 이건 안 맞는 이유라고는 하기 뭣할지도 모른데, 왜냐하면 끝을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로, <삼국지연의>는 저는 이미 일곱 번 이상 재미있게 읽었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정확한 이유라 할 수 없죠.

그래서 두 번째, 절대적인 우울 속에 이야기가 갇혀 있다는 점을 잡아 보죠. 상황은 전쟁 중이고, 둘러보면 막막함 뿐이고, 임금인 선조는 신경질적인 왕이라 부하도 의심하고 (아시다시피 그래서 일부러 이순신이 왜란 막판에 노량 해전에서 자살하다시피 죽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렇게 죽으면 왕이 반역하려 했다 어쨌다 꼬투리를 잡지 못할 테니까), 다른 조정의 중신들이라고 이순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도 없고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없는데다 큰 도움은 못 되고),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만이 가득하죠. 이런 점을 일인칭 화자가 건조한 어투로 계속 짚어 나가기만 하고 있으면, 그냥 막막하기만 합니다. 영웅담과는 백만 광년 정도 거리가 멀죠. 이런 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었다니, 이런 책을 공감되이 읽는 심정 어째 알 법도 하고 모를 듯도 하고.

사실 문체가 건조하다 어떻다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건조체건 화려체건 이 소설에서 진행될 사건은 이미 다 정해져 있고, 이순신은 왜란이라는 이 피폐한 환경 속에서 끝없는 늪 속으로 계속 빠져만 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작가는 그 점을, 그 암담함과 암울함을 잘 표현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한테 이게 안 맞는 겁니다. 전 일말의 희망이 있는 글을 좋아하지, 이렇게까지 암울한 글은 좋아하지 않거든요. 사막 중에서도, 이건 오아시스 하나 없는 마른 사막입니다.

이런 대책 없는 절망을 좋아하시는 분은 이 소설이 마음에 드실 겁니다. 역사를 기반으로 쓰여진 소설 좋아하시는 분도 꽤 취향에 맞을 테고요. 뭐 그런 글입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