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시의 마법사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황금가지
잠이 안 오는군요. 오늘은 저녁에 약속도 있는데 한 숨 자 두는 쪽이 좋으리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잠이 안 오니 어쩔 수 없지요. 잠이 안 오는 김에 미뤄 두었던 감상이나 한 편 해 볼까 합니다. 오늘의 감상작은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입니다. 국내에서는 <게드 전기>로 유명하기도 한 판타지 소설이죠. J.R.R. 톨킨의 <반지의 군주>와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판타지 문학의 3대 걸작으로 뽑히기도 하는 걸출한 소설입니다. 그러고보니 <반지의 군주>와 <나니아 연대기>는 감상을 하지 않았군요. 저것들도 (특히 <나니아 연대기>를) 언젠가는 감상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언제가 될 지는 역시나 모르겠습니다. (참고: <The Lord of the Rings>를 반지의 제왕이라 하지 않고 굳이 군주라고 하는 것은 저기에서의 The Lord는 제왕으로 번역하기에는 영 어색하다는 생각이 있어섭니다. 그러면 군주는 적합하냐는 질문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제왕보다는 낫다고 본달까요. 지배자라고 하기도 그렇고, 애매하긴 합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보죠. <어스시의 마법사>는 어스시 (The Earthsea) 전집의 제 1권이며, 주인공 게드가 마법을 익히고 자신을 찾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서의 마법은 주문을 사용해 다른 존재의 힘을 빌려온다기보다, 사물의 진정한 이름을 배우고 그것을 부름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인 게드 같은 경우도 이것은 진정한 이름이기 때문에 쉽게 노출시키지 않으며, 평상시에는 새매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어쨌거나 이 소설에서 마법이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며, 주인공 게드가 자만심으로 인해 불러낸 자신의 그림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쫓고 쫓기는 과정이 이 소설에서 그려져 있음을 볼 때 이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쉽게 이해되리라고 봅니다.
거두절미하고 저는 판타지 소설 자체를 사실 안 읽습니다. 이유라면 몇 가지가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일단 담화가 수준이 낮고 그 담화를 이끌어내는 서사 구조도 빈약하며 심지어 문장도 빈약합니다. 물론 이건 국내의 판타지 소설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며, 안 그런 것도 있긴 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것을 찾아볼 만큼 제가 열성적이진 않죠. (국내 판타지의 수준 저하는 대여점과 판타지 소설 출간 붐이 겹친 끝에 판타지 소설의 출간 구조가 일종의 박리다매가 되었기 때문인데, 요즘은 그에 반하는 이런저런 움직임이 다시 보이기도 합니다. 뭐 그런 건 어쨌든) <어스시의 마법사>는 물론 그 정반대로, 위 문단에서 언급했듯 사물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기본적인 소재가 나름 문학적 가치를 높여주고, 자만으로 위험에 빠졌다가 정면으로 부딪혀 승리를 일구어내는 서사 구조는 기본적으로 수준 있는 문장과 어울려 즐겁게 읽힙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 나갈 때마다 수준 있는 문장에 즐거워지고, 서두르지 않으며 차근차근 진행되어가는 이야기는 즐겁게 다음 장을 넘겨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사실 판타지 소설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 줘야죠. 수준 있는 판타지 문학을 찾는데 아직 이 소설을 안 보셨다면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위에서 국내 판타지 소설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사실 국내 소설을 읽으며 마음에 걸리는 것이 문장 수준과 문단 구조인데, 문장 수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심심하면 다음 문단으로 줄을 넘겨 버리는 구조는 좀 개선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감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설을 쓰는 공부를 할 때 어디선가 배웠던 듯하니 틀린 것만도 아니지 싶습니다. 말하자면, 한 문단에서 다음 문단으로 넘어갈 때는 그 문단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 표현되었을 때 다음 문단으로 넘어간다는 겁니다. 이것이 없고 그냥 한 줄 쓰고 다음 줄 넘기거나, 문단이 길어 봐야 한두 줄이고 또 넘겨 버리는 식을 반복한다는 이야기는 그 문단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이기 쉽습니다. 하기는 전에 그런 이야기는 들었는데, 한 문단이 서너 줄 이상 넘어가면 독자가 읽을 때 불편해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글을 읽을 때 생각이 죽 이어지지 못하고 한 번 끊어야만 다음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한 문단으로 충분히 이어질 만한 내용이 두세 문단 이상으로 뚝뚝 끊어지는 것은 그만큼 독자와 작가의 사고가 길게 이어지지 못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하고 보니 슬픈 이야기네요.
<어스시의 마법사>는 한 문단이 짧지 않습니다. 읽는 데 별 어려움도 없고 부담도 없으며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매우 쉽게 읽히는 편이긴 합니다만, 책을 별로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는 합니다만 다른 소설 보면 다 이 정도는 합니다. 이 말을 굳이 하는 건 쉽게 넘겨 버리는 판타지 소설만 읽는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어쨌거나 썩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며 내용도 재미있으니, 판타지 소설에 입문해 보시려는 분이 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냥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사실 입문자에게는 <반지의 군주>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좀 딱딱한 편입니다. 그러나 <나니아 연대기> 같은 경우는 문장도 내용도 퍽 쉬운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나니아 연대기>는 초등학생 때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으리라는 아쉬움도 들더군요)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황금가지
잠이 안 오는군요. 오늘은 저녁에 약속도 있는데 한 숨 자 두는 쪽이 좋으리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잠이 안 오니 어쩔 수 없지요. 잠이 안 오는 김에 미뤄 두었던 감상이나 한 편 해 볼까 합니다. 오늘의 감상작은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입니다. 국내에서는 <게드 전기>로 유명하기도 한 판타지 소설이죠. J.R.R. 톨킨의 <반지의 군주>와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판타지 문학의 3대 걸작으로 뽑히기도 하는 걸출한 소설입니다. 그러고보니 <반지의 군주>와 <나니아 연대기>는 감상을 하지 않았군요. 저것들도 (특히 <나니아 연대기>를) 언젠가는 감상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언제가 될 지는 역시나 모르겠습니다. (참고: <The Lord of the Rings>를 반지의 제왕이라 하지 않고 굳이 군주라고 하는 것은 저기에서의 The Lord는 제왕으로 번역하기에는 영 어색하다는 생각이 있어섭니다. 그러면 군주는 적합하냐는 질문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제왕보다는 낫다고 본달까요. 지배자라고 하기도 그렇고, 애매하긴 합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보죠. <어스시의 마법사>는 어스시 (The Earthsea) 전집의 제 1권이며, 주인공 게드가 마법을 익히고 자신을 찾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서의 마법은 주문을 사용해 다른 존재의 힘을 빌려온다기보다, 사물의 진정한 이름을 배우고 그것을 부름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인 게드 같은 경우도 이것은 진정한 이름이기 때문에 쉽게 노출시키지 않으며, 평상시에는 새매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어쨌거나 이 소설에서 마법이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며, 주인공 게드가 자만심으로 인해 불러낸 자신의 그림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쫓고 쫓기는 과정이 이 소설에서 그려져 있음을 볼 때 이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쉽게 이해되리라고 봅니다.
거두절미하고 저는 판타지 소설 자체를 사실 안 읽습니다. 이유라면 몇 가지가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일단 담화가 수준이 낮고 그 담화를 이끌어내는 서사 구조도 빈약하며 심지어 문장도 빈약합니다. 물론 이건 국내의 판타지 소설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며, 안 그런 것도 있긴 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것을 찾아볼 만큼 제가 열성적이진 않죠. (국내 판타지의 수준 저하는 대여점과 판타지 소설 출간 붐이 겹친 끝에 판타지 소설의 출간 구조가 일종의 박리다매가 되었기 때문인데, 요즘은 그에 반하는 이런저런 움직임이 다시 보이기도 합니다. 뭐 그런 건 어쨌든) <어스시의 마법사>는 물론 그 정반대로, 위 문단에서 언급했듯 사물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기본적인 소재가 나름 문학적 가치를 높여주고, 자만으로 위험에 빠졌다가 정면으로 부딪혀 승리를 일구어내는 서사 구조는 기본적으로 수준 있는 문장과 어울려 즐겁게 읽힙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 나갈 때마다 수준 있는 문장에 즐거워지고, 서두르지 않으며 차근차근 진행되어가는 이야기는 즐겁게 다음 장을 넘겨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사실 판타지 소설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 줘야죠. 수준 있는 판타지 문학을 찾는데 아직 이 소설을 안 보셨다면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위에서 국내 판타지 소설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사실 국내 소설을 읽으며 마음에 걸리는 것이 문장 수준과 문단 구조인데, 문장 수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심심하면 다음 문단으로 줄을 넘겨 버리는 구조는 좀 개선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감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설을 쓰는 공부를 할 때 어디선가 배웠던 듯하니 틀린 것만도 아니지 싶습니다. 말하자면, 한 문단에서 다음 문단으로 넘어갈 때는 그 문단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 표현되었을 때 다음 문단으로 넘어간다는 겁니다. 이것이 없고 그냥 한 줄 쓰고 다음 줄 넘기거나, 문단이 길어 봐야 한두 줄이고 또 넘겨 버리는 식을 반복한다는 이야기는 그 문단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이기 쉽습니다. 하기는 전에 그런 이야기는 들었는데, 한 문단이 서너 줄 이상 넘어가면 독자가 읽을 때 불편해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글을 읽을 때 생각이 죽 이어지지 못하고 한 번 끊어야만 다음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한 문단으로 충분히 이어질 만한 내용이 두세 문단 이상으로 뚝뚝 끊어지는 것은 그만큼 독자와 작가의 사고가 길게 이어지지 못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하고 보니 슬픈 이야기네요.
<어스시의 마법사>는 한 문단이 짧지 않습니다. 읽는 데 별 어려움도 없고 부담도 없으며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매우 쉽게 읽히는 편이긴 합니다만, 책을 별로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는 합니다만 다른 소설 보면 다 이 정도는 합니다. 이 말을 굳이 하는 건 쉽게 넘겨 버리는 판타지 소설만 읽는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어쨌거나 썩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며 내용도 재미있으니, 판타지 소설에 입문해 보시려는 분이 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냥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사실 입문자에게는 <반지의 군주>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좀 딱딱한 편입니다. 그러나 <나니아 연대기> 같은 경우는 문장도 내용도 퍽 쉬운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나니아 연대기>는 초등학생 때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으리라는 아쉬움도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