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이런 류의, 종교와 과학이 혼합된 소설을 읽으면 항상 감상 쓰기가 조심스러워집니다. 섣불리 말하다 제 무지가뽀록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인데요, 그래도 어쨌거나 큰 부담 없이 써 보겠습니다. 감상이란 속편한 작업이니까요.
사실 이 소설을 감상하는 데 ㅡ좀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일단 무엇보다, 읽는 데ㅡ 어려움을 주는 것은 이 소설이 힌두교와 불교를 차용해 왔다는 부분에 있습니다. 예전에 <악마의 시>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힌두 쪽의 이야기는 제게 무척이나 생소하며 그 생소함은 소설의 몰입에 상당한 지장을 가져다 줍니다. 아마 이게 그리스-로마 신화나 켈트 신화를 차용해 왔다면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었겠지요. (물론 이 소설에서 차용해 온 게 힌두 신화여야 했던 분명한 필연성이 있으므로 다른 신화를 차용해 왔을 리야 없었겠습니다만) 시바나 크리슈나, 인드라 등 몇몇 힌두 신들의 이름 정도는 알았고 용어 중 니르바나 (涅槃: 열반) 라거나 카르마 (業: 업보) 등에는 이미 익숙했으므로 좀 다행이었습니다. 다만, 다행이라고는 해도, 이 쪽은 제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 힌두교와 불교의 관계를 이 소설에 대입시켜 감상하는 일은 아무래도 무리였지요. 불교에 대해서도 딱히 잘 안다고는 할 수 없고요.
그러나 그런 걸 모른다고 이 소설을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알면 더 즐길 수 있겠지만 포인트는 또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소설에서 종교와 과학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책 뒤의 소개글로 이미 쓰여 있기 때문에 딱히 스포일러도 아니기 때문에 공개하는데,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을 들자면 이렇습니다:
즉 이 소설의 배경은 지구가 아니며, 가공의 다른 세계입니다. 그러나 지구와 실제로는 거의 비슷하며, 기본적으로는 힌두의 신이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을 가정한 패러랠 월드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화를 과학적으로 가공해 SF로 만들어낸 또 다른 세계라는 겁니다. 이것이 다른 행성이라고 설정되어 있는 것은 그를 위한 무대 장치이며, 신화의 영역들이 과학으로 재해석됩니다. 전생 (轉生: 윤회, 환생)은 과학기술로서 자의식을 다른 신체에 전이시켜 계속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신의 능력이란 전생을 거듭하는 가운데 강화시킨 초등력- 또는 뒤떨어진 과학 기술의 사람들로서는 마법이나 신력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과학력, 거기에 라카샤 (羅刹: 나찰, 즉 악마)는 이 행성에 본래부터 있던 토착 에너지 생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하자면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실제 힌두교와 불교의 관계, 혹은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관계와 현상들은 (비록 그것이 실재에 기반했다 해도)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위해 변형하고 배치시킨 관계와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나는 전설이다> 감상 때에도 말씀드린 바 있는데, 그 감상에서 그대로 옮겨 보면 "신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무진장 노력했지만 결국 그 과학적으로 설명된 '신'은 원래의 '신'이 아니라 과학에 의해 체에 걸러져 형태가 달라진 또 다른 '신'이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신들의 사회>에서 이러한 작용이 실제로 우리들의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겠느냐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매트릭스>를 본 사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라는 의문을 담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신들의 사회>를 보고 나서 지금 우리가 믿는 신들도 사실 그러한 존재가 아닌가? 라고 묻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세계관을 어떻게 가지느냐는 그 사람의 자유이며 이런 소설을 읽을 만한 사람이 책 한 권에 세계관이 쉽게 흔들리리라는 생각 또한 들지 않긴 합니다만, 이러한 유의, 세계관을 흐트러뜨리는 소설을 읽게 될 때마다 그런 불만을 갖게 되는 건 아무래도 기독교인이며 신학도인 제 노파심이겠지요.
사실 아무래도 이런 소설을 읽게 되면 저는 그런 포인트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을 단순히 SF로 즐기고 책 속의 이야기로만 즐기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사실 이것이 제가 어떤 글을 써도 기독신학에서 어긋나는 사상을 쓰지 않으려 하는 이유입니다. 제 글을 읽은 누군가가 (적어도 제게 있어서는) 옳지 않은 방향으로 세계관을 정립시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슬슬 질문이 나오겠군요. 그럼 당신은, 이 <신들의 사회>의 세계관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느냐? 대답은 그렇다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이기도 합니다. 이미 말했듯 단순히 패러랠 월드로만 이해하고, 그저 신화로만 생각할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풀어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시도이며 흥미롭습니다. 또한 이 소설은 그것을 매우 잘 이루어냈으며, 실제로 즐겁게 읽히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이러한 세계관을 무방비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할 필요는 있죠.
어쨌거나 경계 섞인 말들을 하긴 했습니다만, 책 자체는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힌두 신에 익숙하지 않아 읽기 힘들었던 것도 1챕터를 넘어가고 나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고, 어느 쪽이냐면 꽤 속편하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글이라 부담이 없습니다. 잘 쓰여진 글이며 흥미진진합니다. 과연, SF의 명작은 명작이로군요.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이런 류의, 종교와 과학이 혼합된 소설을 읽으면 항상 감상 쓰기가 조심스러워집니다. 섣불리 말하다 제 무지가
사실 이 소설을 감상하는 데 ㅡ좀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일단 무엇보다, 읽는 데ㅡ 어려움을 주는 것은 이 소설이 힌두교와 불교를 차용해 왔다는 부분에 있습니다. 예전에 <악마의 시>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힌두 쪽의 이야기는 제게 무척이나 생소하며 그 생소함은 소설의 몰입에 상당한 지장을 가져다 줍니다. 아마 이게 그리스-로마 신화나 켈트 신화를 차용해 왔다면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었겠지요. (물론 이 소설에서 차용해 온 게 힌두 신화여야 했던 분명한 필연성이 있으므로 다른 신화를 차용해 왔을 리야 없었겠습니다만) 시바나 크리슈나, 인드라 등 몇몇 힌두 신들의 이름 정도는 알았고 용어 중 니르바나 (涅槃: 열반) 라거나 카르마 (業: 업보) 등에는 이미 익숙했으므로 좀 다행이었습니다. 다만, 다행이라고는 해도, 이 쪽은 제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 힌두교와 불교의 관계를 이 소설에 대입시켜 감상하는 일은 아무래도 무리였지요. 불교에 대해서도 딱히 잘 안다고는 할 수 없고요.
그러나 그런 걸 모른다고 이 소설을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알면 더 즐길 수 있겠지만 포인트는 또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소설에서 종교와 과학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책 뒤의 소개글로 이미 쓰여 있기 때문에 딱히 스포일러도 아니기 때문에 공개하는데,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을 들자면 이렇습니다:
먼 미래에 어느 행성에 정착한 <제1세대>들은 유전자 조작을 위시한 과학기술을 독점, 무지한 민중 위에서 수십 세기 동안이나 힌두교의 신으로 군림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항헤서 반란의 기치를 올린 불사(不死)의 영웅이 있었으니······
즉 이 소설의 배경은 지구가 아니며, 가공의 다른 세계입니다. 그러나 지구와 실제로는 거의 비슷하며, 기본적으로는 힌두의 신이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을 가정한 패러랠 월드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화를 과학적으로 가공해 SF로 만들어낸 또 다른 세계라는 겁니다. 이것이 다른 행성이라고 설정되어 있는 것은 그를 위한 무대 장치이며, 신화의 영역들이 과학으로 재해석됩니다. 전생 (轉生: 윤회, 환생)은 과학기술로서 자의식을 다른 신체에 전이시켜 계속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신의 능력이란 전생을 거듭하는 가운데 강화시킨 초등력- 또는 뒤떨어진 과학 기술의 사람들로서는 마법이나 신력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과학력, 거기에 라카샤 (羅刹: 나찰, 즉 악마)는 이 행성에 본래부터 있던 토착 에너지 생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하자면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실제 힌두교와 불교의 관계, 혹은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관계와 현상들은 (비록 그것이 실재에 기반했다 해도)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위해 변형하고 배치시킨 관계와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나는 전설이다> 감상 때에도 말씀드린 바 있는데, 그 감상에서 그대로 옮겨 보면 "신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무진장 노력했지만 결국 그 과학적으로 설명된 '신'은 원래의 '신'이 아니라 과학에 의해 체에 걸러져 형태가 달라진 또 다른 '신'이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신들의 사회>에서 이러한 작용이 실제로 우리들의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겠느냐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매트릭스>를 본 사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라는 의문을 담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신들의 사회>를 보고 나서 지금 우리가 믿는 신들도 사실 그러한 존재가 아닌가? 라고 묻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세계관을 어떻게 가지느냐는 그 사람의 자유이며 이런 소설을 읽을 만한 사람이 책 한 권에 세계관이 쉽게 흔들리리라는 생각 또한 들지 않긴 합니다만, 이러한 유의, 세계관을 흐트러뜨리는 소설을 읽게 될 때마다 그런 불만을 갖게 되는 건 아무래도 기독교인이며 신학도인 제 노파심이겠지요.
사실 아무래도 이런 소설을 읽게 되면 저는 그런 포인트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을 단순히 SF로 즐기고 책 속의 이야기로만 즐기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사실 이것이 제가 어떤 글을 써도 기독신학에서 어긋나는 사상을 쓰지 않으려 하는 이유입니다. 제 글을 읽은 누군가가 (적어도 제게 있어서는) 옳지 않은 방향으로 세계관을 정립시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슬슬 질문이 나오겠군요. 그럼 당신은, 이 <신들의 사회>의 세계관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느냐? 대답은 그렇다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이기도 합니다. 이미 말했듯 단순히 패러랠 월드로만 이해하고, 그저 신화로만 생각할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풀어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시도이며 흥미롭습니다. 또한 이 소설은 그것을 매우 잘 이루어냈으며, 실제로 즐겁게 읽히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이러한 세계관을 무방비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할 필요는 있죠.
어쨌거나 경계 섞인 말들을 하긴 했습니다만, 책 자체는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힌두 신에 익숙하지 않아 읽기 힘들었던 것도 1챕터를 넘어가고 나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고, 어느 쪽이냐면 꽤 속편하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글이라 부담이 없습니다. 잘 쓰여진 글이며 흥미진진합니다. 과연, SF의 명작은 명작이로군요.