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록을 보존해 두는 편이다. 특별히 다른 사람에 비해 투철하게 보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때부터의 일기라거나 그 때로부터 그렸던 만화 정도는 거의 가지고 있다. 소설 같은 경우도 노트에 적힌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데, 이걸 잘 보존해 두면 향후 대작가 Neissy의 중학/고교 시절 초기작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갖고 팔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내가 이렇게 말하려니 뻔뻔한 듯 싶지만 사람은 조금 뻔뻔한 게 즐겁게 살기 딱 좋은 법이다.

내 본격적인 통신 인생은 고2 말로부터 시작했고, 그 때는 아직 모뎀이었으며 VT통신이었다. 한국 판타지 소설의 발흥기였으며 내가 고등학교 때에 드래곤 라자가 나왔고 비상하는 매가 출간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 시절에 스타크래프트가 나왔다. 그 게임 참 징하게 오래 간다. ..라는 건 여담이지만, 아무튼간에, 그런 시절에 나는 본격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천리안의 FANTS (판타지 포럼)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공식적으로만도 총 여섯 번의 리메이크를 거듭하는 (비공식적으로는 1부 완결 후로도 두세 번 더 만져 봤다) <데스트로이아 (DestroiA)>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시기의 나는 통신을 통해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정신적으로 다소 불안정했고, 또한 그 덕분에 성장해 왔다. 엄밀히 말해 내 글이 성장하는 것은 그런 소설 외적인 요소의 덕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체나 플롯을 짜는 기술 이전에 세계를 보는 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10대의 나와 20대 초반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는 분명 세계를 보는 눈이 다르다.

아픈 기억이라 지워버린 기록도 꽤 되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몇몇 대화 기록이나 오프라인 미팅 후기 등이 남아 있다. 조금 전에 그것들을 다시 읽었다. 딱히 논 건 아니고 <기프트>의 플롯을 짜는 김에 내 소설들을 다시 읽다가 연계되어 슬쩍 그리로 넘어간 것이다. 글 제끼고 놀고 있는 게 아니니 의혹의 눈은 접어두시라. 아무튼,

예전의 나를 다시 보니 즐거워졌다. 나는 그 때 내 원대로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에 고통했으나, 그 때 느꼈던 아픔이 지금에 와서는 다른 의미의 감정으로만 남았다. 그 때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이 전부인 줄 알았으며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어떠한가, 26세의 나는 18세의 내가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보고 있으며 그 길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길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그 때 내가 원하던 대로 되었다고 꼭 좋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어쩌면 그 때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 일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지 않은가.

결국 필요한 것은 좀 더 미래로부터 나를 볼 수 있는 시각이다. 또한 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통찰할 수 있는 시각이다. 나는 TV에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난다. 그 프로그램의 제목을 '우리 부모가 달라졌어요'라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잘못되는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이다. 사랑이나 훈계, 둘 다 있어야 하지만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아이는 TV에 나오는 그런 모습으로까지 악화되지 않는다. 부모가 변화되었을 때에 아이의 모습이 변화하고 얼마나 사랑스럽게 되는지 보라. 물론 부모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모르는 탓도 있지만, 본인들의 일에 더해 아이를 키우는 일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기 때문에 지쳐 여력이 없기 때문이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눈치채지 못했다 해도, 자신들이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서 그 장면을 다시 보여 주면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었는지 알아챌 수 있다. 객관적인 눈으로 자신을 볼 때, 자신의 무엇을 고쳐 나가야 하는지 부끄러울 정도로 잘 보이게 된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고 웃을 수 있고, 이 때는 이것이 문제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지금 보이는 것에는 분명 그런 이유도 있을 게다. 그러므로 기록을 남기는 일은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창이 된다. 조금 시간이 지나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나는 내 문제들을 어디에든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에게 내 고통을 알리기 위해서, 나를 알아달라고 응석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수년 전의 나, 수개월 전의 나, 수일 전의 나, 수분 전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나의 행동을 돌아보고 향상해 나가기 위한 훈련이다. 아픔을 묻어 두는 것으로 당장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성장할 수는 없다. 더욱 더 성장하기 위해 나는 내 추태를 기록하련다.

나는 아무 것도 잊지 않는다. 기록하고, 기억해서, 나를 더 키워 나가겠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